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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야 Sep 12. 2015

그만 그만두고 싶은 기타

틈 둘, 지루할 틈

제이슨 므라즈, 잭 존슨, 아이유. 멋진 가수들의 어쿠스틱하고 로맨틱한 기타 소리에 혹해 기타를 잡은 게 벌써 세 번째다. 많은 사람들이 기타를 배우다 멈추는 시기를 짐작해보자면 바로 바코드를 잡기 시작할 즈음일 거다. 바코드를 잡으면 손에 고통이 더해지고 소리도 제대로 나지 않아 답답하고 지루하다.


내 왼손은 제이슨 므라즈처럼 날아다니지 않으며 내 오른손은 잭 존슨 같이 화려하게 움직이지 못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 목에는 아이유의 성대가 없다. 나는 이 모든 것이 마치 바코드 탓인냥 이 시기에 번번이 미끄러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기타를 배운지 9개월이나 됐다. 더 살아봐야 알겠지만 일단 지금까지는 내 인생 3대 이변 중 하나다.


바코드를 누르는 가여운 내 오동통 검지(놀라지 마세요. 원래 그래요.)


둔탁하고 박자 놓친 소리를 내는 건 학생의 특권이지만 그래도 선생님의 눈치가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정말 좋은 선생님을 만나 눈치 보지 않고 기타를 배우고 있다. 나의 선생님은 내 기타에서 어떤 소리가 나든, 한 박자도 나보다 앞서치지 않고 모든 곡을 함께 완주한다. 기타가 좀 잘 쳐지는 날에 으쓱하며 선생님을 바라보면, 선생님은 잘 따라오는 내가 아닌 느리되 부지런히 따라오는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기타를 능숙하게 치는 선생님에게는 꽤 긴 기다림일지도 모르는 어설픈 연주시간이 끝나면 '정말 잘하셨어요.'라는 다정하고 진심 어린 칭찬도 잊지 않으신다.


나는 선생님을 볼 때마다 내가 다른 이들보다 더디고 피곤한 날에도 나를 잊지 않고 함께 연주하는 선생님의 모습이 절로 떠오른다. 가장 처음 G코드에서 C코드로 바로 옮겨 잡을 수 있게 되던 날, 바코드를 처음 잡았던 날, 보사노바 리듬을 처음 배우던 날. 이 모든 날들에는 선생님의 기다림이 있었다. 과한 칭찬도 불필요한 지적도 없다. 군더더기 없는 기다림으로 채워진 기타 수업시간은 지루할 틈이 없다. 아무리 이상한 연주라도 항상 기다리는 선생님 덕분에 나는 굉장한 일을 해낸 것 같아 즐거움에 가득 찬다.


기타 수업은 매주 월요일 밤 늦은 시간이다. 나보다 많은 나이만큼이나 이해심도 많은 어른들과 2시간 정도 함께 기타를 연습한다. 이 모임에는 매 주 돌아가며 한 명씩 한 곡을 연주하는 시간이 있다.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단 몇 사람이라도 내 앞에 있으면 덜덜 떨리고 손에 땀이 가득 찬다. 그렇지만 나는 두 달에 한번쯤 돌아오는 이 두려운 시간을 나도 모르게 손꼽아 기다린다.


수업시간에 비슷한 코드를 몇 번 반복하다 보면 제대로 치지도 못하면서 나는 또 지루해지고 만다. 그럴 때 집에서 혼자 좋아하는 곡을 골라 새 코드들을 익히면 참 재미있다. 잘 알던 노래라도 기타와 함께 노래하면 새 노래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리고 어설픈 내 노래에 귀 기울여 주는 모임 사람들이 있어 더 부지런히 연습하게 된다. 사람들 앞에서 한 곡을 연주하고 나면 내 실력을 똑바로 마주할 수 있게 되니, 다음에는 더 나아지고 싶다는 마음도 불끈 솟는다. 지루할 틈 없이 살 떨리는 연주를 연습하다 보니 어느새 9개월이 흘렀다.


나는 타고난 대로 자주 지루함을 느끼는 사람이고 평생 그럴지도 모른다. 그래서 앞으로 내가 기타를 그만두지 않는다면 지루함도 어김없이 나를 따라다닐 것이다. 지금까지의 지루할 틈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나를 기다린 선생님과 스릴 넘치는 연주가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 이 방법들도 무뎌질 것이다. 그런데 9개월이나 배우고 나니 '포기'로 지루할 틈을 메꾸기 싫어졌다. 이제 나는 이 지루할 틈을 무엇으로 채워 넣을지 궁리하는 쪽이 훨씬 더 재미있어졌다.



다음 틈은 9월 15일에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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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틈 하나, 나도 못 믿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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