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청춘에게... 참혹한 세상, 당신에게 좋은 어른이 되어줄께요.
수업을 듣고 있는 학생 한명에게서 메일이 왔다. 10.29 참사 현장에 있었다고. 그 현장의 혼란과 참혹함을 경험했고, 자책 속에 시간을 보내며, 희생자와 생존자를 비난하는 많은 글과 기사 댓글을 읽으며 혼돈과 상처를 입어 왔다고. 그래도 수업 때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잘못이 아닌 사회적 참사라고 이야기해줘서 위안을 얻었다고. 무거운 마음으로 답장을 썼다.
** 학생,
먼저 저에게 이메일을 보내줘서 고마워요.
내 수업을 듣고 있는 학생이 참혹한 참사 현장의 생존자였다는게 한편으론 놀랍고 마음 무겁기도 하고...
그래도 많이 힘겨울 텐데 솔직한 심정을 말해줘서, 나를 그런 얘기를 들어줄 수 있는 어른으로 생각해줘서 고맙고,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가 세월호를 겪고도 또 다시 *** 같은 젊은이들에게 이런 고통을 겪게 해서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입니다.
천재지변이라면 모두 함께 희생자를 추모하고 서로를 위로하는게 전부겠지만, 사회적 재난은 분명 막을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재난의 분명한 사회적 책임을 가리고, 다시는 이러한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시스템을 바꾸고 개선해야하기에 단순한 천재지변보다 어려운 문제입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다른 무엇보다 희생자와 생존자들의 아픔을 보듬고 공감하는데서 모두 함께 출발해야 한다는 점은 변할 수 없죠.
현장에 있었다는 자책, 그로인한 트라우마가 아직 크게 남아있을거에요.
현장의 희생자와 생존자들을 비난하는, 무지함과 익명성을 방패삼아 공감이 결여된 야만을 부끄러움 없이 행하는 수많은 무례한 말들이 ***에게 상처가 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수업 때도 얘기했지만, 축제를 즐기기 위해 현장에 나간건 아무런 잘못이 없어요.
이 사건은 사회적 재난이기에, ***의 상처는 혼자 이겨내야하는 문제가 아니에요.
공감받기 위해 사람들에게 상처를 이야기하고 함께 서로 보듬어 이겨내야 해요.
이후 사회적 책임을 가리고, 제도와 문화를 바꿔나가는 과정은 시끄러운 사회적 갈등 속에 이루어질 겁니다.
이 지난한 과정이 다시 ***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함께 강하게 이겨나갔으면 합니다.
그렇게 더 좋은 사회, 안전한 국가를 만드는 것이 우리가 이 상처를 함께 극복하는 길이니까요.
이 사회의 기성세대, 한 명의 어른으로서 ***에게 한없이 부끄럽지만,
그래도 이야기 들어줄 어른으로 인정해줘서, 연락해줘서 너무 고마워요.
언제라도 어려울 때, 누군가 상의할 어른이 필요할 때,
그때도 잊지말고 연락주세요. 좋은 어른이 되어줄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