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터팬 Mar 02. 2024

나는 천국을 보았습니다

목사님! 저 여기 왔어요!

다시 암 환자가 되었습니다.      


얼마 전부터 미세하게 몸에 이상이 감지되면서 암 종양 수치가 치솟았습니다. M.R.I 판독 결과 암처럼 보이는 것들이 발견되었고 조직검사에서 드디어 암으로 최종 판정을 받았습니다.  

   

십수 년 전 첫 번째 암 수술받은 이후 두 번째입니다. 처음 암을 발견했을 때는 한창 활발하게 목회하던 비교적 젊은 오십 대였기 때문에 그 갑작스러운 일에 크게 당황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목회도 현직에서 은퇴했고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탓인지 그때보다는 훨씬 담담하게 또다시 암이 발병했다는 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다만 어쩔 수 없이 문득문득 아내의 얼굴에서 근심 빛이 떠오르는 것을 보는 일은 가슴 아픈 일입니다. 아무리 태연한 척 나를 위로해도 마음속의 그늘만은 숨길 수 없는 모양입니다.  



***


    

조직검사를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했던 지난주의 일입니다.     

 

병실 건너편 침상에 중증 질환을 앓고 있는 나보다 연세가 훨씬 많은 노인이 한 분 누워계셨습니다. 주렁주렁 몸 이곳저곳에 고무호스를 꽂은 채 산소호흡기로 힘겹게 하루하루 목숨을 연명하고 있는 그 노인의 모습에선 어느덧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었습니다.

     

목사로서 당연히 이제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으신 저 어르신께 복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워낙 육신이 쇠약하고 정신이 혼미한 상태였기 때문에 간병하시는 배우자 할머니께 내가 직접 그린 만화전도지 한 장을 전해드리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조직검사를 마치고 퇴원하던 날, 내 차 바로 앞으로 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을 마치고 장지를 향해 출발하는 영구차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영구차의 뒤를 따라가며 생각했습니다. 저 관 속에 누워계신 분의 영혼은 구원받았을까? 과연 저분은 천국에 들어가셨을까?    


      

***   


       

첫 번째 암 투병하던 때의 일이니 벌써 꽤 오래전 일입니다.  

    

막상 암 환자가 되자 우리 교회에 출석하는 교우님들이 완전히 새롭게 보였습니다. 암 환자가 되기 전에는 우리 교우님들이 겪고 있는 여러가지 고통의 문제들이 그리 절절하게 가슴에 와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내가 암으로 고통받게 되니까 비로소 우리 교우님들의 고통이 뼛속까지 사무치게 느껴졌습니다. 


그 무렵은 우리 교회에 갑자기 온갖 크고 작은 사연을 지닌 분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빚지고 파산한 분들. 가정이 깨지고 이혼한 분들. 자녀 문제로 고통받는 분들. 원통하고 억울한 일 당한 분들. 휠체어 타고 다니는 중증 장애인들. 각종 난치병 환자들. 정신질환자들. 심지어는 귀신 들려 길길이 날뛰는 분까지 꾸역꾸역 우리 교회를 찾아 나왔습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제왕이었던 다윗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윗이 왕 되기 전 원수에게 쫓겨 다닐 때 아둘람 동굴이란 곳으로 피신을 합니다. 그때 다윗이 그곳에 숨어있다는 소문을 들은 수많은 사람이 알음알음 아둘람 동굴로 모여듭니다. 그 사람들 모두가 원통하고 억울한 일 당한 사람들, 어디 오갈 데 없는 불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 우리 교회의 모습이 그와 비슷했습니다. 갖가지 기막힌 사연을 지닌 분들이 여기저기서 모여들어 늘 예배당이 차고 넘쳤고 그래서 주일에는 예배를 몇 번씩 나눠드려야만 했습니다.  


        

***  


        

어느 날 유난히 마르고 병색이 짙은 50대 여성 한 분이 교회 사무실로 나를 찾아왔습니다. 갓 이사 왔는데 우리 교회를 다니고 싶다고 했습니다. 상담해보니 담낭암 말기 환자였습니다.  

    

서울대병원에서 길어야 서너 달밖에 살 수 없다는 말기 암 판정을 받은 분이었습니다. 여생을 공기 좋은 곳에서 살다 가겠다고 남편과 단둘이 우리 동네를 찾아 갓 이사 오셨다고 합니다. 

     

목사인 나 역시 암 환자라고 하는 사실을 말해주자 큰 위로를 받는 눈치였습니다. 복음을 전하자 마치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갈급한 심령으로 즉시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생명이 다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오직 믿음으로 살겠다고 결단을 하셨습니다.    

  

그날부터 모든 예배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열심 있는 성도가 되었습니다. 그 병약한 몸으로 하루도 빼먹지 않고 새벽기도회까지 나오는 모습을 바라보며 모든 교우가 다 놀라워했습니다. 

    

나도 동병상련하는 심정으로 매일매일 새벽 시간마다 안수하면서 간절히 기도해주었습니다. 신기하게 그때부터 극심했던 복부의 통증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표정도 눈에 띄게 밝아졌습니다. 건강이 하루하루 급속히 회복되어가는 것이 눈에 보였습니다.  

    

세월이 더 흘러가자 말기 암 환자라는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펄펄 날아다녔습니다. 서너 달밖에 못산다고 하던 분이 어느덧 해를 훌쩍 넘기고 나서도 너무나 멀쩡하게 교회 안의 온갖 크고 작은 봉사의 일을 다 도맡아 하다시피 하고 있었습니다.   

   

그분을 지켜볼 때마다 내 가슴이 벅찼습니다. 진짜 기적이 일어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더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제발 살아날지어다! 병은 나을지어다! 기적은 일어날지어다!   

   

아.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어느 날 그분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했더니 갑자기 집에서 쓰러지셨다는 충격적인 비보가 전해졌습니다. 아니. 이게 웬일이란 말인가? 놀라서 한걸음에 달려갔지만 이미 때는 늦어있었습니다. 

     

점점 임종이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남편의 손을 잡고 그분이  남긴 말은 이 말이었습니다.    

  

“여보. 절대 목사님을 떠나면 안 돼요.”    


       

***   

  


도저히 장례예배를 인도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수도꼭지처럼 계속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수많은 장례예배를 인도했지만, 그 정도로 애통해 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발인예배 날이 다가왔습니다. 새벽기도회를 마치면 바로 발인예배를 인도하러 가야 합니다. 기도하려고 불 꺼진 캄캄한 강단 아래 엎드리자 나도 모르게 통곡이 흘러나왔습니다.    

  

비록 내가 생명의 주인은 아닐지라도 그분만은 꼭 살리고 싶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시고 그분을 살려주시기를 간절히 소원했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허무하게 가버렸습니다.  

    

그렇게 하염없이 통곡하던 어느 순간이었습니다. 갑자기 어둠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또렷이 들려왔습니다. 


"얘. 너 왜 그렇게 울고 있니? 너 왜 그렇게 슬퍼하고 있는 거냐?"


그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 왜 제 기도를 응답해주지 않으셨습니까? 왜 그토록 우리가 간절히 기도했는데도 불쌍한 김정자 성도를 그렇게 일찍 데려가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즉시 내 질문에 응답해주셨습니다. 이상한 것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눈이 열리면서 바로 앞에 두꺼운 커튼이 드리워져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이게 뭐지? 하는 순간, 그 커튼이 쫙 젖혀지는 것이었습니다. 

    

커튼이 젖혀지자 신비하고도 놀라운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눈앞에 강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너무나도 맑고 푸르고 깨끗한 강물이었습니다. 아아. 내 평생 그토록 아름다운 강은 본 적이 없습니다. 

    

주위를 둘러보자 눈길이 닿는 곳마다  지천으로 꽃이 만발해있었습니다. 강가엔 주렁주렁 열매 맺힌 아름드리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었습니다. 이 세상 풍경이 아니었습니다. 황홀하리만큼 비현실적인 풍경이었습니다.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나? 어둠 속에서 허벅지를 꼬잡어보았았습니다. 아팠습니다. 내 몸의 감촉이 또렷이 느껴졌습니다. 이건 분명 꿈이 아니었습니다. 눈을 감아도 떠도 그 풍경은 계속 내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그 풍경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목사님!”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귀에 익은 목소리였습니다. 누가 나를 부르고 있지? 어디에서 들려오는 소리지?  

   

아! 강 건너 들판 위로 그분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눈부시게 빛나는 하얀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똑같이 하얀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그분을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머리에는 울긋불긋한 꽃도 꽂고 있었습니다. 볼이 터져나갈 듯 환하게 함박웃음을 웃고 있었습니다. 그분이 저렇게 행복해 하는 모습은 처음 보았습니다.   

    

그분이 다시 한번 두 손을 입가에 대고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목사님! 저 여기 왔어요!”  

    

꿈결처럼 그분의 목소리가 아른아른 귓전에 메아리쳐왔습니다. “목사님! 저 여기 왔어요!” “목사님! 저 여기 왔어요!” “목사님 저 여기 왔어요!” “목사님! 저 여기 왔어요!”  


        

***      


     

펼쳐졌던 커튼이 다시 주르르 가려지면서 그 아름다운 풍경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내 눈앞엔 불 꺼진 예배당의 캄캄한 어둠만 남았습니다. 한동안 어둠 속에 멍하니 앉아있었습니다.  

    

그리고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그분이 정말 천국에 가셨구나!” 

    

가슴이 뛰었습니다. 천국에 있는 그분을 내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분은 이제 아픈 것도 없고 애통해 할 일도 없고 눈물 흘릴 일도 없고 죽는 것도 곡하는 것도 없는 저 영원한 천국 아름다운 낙원으로 가셨구나. 


퍼뜩 성경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이 말씀이 깨달아졌습니다.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아아. 그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그분이 가 계신 저곳이 바로 천국이었습니다. 


말로 표현할 길 없는 벅찬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그때부터 눈물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애통함도 사라졌습니다. 대신 내 영혼의 깊은 곳으로부터 찬송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날의 발인예배는 거의 축제가 되었습니다. 

     

다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얘야. 너는 목사지? 


"예. 아버지"


"그렇다면 목사는 무엇 하는 사람이냐?   

   

나는 즉시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영혼을 구원해서 천국으로 보내는 사람입니다.”      


     

    


      

내세를 믿지 않는 분들이 많습니다. 죽으면 다 끝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천국이나 지옥 같은 것이 어디 있냐? 그런 것은 다 신화 같은 이야기고 지어낸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심지어는 오래 교회를 다닌 분 중에도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 분을 만나면 나는 늘 이렇게 말해줍니다.     


“아닙니다. 천국은 분명히 있습니다. 나는 천국을 보았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폭설 내린 날의 남산길 로맨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