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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팬 Apr 04. 2024

드디어 도스토예프스키의 무덤 앞에 서다.

상트페테르부르그, 운명처럼 라스콜리니코프를 만났습니다. 

“참 오랜만이오. 도스토예프스키.”   

   

먼 길을 돌고 돌아 드디어 도스토예프스키 앞에 섰습니다. 그가 잠들어있는 넵스키 수도원의 예술인 묘지는 어항 속처럼 고요했습니다.   

   

사다리꼴로 만들어진 묘비 앞엔 도스토예프스키의 흉상이 우뚝 세워져 있습니다. 눈을 들어 흉상을 바라보자 쏘는 듯한 그의 시선과 마주쳤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입을 열었습니다.  

    

“몇십 년 만에 다시 자네를 만나게 되는군.”   

  

나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도 나를 기억하고 있었구나.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너무 늦게 찾아왔습니다.”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고? 왜?”  

   

백야의 작열하는 햇살 아래 도스토예프스키가 희미하게 웃음 짓는 듯 보였습니다.   


        

   


     

당시 내 나이 사십 대. 아직 한창 젊은 시절이었습니다.  

    

인천공항이 미처 개항하기 전의 김포공항에서, 그때만 해도 무척 낯설고 두려웠던 소련이 아닌 러시아 항공편에 탑승했습니다.    

  

20세기 말의 러시아는 혼란스러웠습니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며 나라 이름까지 러시아로 바뀌는 등 엄청난 정치적 격변기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러시아행을 결심하던 무렵은 서방세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지면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던 고르바초프가 갑자기 실각하고, 그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된 옐친도 얼마 못 가 사임해버리고, 러시아를 이끌 새로운 지도자로 KGB 출신의 젊은 푸틴이 갓 대통령으로 취임했던 때였습니다.  

    

과연 푸틴의 러시아는 어떤 길을 가게 될 것인가? 세계 모든 나라가 막연한 기대와 불안감 속에 러시아의 행보를 주목해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   


       

끝도 없이 펼쳐지는 시베리아의 광활한 삼림 위를 날고 또 날던 비행기는 마침내 해가 지고 또 뜰 무렵 은빛 날개를 펼치며 크라스노야르스크 공항의 활주로에 가뿐히 내려앉았습니다.    

 

크라스노야르스크는 바이칼 호수 가까운 곳에 자리 잡은 시베리아의 중심 도시 중 하나이면서 상트페테르부르그와 모스크바로 이어지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주요 분기점이기도 합니다.   

   

작가 안톤 체호프가 시베리아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매혹적인 도시라고 극찬했을 정도로 자연경관이 뛰어나서 오늘날엔 전 세계 여행자들이 물어물어 찾아올 정도로 명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크라스노야르스크 공항에 첫걸음을 내디딜 때 느꼈던 감정은 두려움 그 자체였습니다. 눈 앞에 펼쳐지는 모든 풍경이 황량하다 못해 거의 살벌하기까지 했습니다.   

   

입국심사대 앞에 섰을 때 그 두려움은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붉은 별이 그려진 견장을 단 장교 한 사람이 내가 내민 한국여권을 보더니 매서운 눈초리로 나를 쏘아보는 것입니다. 그때만 해도 아직 그곳은 러시아가 아닌 소련이었고 한국 또한 수교 국가가 아닌 적성 국가였습니다.   

   

여권이 일시적으로 압류되는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거의 석방(?)되다시피 공항에서 풀려나와 기차가 경적을 울리며 출발하기 직전 간신히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올라탈 수 있었습니다. 


          

    


    

레닌그라드에서 상트페테르부르그란 옛 수도의 명칭을 되찾은 러시아 제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그는 외견상 활기 넘치고 역동적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안을 들여다보면 구석구석 가난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그 아름다운 백야의 도시에서 여름 한 철을 머무르는 동안 우리나라에선 생전 보지 못하던 진기한 광경을 많이 보았습니다. 거리 곳곳마다 길게 줄지어 늘어서 있는 사람들의 행렬이었습니다.   

   

처음엔 그게 뭐 하는 사람들인지 몰랐었는데 곧 민간 자선단체에서 제공하는 구호품을 받으려고 줄지어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행렬이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공산주의 배급 시스템이 무너지면서 자랑스러운 문화도시의 시민들이 하루아침에 빈민으로 전락해버린 것입니다.  

      

19세기 말의 러시아도 가난했습니다. 거리거리마다 도시 빈민들로 우글거렸습니다. 차르 왕정이 급격히 흔들리며 혁명의 기운이 꿈틀거리던 혼란의 시대요 정치적 대 격변기였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도 가난했습니다. 그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다 가난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대표작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특히 더 가난한 청년이었습니다.     

 

열여섯 살 때의 나도 가난했습니다. 아버지는 병으로 하루하루 사경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넋이 나간 채 날만 밝으면 이곳저곳으로 돈을 꾸기 위해 돌아다녔습니다.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선 돈이 필요했습니다. …돈 돈. 돈. 돈. 나는 정말 절실하게 돈을 구했습니다.  

    

그러다 드디어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고 위험천만한 사춘기였습니다.  

    

나는 아무도 모르게, 은밀하게, 혼자 범행을 계획하기 시작했습니다. 범행 장소를 물색했고 범행 대상도 찾아냈습니다. 범행 시기도 정했습니다. 범행 도구도 정했습니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칼도 준비했습니다. 날 선 칼을 한 자루 구해 서랍 속 깊숙이 숨겨놓았습니다. 

     

하필 그때 “죄와 벌”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운명처럼 라스콜리니코프를 만났습니다.  

    

소설 속의 라스콜리니코프도 범행을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은밀하게, 범행 대상을 물색했습니다. 라스콜리니코프가 찾아낸 범행 대상은 고리대금 업자 전당포 노파였습니다. 범행 장소와 범행 시기도 정했고 범행 도구도 정했습니다. 범행 도구는 도끼였습니다.   

   

라스콜리니코프가 외투 속에 도끼를 감추고 전당포 노파를 찾아가는 장면을 읽을 때 머리카락이 솟구쳐오르는 전율을 느꼈습니다. 아. 그 모습이 다름 아닌 바로 내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밤을 홀딱 새워가며 그 두꺼운 소설을 다 읽었습니다. 라스콜리니코프가 기어코 전당포 노파를 살해합니다. 범행 현장에 갑자기 나타난 죄 없는 노파의 동생까지 함께 죽이게 됩니다. 극심한 죄책감에 시달리다 소냐를 만납니다. 가족을 위해 자기 몸을 희생한 거룩한 창녀 소냐 앞에 무릎을 꿇고 죄를 회개합니다. 그 후 자수하고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납니다. 그리고 시베리아에서 드디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합니다.     

 

“죄와 벌”의 마지막 장까지 다 읽었습니다.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었습니다. 서늘한 바람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밤이 지나고 새벽 미명이 밝아오고 있었습니다.     

 

책상 서랍 속 깊숙이 감추어놓았던 칼을 꺼냈습니다. 이 칼을 들고 그 집의 담벼락을 넘으려 했었습니다. 칼을 든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 했던 거야.    

  

방바닥에 엎드려 울었습니다. 한참 울다 보니 학교 갈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가방 챙겨 들고 집을 나오며 쓰레기통에 칼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학교를 향해 냅다 뛰었습니다.  


         

***        


   

“참 오랜만이오. 도스토예프스키.”    

  

먼 길을 돌고 돌아 드디어 도스토예프스키 앞에 섰습니다. 그가 잠들어있는 넵스키 수도원의 예술인 묘지는 어항 속처럼 고요했습니다.    

  

사다리꼴로 만들어진 묘비 앞엔 도스토예프스키의 흉상이 우뚝 세워져 있습니다. 눈을 들어 흉상을 바라보자 쏘는 듯한 그의 시선과 마주쳤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입을 열었습니다.

      

“몇십 년 만에 다시 자네를 만나게 되는군.”     


나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도 나를 기억하고 있었구나.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너무 늦게 찾아왔습니다.”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고? …왜?”   

  

백야의 작열하는 햇살 아래 도스토예프스키가 희미하게 웃음 짓는 듯 보였습니다.  

    

“죄와 벌을 읽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 그날 밤 그 집 담벼락을 넘었을 것입니다.”   

  

“…그랬을 테지.”     


“그런데 당신이 쓴 소설이 나를 구원해주었습니다.” 

    

“그것참 다행스러운 일이군.”  

   

“고맙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   

  

“그런데 자네는 내가 구원해준 것이 아니야.”     


“………”     


“그분이 구원해주셨지. 이미 자네도 잘 알고 있지 않나?”  

   

“………”  

   

나는 말 없이 그의 흉상 아래 성경 구절을 바라보았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묘비엔 이런 성경 구절이 새겨져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한복음 12장 24절)   


       

        


 

오래전 일을 추억하며 어젯밤 “죄와 벌”을 다시 읽었습니다. 소년 시절에 읽었던 책을 노년의 나이에 다시 보니 옛날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습니다. 오십 수년 전의 방황하던 내 어린 영혼이 보였습니다. 세상을 향해 끝없이 분노하고 또 분노하던 사춘기 소년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 시절 나를 구원한 것은 문학이었습니다. 문학을 사랑하는 어린 소년이 매일 밤을 새워가며 미친 듯이 무수한 책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운명처럼 도스토예프스키를 만났습니다.      


그 후로 까마득한 세월이 흐르고 또 흐른 오늘에서야 비로소 이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도스토예프스키를 구원하고 소설 속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를 구원하신 구세주 예수그리스도께서 그때 이미 열여섯 살 소년에게도 찾아와 마음 문을 쿵쿵 두드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요한계시록 3장 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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