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아내는 천둥소리 같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목사님. 저 미치겠어요. 기도해주세요.”
“왜요? 집사님. 무슨 일 있어요?”
목회 은퇴하기 전 한 동네 살면서 잘 알고 지내던 이웃교회 집사님을 우연히 길에서 만났습니다. 나를 보자마자 대뜸 울상을 지으며 하소연부터 쏟아냈습니다.
“창피해서 누구한테 말도 못 하겠는데요 우리 딸 때문에 미치겠어요.”
“따님이요? 따님이 왜요?”
“목사님. 우리 아이가 점에 미쳤어요.”
“점이라니요?”
“우리 아이가 점치는 일에 미쳤다니까요?”
“……예?”
“목사님. 요새는요 인터넷 점집이라는 게 있어요. 인터넷으로 점을 쳐주는 점집들이 있는데요 얘가 완전 거기 빠져버렸어요. 아침에 눈 뜨면 거기 들어가서 점부터 봐요.”
“………”
“어떡하면 좋아요. 점괘가 나쁘게 나왔다고 오늘은 출근도 안 했어요. 어떻게 들어간 직장인데 세상에 거기도 그만두겠대요. 제발 그런 짓 하지 말라고 야단쳐도 요새는 젊은 아이들이 다 점친다고 되려 큰소리예요. 얘는 심해도 너무 심해요. 아예 중독이에요. 목사님 어떡해요. 이러다 하나님께 벌 받을까 무서워요.”
“…따님이 교회 잘 다니고 신앙생활 잘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어쩌다가…”
“솔직히 말씀드리면 어릴 땐 말 잘 듣고 교회 잘 다녔었는데 다 커선 바쁘다고 주일예배도 안 드릴 때가 많았어요. 그러다 남자친구가 생기고 나서부턴 더 교회와 멀어져 버렸어요. 남자친구가 안 믿는 집 아이래요.”
“………”
“학교 졸업하고 취직이 안 되어 고민할 때 남자친구가 점 보러 가자 해서 장난삼아 간 적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점쟁이가 자기 일을 족집게처럼 다 맞추는 걸 보고 깜짝 놀랐대요. 그때부터 점에 푹 빠져버렸는데 결국 그놈의 점 때문에 남자친구하고도 헤어졌어요. 사주가 너무 안 좋아서 결혼하면 이혼한다고…”
“………아.”
지난날의 기억 하나가 떠오르며 내 입술에서 절로 탄식이 흘러나왔습니다.
***
내 나이 갓 서른을 넘겼을 때니 벌써 거의 사십여 년 전 일입니다.
그 무렵 나는 사업이 쫄딱 망해 완전히 거덜이 난 상태였습니다. 빚도 엄청나게 많이 져서 날마다 빚 독촉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맨정신으로는 도저히 집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밤마다 술이 떡이 되도록 취해 집에 들어갔습니다. 아내의 눈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둘째는 아직 낳기 전이었고 큰아이가 만 세 살 되던 해였습니다. 결혼한 지 불과 몇 년 만에 기어코 일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너무 건방을 떨었습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잘 나가던 직장을 호기롭게 때려치우고 처음으로 내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내가 사업만 시작하면 금방 돈을 삼태기로 긁어모을 줄 알았습니다.
어려서부터 수완이 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림 잘 그리기로 소문난 아이였지만 얌전히 그림 그리는 것만으로는 양에 차지 않았습니다. 내가 그린 그림을 친구들에게 돈 받고 팔았습니다. 그때는 만화 가게 가서 만화책 보는 것이 아이들의 거의 유일한 오락거리였던 시대였습니다.
만화도 잘만 그리면 돈이 된다는 것을 어린 녀석이 영악하게 일찌감치 터득했습니다. 만화를 그려서 매일 아침 교실 뒤 게시판에 연재했습니다. 재미있다는 소문이 나자 내가 그린 만화를 보겠다고 이 반 저 반 아이들이 몰려오고 나중엔 선생님들까지 일부러 찾아와 구경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렇게 연재한 만화가 끝나면 한 권의 책으로 묶었습니다. 그리고 “이 만화책은 전 세계에서 단 한 권밖에 없는 유일한 만화책이야. 나중에 내가 유명해지면 이 만화책이 큰돈이 될 거야.” 큰소리치고 홍보하며 책 장사를 했습니다. 주로 돈 많은 부잣집 아이들에게 팔았지만 나를 귀엽게 여기시던 담임 선생님이 “아이고. 요놈. 장사꾼이네.” 꿀밤을 한 대 먹이시며 사주신 적도 있었습니다.
그 무렵은 우리 집이 급속히 가난해지기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공직에 계시던 아버지가 옷 벗고 나와 사업을 시작하셨는데 어떻게 된 게 하시는 사업마다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었습니다. 나중엔 믿었던 지인에게 사기까지 당하고 전 재산을 다 날려버린 후 기어코 암에 걸려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집안이 처참히 무너져가는 사이 나는 어느덧 고등학생이 되어있었습니다. 아버지 장례를 마치고 돌아온 날 새벽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이불 뒤집어쓰고 숨죽여 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어머니의 흐느끼는 울음소리를 듣는 순간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습니다. 그때 결심했습니다. 이제부터는 내 힘으로 공부하겠다. 절대 아버지 없이 혼자 사는 어머니 신세 지지 않겠다.
그리고 스스로 한 약속을 지켰습니다. 당장 그날부터 여기저기 신문보급소를 찾아다니다가 마침내 빈 자리를 하나 얻어 신문 배달을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소년가장이 되었습니다.
신문 배달하는 일 말고도 닥치는 대로 이것저것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특히 물건 파는 아르바이트를 잘했던 것 같습니다. 무슨 물건이든 내 손에만 쥐어지면 척척 잘도 팔았습니다. 다들 군대 갈 때는 용돈을 받아간다는데 나는 오히려 어머니께 용돈을 드리고 갔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부터 내 힘으로 살았습니다. 내 힘으로 공부했습니다. 내 힘으로 취업했습니다. 내 힘으로 결혼했습니다. 나는 정말 우리 어머니의 유일한 자부심이었습니다.
***
아내와 결혼하기 위해 상견례 하던 날이었습니다. 처가에서는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나오셨고 우리 집에선 아버지를 대신해서 외할머니가 어머니와 함께 나오셨습니다. 아내의 집은 우리 집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부잣집이었습니다. 외할머니는 입바른 소리 잘하시는 당찬 분이셨습니다. 큰 부잣집이던 사돈댁에 전혀 꿀리지 않고 당당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얘가 애비 없는 가난한 집 아이라고 걱정하실 것 없어요. 얘는 생활력이 강해요. 얘는 사막 한복판에 떨어뜨려 놓아도 살아남을 애예요. 절대로 댁의 따님 고생시킬 일은 없을 겁니다.”
나도 그럴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말씀이 맞는 줄 알았습니다. 평생 내 여자를 고생시킬 일은 없을 줄 알았습니다. 나는 수완이 좋아서, 생활력이 강해서, 하는 일마다 승승장구 잘 될 줄 알았습니다. 이제 사업만 시작하면 돈을 가마니로 긁어모으게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착각이었습니다. 나도 틀렸고 할머니도 틀렸고 어머니도 틀렸습니다. 잘 다니던 회사를 호기롭게 때려치우고 나와 처음 시작한 사업은 얼마 가지 못하고 쫄딱 망해버렸습니다.
그때부터 재앙이 시작되었습니다. 무엇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하루하루 빚만 더 눈덩이처럼 계속 불어났습니다. 빚이란 놈이 그렇게 무시무시한 놈인지 예전엔 미처 몰랐습니다. 아버지가 빚에 눌려 돌아가신 것처럼 나도 금방 빚더미에 깔려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빚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면 칠수록 점점 더 깊고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내가 이것밖에 안 되는 놈인가? 내가 이렇게 무능한 놈이었던가? 날마다 자학하며 술에 절어 살았습니다. 누가 나를 수완 좋은 사나이라고 말했던가? 누가 나를 생활력 강한 상남자라고 말했던가? 아니었습니다. 아니었습니다. 상남자는커녕 등신 중의 상 등신이 바로 나였습니다.
믿고 의지했던 아들이 무너져가는 모습을 본 어머니는 절망하고 또 절망했습니다. 가슴앓이하다 어느 날 우리 집에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혼자 있던 아내에게 이렇게 강권하셨습니다.
“얘. 아무래도 안 되겠다. 저기 금호동에 용한 점쟁이를 잘 아는데 우리 거기 같이 가보자.”
“예? 저… 점쟁이요?”
아내는 결혼하기 전 교회에 다녔습니다. 학교도 미션스쿨을 다녔습니다. 주일학교 반사도 하고 예배시간에 피아노 반주도 했습니다. 1973년 여의도 광장에서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의 전도대회가 열렸을 땐 두 손 높이 들고 기도하며 선교사가 되겠다는 서원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지켜질 수 없었습니다. 태생적으로 기독교와는 아예 거리가 먼 나와 연애하고 결혼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집안은 사돈의 팔촌까지 이 잡듯 샅샅이 찾아봐도 교회 다니는 인간이라곤 단 한 사람도 없는 그야말로 순수 기독교 무공해 청정 집구석이었습니다.
…지금은 잘 모르니까 그렇지만 결혼만 하면 나를 따라 교회 나오게 되겠지. 내가 원하는 건 다 들어주는 남자니까 일단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면 신앙생활도 잘하겠지. 이런 연애 시절의 순진무구한 생각은 말 그대로 착각이었고 어리석기 짝이 없는 헛된 꿈이었습니다.
나는 처음부터 기독교란 종교에 아무 관심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교회 다니는 사람들의 겉 다르고 속 다른 위선적인 모습을 몇 차례 목격하고 나서부터는 오히려 반기독교적인 정서까지 갖게 되었습니다. 아내가 교회 함께 다니자고 권유하면 번번이 이렇게 거절하곤 했습니다.
“당신이 믿는 종교를 존중해줄 테니까 그 대신 당신도 나에게 당신 종교를 강요하지 말아줘.”
종교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는 단 한 가지 차이점 외엔 우리는 여전히 연인 같은 부부 사이였고 나도 여전히 로맨틱한 신랑이었습니다. 그래서 결혼 후에도 연애 시절처럼 휴일만 되면 여기저기 사방팔방 놀러 다니기 바빴습니다. 그런 세월이 한 해 두 해 흘러가면서 점점 아내까지 교회와 멀어져가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아예 교회도 나가지 않고 완전히 기독교 신앙 자체를 잊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런 충격적 상황과 마주치게 된 것입니다.
“서울에서 제일 용한 점쟁이다. 도대체 얘가 왜 이렇게 안 풀리는 건지 같이 가서 물어보자.”
“………”
이렇게 아내는 시어머니 손에 이끌려 점쟁이 집까지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
“아. 이거 뭐야? 얘네들 만나지 말아야 할 애들이 만났구먼. 이거 큰일 났네. 최악이야.”
시어머니 앞에서 점쟁이에게 충격적인 말을 들었습니다.
“얘네들 워낙 안 맞는 애들이 만났어. 아이고. 나빠도 이렇게 나쁠 수가 없어. 얘네들 헤어지게 되어있어. 헤어지지 않으면 죽어. 그리고 앞으로도 뭐 하나 되는 일이 없을 거야.”
어머니도 아내도 얼굴이 사색이 되었습니다. 새파랗게 질린 어머니가 점쟁이 앞으로 바짝 다가갔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해요?”
“굿해야지. 부적도 해야 해. 안 하면 큰일 나.”
“………”
문제는 그 비용이 엄청났다는 것입니다. 가진 거라고는 빚밖에 없는 우리로선 꿈도 꾸지 못할 큰돈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점쟁이 집을 나왔습니다.
“얘. 안 하면 죽는다는데 어떡하니? 해야지.”
“………”
“…집 팔자. 살려면 집이라도 팔아야지.”
“………”
숨죽이며 시어머니 뒤를 따라 걷고 있던 아내가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그때 아내의 눈에 퍼뜩 십자가가 들어왔습니다.
맑고 푸른 하늘 위로 어느 교회의 십자가가 우뚝 솟아있었습니다. 아내가 두 눈을 크게 뜨고 하늘 위에 높이 걸려있는 십자가를 바라보았습니다.
아아. 십자가. 십자가.
그 순간 아내의 귀에 천둥소리 같은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내 딸아. 돌아오라. 내 딸아. 돌아오라.”
아내의 두 눈에 와락 눈물이 솟구쳤습니다.
천둥소리 같은 하나님의 음성이 또다시 들려왔습니다.
“사랑하는 내 딸아. 어서 내게로 돌아오라. 사랑하는 내 딸아. 어서 내게로 돌아오라.”
아내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습니다.
“오. 하나님.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하나님. 저를 용서해주세요.”
그리고 눈물 젖은 얼굴을 들어 시어머니를 마주 바라보았습니다.
“어머니.”
“………”
“저 굿 같은 것 안 할 거예요. 부적도 안 할 거예요.”
“……뭐?”
“귀신은 복을 주지 못해요. 복은 오직 저 하늘의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거예요.”
어머니가 어안이 벙벙해서 며느리의 낯선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고 서 있었습니다.
“어머니. 저 이제부터 교회 나갈 거예요.”
“………”
그리고 정말 다음날부터 집 가까운 동네 교회의 새벽예배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시작한 새벽기도를 수십 년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계속하고 있습니다. 아내가 수십 년 세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새벽 기도를 다니는 동안…
나는 성경과 복음을 만화로 그리는 우리나라 최초의 기독교 만화가요 작가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신문 잡지에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연재하며 오십여 권의 책을 출판했고 나중엔 목사까지 되었습니다. 아내는 많은 성도를 돌보고 섬기며 기도해주는 내가 설립한 교회의 어머니 같은 사모가 되었습니다. 아내를 점쟁이 집으로 이끌고 갔던 어머니는 권사님이 되어 신앙생활 잘 하시다가 몇 해 전에 자는 듯 평안히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
“집사님. 따님과 이 말씀 꼭 좀 같이 읽어보세요.”
“예? 무슨 말씀인데요?”
집사님에게 구약성경 신명기 18장 말씀을 펴서 읽어주었습니다.
“점쟁이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진언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희 가운데에 용납하지 말라. 이런 일을 행하는 모든 자를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나니…”
“………”
“집에 가서 하나님이 지금 따님을 이렇게 부르고 계신다고 전해주세요.
“………”
“내 딸아. 돌아오라. 내 딸아. 돌아오라.”
“………”
“사랑하는 내 딸아. 어서 내게로 돌아오라. 사랑하는 내 딸아. 어서 내게로 돌아오라.”
가을 하늘이 시리도록 푸르르고 청명합니다.
눈을 들어 저 맑고 푸른 가을 하늘을 올려다보세요. 그리고 하늘을 향해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세요.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천둥소리처럼 들려올 것입니다.
“내 아들아. 돌아오라. 내 아들아. 돌아오라.”
“내 딸아. 돌아오라. 내 딸아. 돌아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