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불편함을 동경한다. 오랫동안 그렇게 느껴왔었다.
세상엔 일부러 불편함을 행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면 바로 목적지까지 가는 버스 대신 좀 더 빙 둘러가는 버스를 타는 사람이 있고, 인스턴트 커피나 커피머신을 이용하는 대신, 직접 원두를 갈아 드립커피를 내려 마시는 사람이 있다. 또한, 인터넷으로 클릭 한번만 하면 상대방의 주소지로 선물을 배달해 줄 수 있음에도 직접 가게로 가서 선물을 구매하고 포장까지 한 뒤 상대를 만나 선물을 전해주는 사람도 있다. 나는 이러한 불편함이 매우 달갑다. 훨씬 시간과 노력이 많이 걸리는 일임을 알면서도 행하는 것은 저 마다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부여하는 것은 개인이 그 행위를 경험하는 과정 사이에 느낌과 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품이 많이 드는 행동을 하는 과정에서 생각을 통해 그 행동이 본인에게 ‘좋다’고 정의내린 것이다. 나는 경험하며 생각하고 그 생각의 결과로 또다시 일부러 불편함을 행하는 이 일련의 과정을 낭만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쓸 때도 컴퓨터를 켜서 타이핑을 치면 훨씬 빠르게 글을 쓸 수 있다. 쓰다가 잘못 쓰면 백스페이스키를 몇번 누른 뒤 다시 쓰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이와 펜을 이용해서 글을 쓸 때는 지우기가 쉽지않다. 지우개로 지우면 흔적이 남고 수정테이프는 왠지 보기가 싫다. 따라서 종이에 펜으로 글을 쓸 때는 훨씬 생각을 많이하게 되어 글을 쓰는데 보다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물론 글씨를 손수 쓰는 것이 타이핑보다 물리적으로 더 느리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 점에서 손수 글을 쓰는 것이 글을 쓰는 사람으로 하여금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이유다. 예를 들어 편지를 쓸 때도 내 눈앞에 놓인 것이 편지지 한장이라면, 나는 이 한장안에 상대방에게 하고싶은 이야기를 모두 담아야한다. 한글자라도 잘못 썼다간 수정한 티가 아주 많이 나는 편지를 전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편지를 쓰는 사람이 상대방에게 하고 싶은 얘기를 보다 매끄럽게 다듬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얘기는 삭제하며 일종의 퇴고 과정을 거치게 된다. 편지를 받는 사람은 미처 다 알지 못할 많은 생각의 정제 과정이 종이 한장에 담기는 것이다.
내 얘기를 하자면 나는 Lp플레이어로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휴대폰을 켜서 음악어플을 들어가 좋아하는 노래를 검색하고 재생버튼을 누르는 시간이 lp플레이어를 이용해 음악을 듣는 것보다 굉장히 짧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여러개의 lp음반 사이에서 소정의 이유로 음반을 고르고 꺼내어 플레이어에 장착하고, 트랙을 살펴 핀을 그 위에 놓는 그 일련의 과정 자체를 아주 좋아한다. 물론 lp 음반 특유의 노이즈 섞인 음향도 매력적이지만 말이다. 또한 lp 음반이 좋은 이유는 내가 음악을 소유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너무 좋으면 소유하고 싶어진다. 음악어플로 노래를 들을 땐 노래를 듣는 4분 남짓의 시간만 그 음악을 소유한 거라면, lp음반은 우리 집 랙에 꽂혀있는 순간부터 음악을 듣지 않는 내내의 시간들까지 그 음악을 소유한 것 같다. 그리고 lp 플레이어의 전원을 켜고, 음악을 듣고, 다 들은 음반을 다시 정리해서 넣어놓는 모든 과정이 음악 감상의 과정이다. 나는 트랙이 끝난 lp판에서 나오는 노이즈를 들으며 다음 트랙의 노래가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내가 이 음악을 왜 좋아하는지 생각하고 감상을 느낀다. 그냥 휴대폰으로 간단히 음악을 듣는 것보다 나만의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는 말이다. 이것이 내가 느린 불편함이 낭만적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낭만은 일과 일 사이 정지된 시간의 감상을 느끼는 데서 나온다.
그러나 우리는 바쁜 현대사회에서 자타의적으로 효율적으로 살아야 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일상적으로 일부러 불편함을 추구하며 살긴 쉽지않다. 그러나 일상적이지 않으면 어떤가? 시간이 많은 주말이나, 비교적 여유로운 날 일부러 불편함을 시도해보는 건 어떨까. 평소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떠올리기도 하고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느끼게 될 수도 있다. 나는 이러한 색다른 노력이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