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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듯 Jan 07. 2023

사랑하는 만큼 돈을 주나요.

서비스와 밀당

특정한 어떤 것에 빠져있는 사람을 덕후라고 부른다. "라면덕후가 만든 라면", "게임덕후가 만든 게임" 그 덕후가 잘할지는 몰라도 일반인이 만든 것보다는 조금 더 좋을 거 같다는 느낌이 든다.


비슷한 맥락으로 저연차일 때 "서비스를 사랑해라"라는 말을 들었다. 지금까지 어떤 서비스를 쓰면서도 "이거 너무 좋다. 이 서비스라면 평생을 바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든 적은 없다. 그러니 이해가 안 됐다.


또 다른 말로는 "오너십을 가져라"라고 말한다. 역시 이해가 안 됐다. 기술에 대한 오너십, 코드에 대한 오너십은 확실했다. 그런데 서비스 오너십을 가지라니 "그게 가지고 싶다고 가져지는 건가?"


그저 반항심리도 강했다. "사랑하면 돈을 더 주나요?", "서비스를 발전시키는데 오너십이 필수인가요?" 그게 없다고 남들보다 개발을 못하는 것도 아니고, 개발하는데 전혀 상관없어서 굳이 따르고 싶지 않았다.


입사를 하면서 서비스를 고르지 못한 것도 컸다. 공채로 입사하게 되면서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원하는 분야와 서비스는 같지 않았고, 나는 분야를 선택했다. 그렇다고 선택지로 나온 모든 서비스를 놓고 봐도 다시 본다고 해도 끌리는 게 있지는 않았다.


책임감이 없는 건 아니다. 흔히들 오너십을 책임감으로 연결하는데,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다. 개발을 하고 유지보수를 하고, 버그나 대응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는 것은 오너십의 문제라기 보단 내가 받은 월급에 포함된 계약이고 약속이.


누군가가 오너십만으로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월급 없이 가능한지 물어야 한다. 오히려 진짜 오너십을 가진 사람들은 유저들이다. 서비스가 망할까 봐 전전긍긍하며 댓글이나 메일을 보내는 유저들. 가끔은 진짜 주인이 되려 하지만 대게 사랑과 애정 담긴 생각을 말한다.


그렇게 처음 몇 년은 그저 약속이었다.




한 서비스에 오래 있다 보면 코드에서 내 이름이 없는 곳을 찾는 게 더 어려워졌다. 누군가가 서비스를 개발한 사람이 누구냐고 말한다면 당당히 나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부분이 내 손을 거쳐갔다.


쯤되니 누군가가 코드를 물어도 나에게 물어봤고, 히스토리를 물어도 나에게 물어봤다. 어떤 사람의 안부를 나를 통해서만 들을 수 있다면 서로 관계가 깊은 사람일 것이다. 시간지나면서 서비스와 그런 관계가 되어버렸다.


화가 많아졌다. 왜 그렇게 하는지 의사결정이 맘에 들지 않는 부분이 많아지고, 더 좋은 모습의 디자인을 가졌으면 하는 부분들이 늘어갔다. 더 많은 의견들이 입 밖으로 나왔다.


책임감이 아닌 유저들이 가지던 형태의 감정들이 생겼다. 안 보이던 것들이 보였다. 내가 만든 서비스지만 내가 자주 쓸 장르가 아니었는데, 그 어떤 서비스보다 더 자주 쓰게 됐다. 서비스가 당기는 중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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