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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듯 Sep 20. 2023

가장 쉬운 빌드업은 누가 떠먹여 주는 거다.

요즘 들어 갑자기 웹소설을 이것저것 보고 있다. 지금은 일타강사 백사부를 보는데, 자기 스승에게 받은 무공을 제자들에게 전수하는 큰 줄기와 매화 나오는 자잘한 빌드업들 때문에 굉장히 재밌게 보고 있다.


웹툰이나 웹소설, 드라마들을 보면 가장 희열이 느껴지는 부분들은 항상 무언가 차곡차곡 쌓아온 것들이 한 번에 해소될 때가 많다. 반대로 무언가 뜬금없는 내용들로만 가득 채워진 것들은 끝까지 보고도 별다른 감흥을 주지는 않는다.


그런데 일상에서는 반대되는 행동을 하고 있다. 가끔 뭐에 꽂힐 때가 있다. 그런데 또 답답하거나 반복적인 것을 꾸준하게 하는 습관이 없다. 결국 중간 그 어딘가나 마지막 단계에 눈을 뺏겨있다.


기타를 배운 적이 있었는데, 학원을 다닌 건 아니고 집에 기타가 아빠가 쓰던 기타가 있길래, 혼자 인터넷 보면서 띵가띵가 거렸었다. 인터넷에서는 운지법을 배우고 스트로크랑 손가락 연습을 먼저 해야 한다고 수없이 나와있었지만, 다 무시하고는 곡 하나를 잡고 쳤었다.


기초가 거의 없었으니, 그냥 곡 하나 치면서 조금 배우고 또 하나 치면서 조금 배우고, 하다 보니 악보가 바뀌면 또 리셋된 상태로 시작이었다. 그러다 보니 금방 싫증이 나서 그만뒀다.


기초를 다지는 빌드업은 하나도 안 하고 하고 싶은데로 이것저것 건들기만 했으니, 다른 악기를 다뤄본 경험이나 재능은 없는 나한테는 제대로 된 연습방법이 아니었다.


무언가 차곡차곡 쌓기 전에 무턱대고 들이대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게임을 해도 높은 난도로 들이박으면서 하다 끝까지 못 간 게임이 스팀에 잔뜩 쌓여있고, 인테리어를 할 때도 무턱대고 아일랜드 식탁을 사는 바람에 아직도 엄청난 공간을 지혼자 차지하고 있다. 무언가 새로운 취미를 가지고 싶을 때도 너무 먼 곳을 먼저 시작하다 보니 다시 돌아와 지루한 과정을 해야 되는 순간 얼마 참지 못하고는 그만다.


내가 거의 유일하게 빌드업으로 차곡차곡 쌓아온 건 일 뿐이었다. 대부분 회사들이 이미 1인분을 할 사람을 원한다고 하지만, 다행히도 나한테는 그런 건 없었다.


대부분 대학 - 취업 루트의 개발자가 그렇듯 첫 번째 회사를 해보지 않은 분야로 취업하면서 완전히 처음부터 새롭게 배워야 하는 순간이였다.


다행히도 팀은 완전히 제로 베이스에서 학습시키는 것에 불만이 없었고, 어떻게 가이드할지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물론 업무에 배치되었기에 자잘한 업무도 받으면서 배운 거였지만, 이미 어느 정도 빌드업을 위한 길이 있었고, 또 그걸 리드하는 사람이 있으니 자연스럽게 개발에 대한 기초부터  빌드업을 할 수 있었다.


만약 그때 아무도 가이드해주지 않았다면, 아마 평소처럼 노베이스로 뭘 만들어보면서 모르는 걸 찾아가는 식으로 시작했을 것이다. 직업으로 삼은 순간 포기할 수는 없으니 결국 끝까지 갔겠지만, 베이스를 차곡차곡 쌓은 상태에서 시작하는 것과 역으로 베이스의 빈 곳을 메꾸면서 가는 건 시간 면에서 한참 차이가 났을 것이다.




웹소설에서의 빌드업은 읽는 매 순간 기대감을 주고 그 끝에서는 기대감에 걸맞은 희열을 주는데, 내가 느끼는 일상에서의 빌드업은 미래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지루하지만 해야만 하는 일들이라 재미가 없고, 그렇게 견뎌낸 끝이 내가 진짜 하고 싶던 무언가가 아닌 또 다른 빌드업의 시작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내가 원하던 결과물까지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


유튜브에도 단계별 학습에 대한 영상이 많다. 어떤 분야를 검색하더라고 과정을 자세하게 담은 양질의 영상이 엄청나게 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대부분은 이미 완성된 상태에서 이전에 했던 것들 말한다. 그 사람들이 말하는 방법이나 기간등이 틀리지는 않을 거다. 누군가는 그걸 보고 차근차근 배워나갈 건데, 나한테 크게 와닿지 않는다. 지루한 빌드업은 어느 누가 말해도 똑같이 지루할 뿐이다.


가장 와닿는 건 누군가가 빌드업을 거치면서 변하는 것을 두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이다. 그 사람이 항상 옆에 있을 사람이라면 더없이 좋다. 그 사람이 어떤 빌드업을 거쳤고, 그 단계별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내 눈으로 본다면, 막연한 빌드업에 대한 지루함이나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거리감은 더 이상 나의 문제가 아니라고 느껴진다. 불확실한 것은 그 사람이 나를 대신해 보여주었다.


직장인 주변에 매일 같이 있을 사람들은 가족 아니면 직장동료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장하는 동료들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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