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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도르노 Aug 01. 2023

다른 성가는 잊어도 그레고리오 성가는 기억해야하는 이유

중세(4) - 로마 전례와 성가

그레고리오 성가는 서양 문명의 가장 위대한 보물 중 하나이다.
-그라우트 서양음악사 발췌-

지난 성가 글에서 그레고리오 성가가 매우 중요하다며 간단하게 소개했었는데, 그라우트 서양음악사 책에서도 아예 이 문장으로 중요성을 못 박으며 시작한다. 이 성가가 이토록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유가 뭘까? 그 이유는 그레고리오 성가의 탄생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레고리오 성가 탄생

 그레고리오 성가 탄생의 가장 주요한 정설은 그레고리오 1세가 아닌 프랑크 왕국이 주도했다는 설이다. 당시 샤를마뉴가 통치하던 프랑크 왕국은 영토를 대거 확장 중이었다.

카롤루스 마그누스(샤를마뉴)

점점 넓어지는 영토를 효율적으로 다스리기 위해 샤를마뉴는 로마교회에 힘을 실어주어 종교적 지배력으로 영토를 다스리고 싶어 했는데, 이 과정에서 전례예식을 로마식으로 표준화하도록 추진했다. 기존 성가들(비잔틴, 암브로시오 등)을 그레고리오 성가에 알맞게 수정하는 작업이 시작되고 로마 전례의식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모든 성가들이 이 성가 하나에 통합된 것이다. 이렇게 통합된 그레고리오 성가와 로마 전례의식은 넓은 영토에 공통의 예배가 드려지게 되면서 중세의 공통적인 시대정신과 구체화된 예술성으로 종교적 신앙의 기념물로 자리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가장 오래된 선율과 가장 아름다운 선율들을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에 후대의 음악의 발전에 유용하게 사용되기도 했다.


로마 전례

그레고리오 성가는 드넓은 영토에서 표준화된 로마 전례의식에서 사용되던 음악이었다. 이 말인즉슨, 이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전례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가야 한다는 뜻이다. 로마 전례는 상당히 복잡했던 것으로 유명한데, 간단히 살펴보자. 먼저 교회는 기독교 신앙을 가르치고 영혼을 구원하는 역할을 한다. 교회에서는 이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예배를 통해 구원에 이르는 길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교훈을 강화시킨다. 예배의 이러한 목적은 낭송되거나 노래되는 가사들과 예배마다 거행되는 의식들에 의해 달성된다. 여기서 음악은 예배의 목적 달성을 위해 가사를 전달하고, 의식들의 반주 역할을 해주고, 믿음을 북돋아주도록 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미사

로마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예배가 바로 미사이다. 미사는 빵과 포도주를 먹으며 최후의 만찬을 재현하는 의식과 기도 그리고 성서낭독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일반 교회에서는 일요일마다 거행되고 수도원이나 수녀원 같은 대표적인 교회들에서는 매일 거행된다.

최후의 만찬(레오나르도 다 빈치)

이때 전례음악은 선율보다는 가사가 중요했다. 가사는 직접적으로 말씀을 전달하는 것이었지만 음악은 말씀을 더 잘 전달할 수 있는 도구였기 때문이다. 당시 전례에는 매번 똑같은 가사를 사용하는 음악도 있었고 가사가 매번 변하는 음악도 있었다. (현대 기독교에도 준비찬양이나 특별찬양 같은 것은 매번 바뀌지만, 기도 후 매번 똑같이 연주되는 곡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매번 똑같은 가사를 사용하는 음악을 ‘미사 통상문’, 매번 다른 가사가 사용되는 음악을 ‘미사 고유문’이라고 부른다.

미사 통상문
키리에(Kyrie), 글로리아(Gloria), 크레도(Credo), 상투스(Sanctus), 아뉴스 데이(Agnus Dei)

만약 서양음악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면, 이 다섯 개는 무조건 암기하는 것을 추천한다. (그만큼 중요하다 ㅎㅎ) 참고로 이 시기의 ‘상투스’는 현재 유명한 상투스와는 다른 음악이다.

https://youtu.be/ehK1juwbtS0

중세의 상투스

https://youtu.be/hAiECJf5Ouo

현재 유명한 상투스(파헬벨의 카논 선율로 만들어졌다).

성무일도

초기 기독교인들은 일정한 시간대를 정해서 기도와 시편을 노래했다. 이 관습이 성무일도로 규범화되었는데, 하루 여덟 번 기도를 드린다. 하루 8번 의식 중 전례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가장 중요한 기도는 새벽기도, 아침기도, 저녁기도였다. 성무일도에서는 시편 앞 뒤에 노래되는 음악(안티폰)도 있었고, 성서 낭독 후 응답하는 노래인 응답송(레스폰소리)과 시편 말고 다른 성서에서 발췌한 찬미가(칸티클)이라는 음악도 노래되었다. 하루에 8번 기도하는 동안 다양한 음악들이 노래되었고 한 주간에 150개의 모든 시편들이 한 번 이상은 불리게 되었다.


성가의 음악적 특징

연주방식

성가 연주는 세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응창(레스폰소리얼, responsorial) - 한 명의 독창자가 노래를 부르면 나머지 합창단이나 청중들이 교대하여 노래를 부른다.

답창(안티포널, antiphonal) - 합창단이 두 그룹으로 나누어지고 두 그룹이 서로 교대하며 노래를 부른다.

직창(다이렉트, direct) - 교대 없이 모두 함께 동일한 노래를 부른다.

그레고리오 성가 안의 다양한 성가들은 보통 이 세 가지 방식으로 연주되었는데, 각 성가의 연주방식이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하기도 하고, 전통적인 방식으로 꾸준히 연주되는 성가도 있다.

가사 붙이는 방식

음악보다 가사가 중요했던 이때의 음악에는 가사를 붙이는 방법도 어느 정도 정형화 되어있었다.

단음적(실러빅, syllabic) - 하나의 음절에 하나의 음정이 붙는다. '안녕'을 노래한다고 생각했을 때 '안'과 '녕'에 각자 음정이 붙는 형태이다.

네우마적(네우마틱, neumatic) - 하나의 음절에 한 개에서 많으면 6개의 음정이 붙는 방식을 말한다. ‘안~~~’과 ‘녀~~ㅇ~~’ 이런 느낌으로 음정이 붙는다.

다음적(멜리스마틱, melismatic) - 하나의 음절에 긴 선율적 패시지(멜리스마)가 붙는다. ‘안’ 하나에 긴 노래가 붙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렇게 가사의 방식을 세 가지로 규정해 보았지만 모든 성가가 이 세 가지로 명확하게 구분될 수는 없다.

성무일도 안티폰

위에서 간단히 소개했던 성무일도에서 안티폰이나 응답송 등 기존 시편에 음악이 추가된 형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성무일도의 찬가는 그 자체로서는 불완전하기 때문인데 그중 안티폰은 시편 앞 뒤에 노래되는 음악을 말한다. 안티폰은 완전히 독립적인 선율이고 매일 30개 이상을 노래해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 단순하고 단음적이다. 150개의 시편은 일주일 주기로 반복되지만 안티폰은 교회력(교회의 절기)에 따라 바뀐다. 때문에 각각의 시편은 다양한 안티폰과 짝지어지게 되는데, 안티폰의 선법(음악 스타일)은 짝지어질 시편 창법의 선법을 결정하기 때문에 굉장히 다양한 음악이 연주되는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성무일도 찬미가

찬미가는 간단하게 찬송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고대부터 현재까지 거의 모든 기독교 종파에서 사용되었다. 합창단은 모든 성무일도 예식에서 찬미가를 노래하는데 찬미가는 여러 절을 같은 선율로 노래하는 구조를 가진다. 마치 4개의 연을 가진 시를 연마다 모두 같은 선율로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생각해 보니 현재 찬송가에서 같은 선율을 가지고 3~4절 가사를 모두 노래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렇게 간단하게 성가의 음악적 특징을 알아보았는데, 이 외에도 시편창법이나 미사 안티폰이나 성무일도 레스폰소리, 미사 통상문의 각 성가들에도 각각의 음악적 특징들이 있다. 무엇이 있는지, 어떤 음악적 기법이 사용되었는지 같은 어려운 내용들이 궁금할 수 있지만 다음으로 기약하자. 오늘은 그레고리오 성가가 왜 이렇게 매번 강조되는지 그 이유를 아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성가는 천 년이 넘도록 대부분의 유럽인들의 음악 세계의 한 부분이었다. 매일매일 수도 없이 노래되었던 이 성가들은 음악이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지 감각으로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게 해 주었고, 후대의 모든 음악들은 이 성가의 흔적을 지니고 있기에 위대한 보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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