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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ne ryu Nov 22. 2022

솔로알붐 (Soloalbum)

B면은 들러리가 아니다

 코찔찔이 독문학도 시절 썼던 10년도 더된 쪽글들을 올려봅니다. 별건 없고 그냥 순수함이 좋아서요.


  언젠가 독일인 친구에게 ‘독일 문학’하면 어떤 단어들이 떠오르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대답은 ‘langweilig’였다. 독일인에게조차 독일문학의 이미지는 무겁고 지루했다. 문학이라 하면 인생에 대한 심오한 철학적 고찰을 담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저명한 작가의 훌륭한 작품들이 많기에 독일 문학은 유독 어렵다 못해 따분하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하지만 『클럽 오아시스』는 이러한 독일 문학의 오명을 벗겨주는 작품이다. 전설적인 영국의 팝밴드 Oasis를 비롯한 여러 음악가들의 노래 가사와 어우러져 특유의 ‘까칠한’ 유머 감각까지 담긴 젊은 소설이다.

  흔히 20대의 이야기라고 하면 에너지 넘치는 인물들과 재기 발랄한 상황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클럽 오아시스 속 이야기는 그와는 정반대다. 주인공은 매사에 회의적이고 부정적이다. 불만으로 가득 찬 그의 눈에는 그를 둘러싼 모든 것이 멍청하고 아무 짝에 쓸모없어 보인다. 하다못해 텔레비전에 나오는 광고를 보고도 저런 광고를 보는 자살 충동이나 살인 충동이 일어난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심지어 자신의 외모, 생활 태도에조차 자조적이다. 또한, 그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겉으로는 친절한 말을 내뱉지만 속으론 아니꼽게 여기고 비웃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그의 가식적인 행동은 상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귀찮아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비위 한번 맞춰주고 별 탈 없이 지나가려는 것이다.

  베베 꼬인 것은 주인공의 성격뿐만이 아니다. 그의 일상에 얽힌 이야기는 전혀 근사하지도 않고 색다를 것도 없다. 자신의 엉망진창 삶을 ‘막장이다’라는 표현까지 써가면서 꾸밈없이 보여준다. 솔직하고 직설적이다 못해 외설적이기까지 하다. 하루 벌이 주제에 계획성 없이 충동적으로 소비하고 어떻게 하면 여자랑 잘해볼 수 있을 궁리만 하고 주말엔 집에서 고양이와 놀거나 자위나하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생활이다. 그 자신도 자신이 얼마나 형편없는지를 안다. 자신을 자신의 삶의 ‘실패한 경영자’라고 했으니 말이다.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불평불만과 우울한 이야기로 끝났다면, ‘아, 나는 이에 비하면 참 열심히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고는 책을 던져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작품에서 주목해야할 부분이 있다. 바로 레코드 판의 B면이다. 주인공은 사라져가는 레코드판의 B면을 여전히 중요하게 여긴다. 레코드판의 A면은 대중적인 노래들이 실린 반면 B면은 상대적으로 마이너하고 실험적인 곡들이 실린다. 인간의 삶에 비유하자면 A면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주목 받으며 탄탄대로로 멋지게 살아가는 삶이다. 반면, B면은 이 작품 속 주인공처럼 돈도 없고 애인에게 차이기 일쑤고 집안 청소도 제대로 안하지만, 불룩 나온 배를 없애려 운동도 하고 돈 생기면 좋아하는 음반도 사고 소소하게 살아가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이 레코드판 B면에 애착을 갖는 것은 자신의 삶이 그것과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가 A면의 삶을 살아야한다고 끊임없이 강요받는  사회에서 B면은 A면의 들러리처럼 느껴진다. 모든 사람이 A면과 같은 인생을   없는 법인데 말이다. A면과 앨범의 타이틀곡은 대중적이고 근사해 보일 수는 있다. 그렇다고 해서 B면과 타이틀이 되지 못한 다른 곡들이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는 것은 아니다.  곡들은 ‘ 많은사람들의 취향이었을 뿐이지 누군가는 A면과 타이틀곡보다  열광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에겐 빌보드 차트 2위에 오른 싸이의 강남스타일보다, 3집의 낙원이라는 타이틀도 아닌 노래가 훨씬 의미 있는 것처럼 말이다. 주인공의 삶도 팍팍한 기준을 가진 우리의 눈에야 Loser 보이지만 조금  관대한 눈으로 바라보면 조금 다른 라이프 스타일일  충분히 이해할  있는 삶이다. 적어도 그는 음악을 사랑하고  여자와의 사랑의 기쁨과 이별의 고통을 진하게 겪은 면에서 사랑한번 제대로 해본  없는 나보다 낫다고   있다.

  요즘 사회는 모두에게 어서 A면의 반열에 오르거라, 타이틀 곡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 1등이 되고 최고에 도달하라고 다그친다. 그러나 A면이 아니어도, 최고가 아니어도 그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하고 싶다!


2022년 덧붙이는 말:

수업과제에 급 솔로임을 고백? 교수님 죄송합니다. 30대 초반이 되니 A 반열 아니어도 가치가 있지만, A반열이면 그 가치는 더욱 크다는 생각을하는 K-직장인이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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