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의 썸머타임이 끝나다
여름이 끝나고 8월 말 학교들이 일제히 문을 연지도 벌써 두 달이 지났다. 한국에서 새싹이 피어오르는 3월이 새학기의 시작이라면, 스웨덴은 즐거웠던 긴 여름 방학이 끝나고 쌀쌀해지기 시작하는 가을이 새 학기의 상징이다. 하루에 2분씩 해가 뜨는 시간이 늦어지고, 반대로 해가 지는 시간은 빨라진다. 한여름이면 밤 11시까지도 훤하던 날이 이제는 서너시면 되어도 어둑어둑해진다. 이러다가 12월 20일 경, 동지(midvinter)가 되면 3시가 되기도 전에 이미 깜깜해진다. 그것도 그나마 스웨덴 남쪽 도시인 예테보리라서 가능한 일이다. 스웨덴 남부 지역의 경계라 할 수 있는 스톡홀름을 지나 더 위로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도시에서는 10시가 지나야 겨우 해가 뜨고, 그마저도 세시간을 넘기지 못하고 오후 1시 전에 해가 진다. 하루에 해가 세시간밖에 안 떠있다니. 무시무시하지 않은가. 아무리 어둑어둑한 가을 겨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일조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시기를 몇 달간이나 보내다 보면 내 안의 원시인이 태양을 달라며 소리치다 기운을 잃고 쓰러져가는 걸 느낄 수 있다.
11월 초인 지금, 아침 해는 대략 7시 반경 뜬다. 나쁘지 않다. 하지만 여기에는 약간의 속임수가 있다. 바로 10월 30일에 공식적으로 일광 절약 시간제 (Daylight Saving Time, DST)이 끝났기 때문이다. 10월 29일에서 30일이 되는 새벽 3시에는 모든 시계가 일괄적으로 새벽 2시로 한시간 돌아간다. 즉 2시 59분이 다시 2시 00분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다음 날 아침 7시반은 그 전날 8시반처럼 해가 훤히 뜨는 매직(!)이 펼쳐지는 것이다. 물론 반대급부로 해가 한시간 (+2분) 더 빨리 진다. 통상적으로 다들 '썸머타임'이라 부르는 이 일광 절약 시간제는 말 그대로 태양이 뜨는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이다. 등교/출근 시간을 바꾸는 대신 아예 시간을 바꾸어버리는 파격적인 제도인데, 보통 유럽과 북미, 그리고 적도에서 비교적 멀어 일광 시간 변화의 영향을 많이 받는 나라들이 채택한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조사를 하다 보니 쿠바, 아이티, 멕시코 등 적도에서 가까운 나라에서도 DST를 사용한다고 한다.)
특이하게도 남극에 꽤나 가까운 영토를 가진 아르헨티나는 DST를 채택하지 않는다. 약 10년 전 아르헨티나에 1년간, 그리고 옆나라 우루과이에 6개월간 살았던 경험이 있는데, 마지막으로 이 남쪽 나라를 떠나기 전 최남단을 여행하겠다며 우수아이아 (Ushuaia)에 갔었다. 우수아이아는 아르헨티나의 최남단에 있는 도시로, '세계의 끝'이라는 별명에 걸맞에 위도 54도로,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스웨덴의 도시 예테보리가 위도 57도이니 각각 남쪽과 북쪽 끝자락에 대칭처럼 위치한 도시들이라 볼 수 있다. 우수아이아를 여행했던 때는 인턴십을 마치고 난 후인 2월이었는데, 남반구의 1-2월은 한여름이다. 물론 남극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이기 때문에 여름이라 해도 밤에는 외투를 입어야 할 만큼 춥다. 하지만 따뜻하지는 트래킹을 하고, 저녁을 먹고, 맥주를 마시고, 일기를 쓰고, 보고서를 쓰고, 그 모든 일을 다 해도 지지 않는 해가 지금이 여름임을 말해주었다. 늦은 밤 신나게 파티를 벌이던 사람들이 잠시 바람을 쐬기 위해 클럽 밖에 나오면 어느새 희끄무레하게 해가 뜨곤 했다. 그러면 사람들은 태양의 공격을 받은 뱀파이어처럼 눈을 손으로 가리며 다시 어두운 클럽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겨울에는 가보지 않았지만, 스웨덴에 와서 살면서 남반구의 위도 54도에 위치한 도시의 겨울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하도 해가 지지 않아서 지겹다고 느낄 만큼의 여름의 나날들은 끝난지 오래다. 스웨덴은 멕시코 만 난류의 영향으로 위도에 비해서는 그렇게 춥지 않다. 특히나 스톡홀름, 예테보리, 말뫼 등의 큰 도시들은 모두 스웨덴 남부지역에 위치해 있어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스웨덴 북부의 무시무시한 겨울을 경험할 일이 없다. 하지만 <왕좌의 게임>에서 북부인들이 늘 외치던 '윈터 이즈 커밍,' 이 이곳에서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진다. Det finns inget dåligt väder, bara dåliga kläder. 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나쁜 날씨는 없다. 다만 나쁜 복장이 있을 뿐이다.' 라는 뜻으로, '세나개' 처럼 들리는 이 문장의 의미는 옷만 제대로 갖추어 입으면 극복하지 못할 날씨란 없다는 스웨덴 사람들의 무던한 성격을 보여준다. 하기야, 비가 오면 우비와 장화를 신으면 되고, 추우면 옷을 껴입으면 된다. 그러니 겨울이 오는 것이 두려운 이유는 추위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일조량이다.
일조량이 충분하지 못하면 수면을 관장하는 호르몬이 멜라토닌이 충분히 생성되지 못하고, 이에 따라 우리 몸은 이른 저녁이나 오후 시간대에도 아, 벌써 잘 시간이구나, 라는 신호를 보낸다. 또한 일조량은 소위 행복 호르몬이라 불리는 세로토닌과 스트레스 조절 기능을 하는 코티솔의의 분비에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 몸은 고작 몇천 년의 문명시기보다 몇만 년을 이어온 원시인으로서의 생존 본능을 더 강하게 간직하고 있는 모양이다. 춥고 어두우면 사냥을 하기 힘들고, 과일을 따기도 힘들어지니 최대한 많이 자고 에너지를 아껴야 한다. 그리고 낙천적이고 행복하기보다는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며 경계를 늦추어서는 안된다. 그게 우리의 불쌍한 조상님들이 살아남았던 방식인지라, 우리 안의 원시인은 따뜻하고 밝은 실내에서 일하고 공부하면서도 일조량으로부터 받는 영향을 피하지 못하고 더 많은 햇빛을 달라고 소리친다. (우가우가!) 적어도 3월이 되기까지 해가 갑자기 더 길어질 일은 없겠으나, 그래도 우리에게는 여러 대안이 있다. 위에 첨부한 신문 기사에서는 가을 겨울의 우울증을 피하기 위한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1. 실외로 자주 나가고, 점심 시간에 산책을 할 것.
2. 주중에 연차를 활용하여 에너지를 회복할 것.
3. 건강한 라이프 스타일에 관해 생각할 것: 과도한 음주를 피할 것.
4. 양질의 수면을 취할 것. (침실을 아늑하게 꾸미고 잠자는 시간을 긍정적으로 느낄 것.)
5. 정기적으로 운동할 것.
6. 9월부터 정신적으로 어둠에 대비하여 준비할 것.
7. 일상 생활에서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느끼면 도움을 요청할 것.
작년에 처음 스웨덴 사람들이 어둠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을 때는 솔직히 코웃음을 친 부분도 없지 않아 있었다. 흥, 너희가 서울의 추위를 알아? 하지만 혹독한 지난 겨울을 보내고 난 지금은 그들의 친절한 충고를 가슴 깊이 받아들인다. 추위는 사람을 괴롭게 하지만, 그래도 방비가 가능하다. 하지만 겨울의 어둠은 인공 조명으로만은 이겨내기 어렵다. 위의 조언에 더해, 해가 짧은 지역에 사는 분들을 위한 팁을 나누자면, 무조건 더 많은 사람을 만나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당신이 내향인이든 외향인이든,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필요로 하는 사회 활동의 시간과 깊이가 다를 지라도, 어쨌든 사람은 사회적 연결을 필요로 한다. 수많은 심리학자와 사회학자, 그리고 신경의학자들이 증명했다. 인간은 사회적 관계를 유지해야 정신적으로, 그리고 흥미롭게도 신체적으로도 훨씬 건강하다. 우울하고 힘이 빠지기 쉬운 겨울, 아늑한 실내에서 따뜻한 코코아를 마시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밖에 나가 충분히 걷고, 친구들과 예쁜 카페에 가고, 새로운 모임에 나가 사람들과 대화하며 시간을 보내면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앞으로 최소 네달은 이어질 어두운 겨울에 대비하여 존 스노우처럼 검은 털옷을 입고 조명이란 조명은 모두 켠 채 이 글을 쓰고 있다. 작년, 나의 첫 스웨덴 겨울은 쉽지 않았지만 올해는 많은 계획들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으니 훨씬 나을 것이다. 지나가버린 여름을 추억하는 노래 한구절로 오늘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려 한다. 모두들 아늑한 겨울 보내시길!
Sommaren är kort. Solen skinner kanske bara idag.
여름은 짧다네. 태양은 오늘 하루만 빛날 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