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사람들의 소비 습관에 관한 이야기
스웨덴에 온 후로 단 한번도 미용실에 가지 않았다. 출국 직전에 긴 머리를 관리하기 쉽도록 펌을 하고 왔다. 머리감고 말리는 불편을 제외한다면, 긴머리야말로 사실상 관리하기 쉬운 스타일이다. 특히 웨이브를 좀 넣으면 머리가 제멋대로 자라나도 별로 티가 나지 않고 묶거나 비니를 써도 되는 등 관리하기가 편하다. 특히 해외 생활을 오래 한 분들은 공감하실 텐데, 해외에서 미용실에 가기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한인들이 많이 사는 대도시라면 사정이 좀 다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곳이라면 미용실에 간다는 건 웬만하면 포기해야 한다. 현지 미용실에 가는 데에는 대체적으로 두가지의 문제가 있다. 일단, 일본 등의 이웃나라가 아니고서는 인종적인 차이로 인한 모발 특성의 차이 때문에 마음에 드는 스타일을 구현해주는 디자이너를 찾기 어렵다. 무슨 대단한 스타일을 창조하려는 게 아닌데도 그렇다. 동아시안의 머리카락이 보통 직모에 서양인들보다 굵고 뻣뻣하다보니 커트를 잘못 하면 바로 티가 난다. 펌은 아예 상상도 하지 말아야 한다. 운좋게 동양인 모발을 잘 다루는 미용사를 찾더라도, 두번째 문제가 발생한다. 바로 가격이다. 그 나라의 전반적인 물가 상황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한국은 물가 수준에 비해 미용 가격이 낮은 편이다. 유럽을 비롯한 서구권은 사람이 직접 손으로 해주는 서비스의 가격이 비싸다. 그래서 팁 문화가 발달한 것도 있다. 그런데 안그래도 물가가 비싼 스웨덴에서 사람이 직접 한시간 넘게 손으로 해주는 서비스를 받으려 한다면 어마무시한 금액을 기대해야 한다.
이러한 해외에서 미용실에 가는 어려움을 알았기에 이번에 올 때는 한국에서 머리를 하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긴긴 겨울을 나면서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충동적으로 머리를 잘랐다. 문제는, 내가 스스로 머리를 잘랐다는 것이었다. 나는 원래도 몇 년에 한번씩은 스스로 머리를 자르곤 한다. 기술이 좋다거나 아니면 뭐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머리가 무난한 직모라 앞머리를 대각선으로 자른다든가 하는 엄청난 실수를 하지만 않으면 그냥 무난한 단발을 구현할 수 있다. 그리고 과거에 중남미에 살면서 현지 미용실에 가서 숏커트를 하려다가 거하게 망한 경험을 한 뒤로는 어차피 망할거면 차라리 돈이라도 내지 말고 망하자(?)는 생각이 생겨서 더더욱 머리를 스스로 자르는 데 큰 거부감이 없어졌다. 그리고 한국에서 지낼 때는 스스로 잘랐다가 망하면 미용실에 가서 만원 정도를 내고 손질을 해달라고 하면 그만이었다. 디자이너 선생님에게 어디서 머리를 이렇게 잘랐냐고 한소리를 듣긴 하겠지만, 어쨌든 동네에 널린 게 미용실이고, 언제든 들러서 크지 않은 돈을 내고 망한 머리를 수습할 수 있으니 걱정할 게 없었다. 그리고 머리야 밥 먹고 자면 자라나는 게 아닌가. 1년이면 대략 15-20센치가 자란다. 그 정도면 단발이 제법 긴 머리가 되기에 충분하다. 그렇기에 셀프 미용에 나름 긴 역사를 가진 1인으로서,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를 약 30센치 정도 싹둑 자르는 데 별 거부감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간과한 사실이 한 가지 있었으니...
바로 스웨덴의 날씨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내가 사는 예테보리가 있는 서해안 지역은 가을과 겨울이면 불어대는 거센 바람과 시도 때도 없이 퍼붓는 소나기로 유명하다. 아무리 잘 말리고 단정하게 정리를 한 머리도 가로로 오는 비를 한 번 맞고, 연이어 찾아오는 거센 바닷 바람을 몇 번 맞고 나면 귀신 산발이 된다. 이런 곳에서 굵은 머리칼의 단발머리가 얼마나 거지꼴이 되기가 쉬운지, 살기 전엔 몰랐던 것이다. 누군가는 예테보리 지역의 물이 살던 지역과 달라서 머리카락과 피부결이 달라졌다는 얘기를 하기도 했는데, 서울과 예테보리는 둘 다 연수 (soft water)가 나오는 곳으로, 최소한 나는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니 물이 달라서라기보다는 비가 자주 와 늘 습도가 높으면서도 바람이 많이 불어 체감 습도는 무척 낮은 이곳의 기후를 탓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어쨌든, 시시때때로 온 머리칼을 헤집는 비바람 앞에서 스타일 좋은 단발머리를 유지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스타일은 커녕, 늘 산발을 하고 다니기가 일쑤가 되었다. 뭘 어떻게 해도 지저분해 보이는, 제멋대로 뻗치고 뜨는 머리를 어쩔 도리가 없어서 한동안 비니가 자주 사용하는 아이템이 되기도 했다. 스스로 자른 머리는 실수투성이였고, 날씨마저 도와주지 않아 스스로 머리를 자른 걸 후회하기가 여러 날이었다.
한국이었다면 곧바로 미용실에 가서 커트를 하든 아니면 이름도 다 알 수 없는 수많은 종류의 다양한 단발펌을 하든 했을 테지만, 그것 역시 쉽지 않았다. 바로 미용실 가격 때문이다. 단순 커트가 최소 350크로널, 즉 4만원부터 시작한다. 그것도 심지어 저렴한 미용실의 경우에 그렇다. 시간이 60분을 넘어가거나, 특정한 디자이너를 지명하거나 하면 가격은 500, 600, ... 괜찮다고 소문이 난 미용실의 경우에는 긴 머리 커트의 경우 거의 10만원 이상을 생각해야 한다. 아무리 물가가 비싸고 인당 소득이 높은 나라라고 하지만, 커트가 10만원인 건 너무한 게 아닌가? 게다가 스웨덴 사람들은 불필요한 돈을 쓰지 않는 짠돌이 짠순이 라이프 스타일에 최적화된 사람들인데!
아직도 완벽하게 이해되지는 않지만, 스웨덴 사람들의 소비 기준은 한국과 꽤 다른 듯 하다. 우선 일상적인 부분에서는 돈을 많이 아낀다. 중요한 날이 아니면 웬만해서는 외식을 하지 않고 도시락을 싸들고 다닌다. 학생 카페테리아에서조차 최소 만원 가량 하는 샌드위치를 사먹느니 전날 만든 런치박스를 들고 오는 것이다. 그리고 스타일링에 꽤나 신경을 쓰는 멋쟁이들이지만 옷을 시시때때로 사들이지 않는다. 질좋은 물건을 사서 오래 쓰자는 주의가 일반적이다. 반면 인테리어 소품은 턱이 떡 벌어질만큼 비싸도 턱턱 구매하는 모습으 보인다. 실내에 머무는 시간이 길고, 밖에서 만나기보다는 서로 집에 초대하는 문화가 발달해 있어 실내 인테리어에 크게 신경을 쓰는 것이다. 핸드폰이나 노트북 등은 유행이랄 것 없이 망가질 때까지 오래 쓰는 게 당연하고, 전반적으로 모든 물건과 사람을 조심히 대한다는 느낌이 든다. 길을 지나가다 서로 어깨를 부딪치는 일이 드물고, 물건을 함부로 던지거나 걷어차는 모습은 볼 수 없다. 그러니 많은 물건을 자주 구매하기보다는 가격이 좀 싸더라도 한 번 산 물건은 오랫동안 잘 관리해서 쓰는 문화가 발달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미용실이나 식당 등 사람이 시간을 들여 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 높은 가치를 둔다. 기본 시급이 높은 것도 있지만, 사람을 대하고 몸을 쓰는 일의 경우에 사무 직장인보다 높은 급여를 받는 것이 드물지 않은 것이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이 글은 지난 주 참다 참다 도저히 안되겠어서 찾아간 미용실에서 약 6만원의 비용을 내고 커트를 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믿을 수 없어 쓰게 된 글이다. 심지어 그 돈을 줬는데도 커트가 완전히 마음에 들지도 않는다. 지나치게 삐뚤빼뚤한 부분만 정리하는 바람에, 기존의 머리의 문제인 정체 모를 형태가 그대로 유지된 것이다. 자른 직후에야 드라이를 해주니 잘 몰랐는데, 다음 날 머리를 감고 나서 보니 머리 맨 밑단이 정리된 걸 제외하고는 사실상 달라진 게 없었다. 한국이었다면 그 돈에 몇만원을 더해서 내게 딱 어울리는 단발 펌을 할 수 있었을 텐데. 흑흑.
마지막으로, 미용 학교에 재학중인 학생들의 실험 대상(?)이 되어 머리를 공짜로 자르는 경우를 보기도 했다. 대체적인 경우 꽤 괜찮은 스타일이 나오는 것 같았다. 최소한 자기가 스스로 자르는 것보다는 낫고, 마음에 들지도 않는 스타일을 만드는 데 몇만원씩이나 낼 필요가 없으니 나쁘지 않은 옵션인 것 같다. 뭐 어마무시하게 스타일리시한 머리를 하고싶은 것도 아닌데, 최소한의 단정함을 유지하는 것 조차 쉽지 않은 게 해외 생활의 사소하다면 사소한, 하지만 매일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어려움 중 하나인 것 같다. 해외 생활을 준비하는 분들이 있다면, 무조건 관리하기 쉽고 손이 안가는 스타일을 고수할 계획을 세우시길 간절히 권한다.
(커버 이미지 출처: https://thatsup.se/goteborg/guide/har-finns-frisorerna-i-goteborg-med-koll-pa-fa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