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에서 물냉이가 사라지면 봄이 온다는 신호

by 로라see

봄이 오면,

나의 의衣식食주住에 변화가 찾아온다.




아직 포기할 수 없는 스웨터는 밝은 색상으로 고르고 겨울 동안 지겹게 입었던 묵직한 모직 코트 대신 비와 바람에 최적화된 트렌치코트를 옷장에서 꺼내 걸친 뒤 하늘하늘한 소재의 스카프로 마무리하면 일교차가 크고 바람이 많이 부는 변덕스러운 봄 날씨에 안성맞춤이다. 지금 거실에 앉아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나는 목에 스카프를 두르고 있다. 일교차가 큰 봄에는 집안에서도 언제든 감기에 걸릴 수 있다. 봄기운은 이렇게 클래식한 의衣에서 출발한다.






반찬거리를 구하러 들르는 동네 슈퍼에서도 겨울이 떠나가고 봄이 오는 신호는 어김없이 감지된다. 전 세계 많은 지역에서 다양한 채소와 과일이 사계절 비닐하우스에서 재배되고 있고 비행기로 24시간 이내에 어디든 착착 배송되는 환경에 살고 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로컬 재료는 각자 태생에 맞는 계절에 재배되고 그 지역 동네 슈퍼와 지역 시장을 중심으로 유통된다. 겨울철 동네 슈퍼에서 만날 수 있는 로컬 재료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채소를 꼽자면 한국말로 물냉이라 불리는 Cresson크레송이 있다.


alamaison.laruchequiditoui.fr에서 Cresson 물냉이 사진을 가져왔다. 보통 2,50€ 정도에 한 다발을 살 수 있다.


한국의 미나리와 냉이를 섞은 듯한 향이 아주 은은하게 풍기는 크레송은 웬만해서 절대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 겨울의 프랑스 북부 지역 맑고 깨끗한 냇가에서 자연 재배된다. 생김새와 식감은 또 어떠한가, 여린 미나리 잎과 견줄만한 크레송은 아삭한 식감에 생으로 샐러드처럼 먹어도 좋고 살짝 데쳐 된장, 간장, 고추장 등 가장 한국적인 발효 소스인 장류와 무쳐 먹어도 일품이다. 순하게 알싸한 향과 적당히 아삭한 식감은 프랑스 채소 중 가장 한국인의 입맛에 가깝다.(영화 미나리에서 윤여정씨가 미나리를 보고 환하게 웃던 모습이 떠오른다: ) 이렇게 어여쁘기 그지없는 크레송은 봄기운이 고개 드는 2월과 3월 어느 날 갑자기 슈퍼에서 자취를 감춰버린다. 아... 이제 봄이 구나, 마냥 봄이 반갑게만 느껴지지 않는 어색한 기분과 함께 봄의 식食재료를 찾아 아쉬운 발길을 돌린다.






겨울이 가고 봄기운이 넘쳐나는 주住는 사실 몸이 귀찮은 일만 가득하다.


보이지 않던 먼지들이 햇살과 함께 창이 있는 모든 공간을 부유하고 있음을 눈치챌 때면 이미 집안 식구들의 코 푸는 소리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일상이 시작된다. 며칠 전에도 분명 이불 커버를 교체한 것 같은데 집안을 떠돌고 있는 먼지가 눈에 띈 이상 그냥 있을 수는 없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에 이불 커버와 매트리스 커버를 벗기고 매트리스는 매트리스 전용 청소기로 먼지를 빨아들인다. 내친김에 소파의 쿠션 커버도 교체하고 집안에 잡다한 천이란 천은 모두 세탁기에 넣는다.


손이 닿을 만한 위치와 높이에 배치된 가구의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부분에 쌓여있는 먼지도 어색한 듯 익숙지 않은 손놀림으로 닦아본다. 연신 마른 수건으로 먼지를 걷어내며 흠칫 놀란다. 그 삭막하고 쓸쓸한 계절에도 먼지는 참 부지런히 움직이고 켜켜이 쌓였구나, 나는 이 먼지 두께만큼의 성실함이 이 공간에 쌓여가는 동안 조용히 웅크리고 있었던 것만 같아 이번 봄에는 힘껏 기지개를 켜고 팔다리를 시원하게 뻗어봐야지, 속으로 다짐해본다.


우선, 시야가 흐려진 창문부터 좀 빡빡 닦고, 창틈에 낀 먼지도 꼼꼼히 제거한다. 거실 너머로 시선을 옮기고 보니 겨울 동안 쓸쓸한 기운이 내려앉은 베란다에도 봄기운을 불어넣어야겠다. 두 팔 뻗어 다 감싸 안을 수 없을 만큼 큰 화분과 그 화분을 가득 채울 흙을 사러 가야지. 봄의 주住는 기지개 켠 두 팔과 두 다리를 최대한 멀리 뻗어 씩씩한 기분이 되어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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