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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e Dec 02. 2023

라면과 국밥

국밥 비하는 아닙니다

나도 늙었나 보다


일상의 사소한 몇몇 순간에 이런 생각이 불쑥 들 때가 있습니다. 마흔 중반을 넘기면서부터 시작된 거 같은 이 생각은 시간이 지날수록 빈도가 늘고 있습니다.


제가 처음 이 생각이 든 때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였습니다.


여느 명절과 같이 귀향길에 나섰습니다.

한참을 가다가 점심때가 되어서 식사도  겸 휴게소에 들렀습니다.


메뉴를 한번 쓱 둘러보고, 와이프한테 말했습니다.

난 소고기 국밥


별생각 없이 주문을 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명절답게 분주했습니다.

식당에도 많은 사람들이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먹는 음식도 가지각색이었습니다.

라면 먹는 사람, 돈가스 먹는 사람, 우동 먹는 사람.

라면이 맛있어 보였습니다.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국밥을 시켰을까? 라면이 아니고



휴게소에 오면 거의 항상 라면을 시켰습니다.

가끔 우동을 시키거나 돈가스를 시킨 적도 있었지만 국밥을 시킨 적은 없었습니다.


저에게 국밥은 국밥집에서나 먹는 거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먹는 음식은 아니었습니다(국밥 비하는 아닙니다)

적어도 40 중반 이전의 나 말이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라면이 아니라 국밥을 먹는다는 건, 오래간만에 찾아온 소중한 기회를 날려버리는 그런 어리숙한 결정 같은 것이었습니다. 즉 해서는 안 되는 일에 가까윘죠.


그런 내가, 국밥을?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 어른 할 거 없이 주한 가운데 눈에 띄는 패턴을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아마 국밥을 시킨 내 눈에만 보이는 패턴이었을 겁니다.


그건 바로 대부분의 아이와 젊은 사람들은 라면이나 우동을,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분들은 국밥이나 비빔밥을 먹고 있는 것입니다.


나도 나이가 든 건가? 국밥을 다 시키고


언젠가부터 밀가루 음식이 속에 부대끼 시작했습니다.

그전에는 주말이 되면 최소 한 끼는 라면을 먹었습니다.

주말에 대한 예의(?) 같은 거죠. 한번  먹을 때 라면 2개에 밥까지 말아먹었습니다.


그런 나이가 들수록 라면 먹는 횟수와 양이 모두 줄기 시작했습니다. 먹고 나서의 포만감은 부대낌으로 변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점점 라면을 멀리 하기 시작했는데, 역시나 휴게소에서도 별 고민 없이 국밥을 시킨 나 자신을 보며 '나도 늙었구나'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부모님과 휴게소에 들른 적이 있었는데 그때 아버지가 국밥을 드셨던 거 같습니다.




마음은 한 동안 나이를 따라가지 못하 봅니다.

몸은 나이에 맞춰 점점 노화로워 지는데 마음은 혼자 남아서 젊음을 즐기나 봅니다.


가끔 자신을 늙음을 깨닫고는 화들짝 놀라며 잠시 동안 부조화마저 느끼는 걸 보면 확실히 그런 거 같아요.


그러다 마음도 나이를 따라잡을 때 즈음 자연스럽게 늙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나 봅니다.

 

저도 이제 50이 되어가니 마음이 나이를 서서히 따라잡는 거 같습니다. 늙음이 점점 어색하지 않게 되는 걸 보면요.


그래도 아직은 마음이 쬐끔 더 젊은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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