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부 종합전형을 많이 들어보셨을 것 같다. 수시모집에서 학생들을 선발하는 하나의 방식인데 기원은 2004년 진보 정권 때 시작해서 현 교육부 장관(이번이 두 번째다)이 정착시킨 입학사정관제이다. 입학사정관제는 당시 학교생활기록부(이하 줄여 학생부)에 학교 밖에서 받은 상장, 동아리 활동, 연구 활동 등을 모두 적을 수 있어서 좋은 환경 속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아는 교수님 실험실에서 활동한 것도 입력했으니까. 그러다가 정권이 바뀌고 오직 학교 내에서 활동한 것만 기록하라는 의미로 학생부를 붙인 뒤 종합이라고 이름을 바꿨다.
본격적으로 실시된 2008년부터 학생부 종합전형이 15년째로 접어들고 있다. 이전에 EBS에서 이 전형 방식의 문제점을 분석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거기서 연령대별로 자신의 학생부를 출력해 바꿔보는 장면이 있었는데 가장 최근에 대학에 합격한 학생의 학생부를 보면서 나이 지긋하신 부부가 한 말씀 하셨다. ‘요즘은 선생질도 못 해 먹겠구먼~!’. 어르신은 20여 장이 넘는 학생부의 규모에 놀라신 반응이었다.
진학 얘기를 가끔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수능 출제 방식에 논란이 큰 김에 몇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실제로 자녀들의 대입을 치르거나 목전에 둔 내 친구들은 학력고사 시대인 우리 때를 회상하며 제발 부모들이 무언가를 알기 위해 걱정하고 근심하는 제도는 없어졌으면 한다고 한탄한다. 정보의 비대칭성이 너무 커서 각종 정보를 습득한 학부모는 그렇지 못한 분들에 비해 유리한 게 현실이다. 오늘도 수많은 진학 설명회에 학부모들이 몰리는 이유다. 생업에 바쁜 부모님들은 충분한 정보를 얻지 못하면 자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 그리고 이런 미안함은 입시와 교육 제도 전반에 대한 불만으로 나타난다. 그렇다고 많은 정보를 습득했을지언정 마음 놓을 수 있는 부모 역시 많지 않다. 끊임없이 불안이 양상 되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어떨까. 선생님들의 업무가 과중한 것은 오래된 현장의 불만이다. 게다가 모든 학생의 학생부를 충실히 기재해 줘야 하는 의무 사항이 생겨 많게는 20여 장이 되는 기록을 써야 한다. 학생부에 근거가 되는 각종 행사와 프로그램들을 기획하고 진행하느라 업무는 더욱 쌓여간다. 그러나 아이들을 위한 일들이라는 명분으로 다들 마다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선생님들과 때때로 얘기한다. 지금의 중고등학생이었으면 나는 대입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고. 고생은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때야 학력고사 한 번으로 모든 걸 판단했으니까 일상의 스트레스는 덜했을지 모른다. 지금의 아이들은 내신 관리, 학생부 비교과 관리, 최저학력기준을 포함한 수능 성적 관리로 지속적인 불안과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미래의 인재는 그렇게 키워야 하고 또 그런 방식으로 선발해야 한다고 하니 큰 확신은 없지만 한 명이라도 좋은 대학을 보내려고 오늘도 학교는 고군분투 중이다.
문득 내 고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정말 나는 학생부 종합에 어울리지 않는 학생이었을까? 이 전형을 준비하기에 힘든 학생이었을까? 지금 생각해 보니 무던하게 보냈던 것 같은 내 고등학교 시절도 여러 일 들이 있었다. 우선 나는 입학하자마자 중학교 선배 손에 이끌려 문학동아리에 가입했다. 시와 글을 쓰고 선배·동료들과 습작한 글을 치열하게 토론하는 동아리였다. 축제엔 주제를 정해 동아리방을 전면 개조해서 성대한 시화전과 시 낭송회를 했다. 내가 문과적 성향이 아니었더라면 활동이 쉽지 않았을 동아리였다. 한편 어떻게 하면 나 자신에게 엄격하게 영어 공부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제일 좋아하는 영어 선생님께 부탁해 매일 공부한 결과물을 확인받으러 내려간 일이 있다. 그 선생님이 계셨던 교무실은 들어가기 엄청나게 부담스러운 학생부였고 힘들었지만 선생님에게 피드백을 받으면서 교재 몇 권을 통달하기도 했다. 고마웠던 우리 영어 선생님 존함은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한 번은 시험 준비를 하며 잠자리가 불편했던지 당시로서는 생소한 수근관증후군이 생겨 고생 끝에 수술로 치유된 적이 있다. 그때 약 한 달간 고통스러워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건강이 회복되면 열심히 공부하리라는 다짐을 했고 실제로 2학년 말부터 성적이 꾸준히 오르기 시작해서 고3 내내 성적이 오르는 바람직한 모습을 보였다. 매달 보던 모의고사에서 학급 1등을 해서 깜짝 놀라는 친구들의 박수를 받은 적도 있다. 복도와 교무실에서 늘 선생님들에게 깍듯이 인사하고 예의 바른 태도를 보였고 결국 사범대를 쓴다는 소식에 선생님들이 등을 두드려 주며 많은 격려를 해주셨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상위권 학생들을 붙잡아 학교 도서관에서 강제 야간 자율학습을 시켰다. 쉬는 시간 틈틈이 문·이과의 수재들과 나눴던 인간 존재와 근원, 삶의 이유 등에 관한 철학적 성찰들도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글을 써보니 학생부에 몇 줄 기록되지 않았지만 나도 학생부 종합전형을 준비했다면 충분히 매력적인 학교생활을 제시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든다. 어찌 나뿐이겠는가? 한 사람에겐 모두 하나의 강물 같은 역사가 있다는데 다른 사람들도 그러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에게도 대입을 위한 스펙이 아니라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도전과 깨달음의 기회를 묵묵히 제공해 주는 게 제일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집이 사람보다 크면 사람이 집에 눌리게 된다.’ 제도로 만들려는 게 너무 비대해지면 그 일의 진심이 훼손될 수 있다. 언젠가 사람이 중심에 있는 대입 제도를 만나길 오늘도 간절히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