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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오데트 Jan 19. 2024

맞지 않는 신발을 벗다

메타인지의 부족

“퍽”

“아야… 아…”


바쁜 걸음에 그만 스텝이 꼬이고 말았다.

무릎에서는 피가 철철… 양다리가 시퍼렇게 멍이 들어 부풀었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통증이었다. 그렇게 조급한 마음에 앞만 보고 달리다 탈이 나 버린 것이다.

피가 흐르는 다리를 보니 왼쪽 무릎의 살갗이 벗겨지다 못해 짓이겨져 있었다. 그 와중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걸을 때마다 통증이 있지는 않네, 다행히 골절은 아닌가 보다.’


아픈 다리를 굽혔다 폈다… 뼈에 금이라도 가면 큰일이었다. 출근을 할 수 없으니.

지금은 다치면 안 되는 시기이다. 나에게 너무나 중요한 시기… 밥값도 못하고 새 업무를 버벅거리며 배우는 중인데, 더한 민폐를 끼칠 수는 없는 일이다.

갑자기 서러우면서 눈물이 났다. 하지만 피아노학원에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니 마냥 울고 있을 수 없었다. 아픈 다리를 질질 끌고 근처 편의점에 들어갔다.




경험상, 무릎처럼 움직임이 많은 부위는 얇고 넓은 밴드를 붙이지 않으면 금방 떨어져 버린다. 가격이 좀 비싸지만 3개에 3900원이나 하는 습윤밴드를 사서 급하게 상처부위를 감쌌다.

피아노학원 문을 열자마자 아이가 환하게 웃으며 뛰어와 와락 안기었다. 멋모르는 아이는 오늘 유치원에 있었던 일들을 나에게 재잘대기 시작했다.

환부가 욱신 거렸지만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억지 미소를 지었다.


학원을 나온 후, 늘 그렇듯 무인점포에 들렸고 먹고 싶다는 과자를 손에 쥐어주었다.

집에 와서 옷을 벗으니 양쪽 무릎을 타고 시뻘건 핏자국이 선명했다. 대강 물로 씻어낸 후 소독약과 항생제 연고를 들고 와 소파에 걸터앉았다.

친정엄마가 보시면 한소리 할 게 뻔했지만 어차피 알게 될 일이라 도움을 청했다.


“니는 어떻게 어른이 돼서도 이렇게 넘어지냐, 못살아 정말.”

“어릴 때에도 손만 놓으면 넘어져서 무릎이 성할 날이 없더니… 나중에 나이 들어서도 넘어지면 정말 큰일 난다."



발에 맞지도 않는 신발을 신고, 앞만 보고 조급하게 뛰어가니 아주 크게 넘어진다.

오늘의 넘어짐은 지금 내가 처한 상황과 너무나 닮아있었다. 부족한 현재 실력에 비해, 맞지 않는 자리에 앉았다. 한마디로 메타인지가 부족했다.

용기는 좋지만 현실 파악도 필요한 법이다. 직장에서의 새 업무를 맡기에는 나의 실력이 현저히 부족하다.




인정하기 싫지만 그랬다. 안타깝게도 그 사실을 일을 시작하면서 알게 되었다. 아직 나는 준비되지 않았는데, 이 자리에는 당장 투입될 프로가 필요한 것이다.

나의 부족함은 고객과 다른 동료들에게 피해로 돌아간다. 그렇기에 나는 그 자리를 조용히 내려놓기로 했다.

가득 움켜쥐고 있던 것들을 버리자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지루하지만 익숙한 것의 소중함을…

내려놓으니 부담감은 줄어들고 자신감은 올라갔다. 2주가 넘게 죄인으로 살았는데 오늘밤은 두 다리를 뻗고 잘 수 있을 듯하다.


얼른 원래의 업무로 다시 옮겼으면 좋겠다. 오늘 저녁은 가족들과 맛있는 식사를 한 후 미루어 두었던 책들에 파묻혀 행복감을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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