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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라토닌 Mar 14. 2024

엄마! 아빠한테 와이프가 생긴 것 같아

정말일까?



“이혼을 결심했을 때 가장 두려웠던 것 들



내가 이혼을 결심했을 때 가장 두려웠던 건 아이가 아빠의 사랑을 가까이서 받지 못하는 부분이었다.  딸에게 아빠로부터 정서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인생에 얼마나 중요한지 많이 들어봐서 알기에.


게다가 전남편은 이혼을 하지 않으려고 할 수 있는 협박은 다 뱉어 놓은 터라 솔직히 좀 쫄 리지 않을 수 없었다. 


“OO한테 갈 재산이 없을 수도 있어.”

“나도 외로워서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결국 OO한테 무관심 해질 거고”

"당신은 나와 OO 간의 연을 끊는 행동을 하고 있는 거야."


돈 좀 있다고 훗날의 증여나 상속을 언급하면서 아이의 권리를 내가 빼앗고 있다고 말하는 그에게 이미 마음속으로 결정한 이혼을 번복하겠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떠나간 마음과 멀어진 거리를 원상태로 돌리려면 이전에는 해보지 않았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아무리 상대가 잘못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도 인생에서 겪어보지 못한 고통스러운 시간이 있었을 테니 그의 고통까지 함께 치유해 줄 자신이 없었다.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려 꼬일 대로 꼬여버린 매듭은 자르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아이에게 훗날 가게 될 수도 있는 증여재산, 상속재산 관련해서는 내가 이혼을 하지 않고 함께 살아도 내 의지대로 되는 게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덩달아 들었다. 

아인슈타인도 말하지 않았던가. 

"우리가 직면한 중대한 문제들은 우리가 그 문제들을 보는 그 수준의 관점에서는 해결되지 않는다"라고.



아무튼 돈보다도 좀 두려웠던 건 아이와 아이아빠와 거리감이 생기는 것이었다. 


이혼 후 약 7개월 동안은 매주 내가 전남편의 집으로 아이를 데려다주고 4-5시간 후에 다시 데리러 갔다. 데려다주고 데리러 오고 하는 걸 누가 하느니 하며 초반 기싸움에 "이건 뭐 이혼을 해서도 싸워야 하나."라는 현타가 밀려와 일치감치 포기했던 부분이었다. 아이의 안위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했다. 


또 몇 번씩 전남편은 아이에게 은근슬쩍 아빠랑 살지 않겠냐고 물어봤다. 아빠랑 살면 원하는 걸 다 할 수 있다고 하면서.. 아이는 아빠를 좋아하기에 나름 고민을 했고 또 공감능력이 좋은 편이라 혼자 사는 아빠를 걱정하며 자기가 있어줬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나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아이 없는 일상은 상상이 안 됐다. 태어날 때부터 내 품에, 내 시야에 있었던 아이가 이제 초등학교 3, 4학년이 되었다고 해서 보낼 수는 없었다.


전남편의 이러한 꼬드김이 잦아들 무렵 아이는 깊이 고민을 하고 있었고 그래서 나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10살이면 나름의 생각도 있을 것이고 아빠랑 사는 것과 엄마랑 사는 것의 차이와 장단점을 자기 말로도 할 수 있는 판단력을 보았을 때 무작정 “안돼!”라고 이야기하는 건 설득력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약 한 달간 심리상담을 받아보며 아이의 진짜 마음을 파악하려고 애쓰기도 하였다. 잠들기 전 편한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물어보았다. "정말 엄마 얼굴 매일 안 봐도 돼?", "이제 사춘기 오고 그러면 아빠보다 엄마가 편할 텐데?"

그래도 아이는 아빠로 마음을 굳힌 것 같았다. 나도 마음의 준비를 절반정도 할 수밖에 없었고 상황이 흘러가는 대로 맡기자..라고 스스로를 위안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아빠를 만나면서 물어봤다고 했다. "아빠, 나 아빠랑 살까?" 그러자 아빠는 말했다. "아빠랑 살려면 할머니 집에서 지내야 할 수도 있어. 아빠가 바빠서.." 


이 이야기를 회사에서 일하던 중에 들었어서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아이의 소심한 목소리에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몰라 "하하하! OO야~ 너무 잘됐다!. 엄마는 네가 아빠한테 갈까 봐 너무 마음 졸였어. 이제 다시는 아빠한테 간다고 하지 마. 엄마 기분 너~무 좋아." 


실은 내 속마음은 그랬다. 이건 뭔 X소리야. 애한테 그렇게 바람 잡아 놓고 그새 마음이 변했니? 


집으로 돌아와 아빠와 있었던 일을 다시 물었다. 아이가 말했다. "엄마~ 나 아빠한테 같이 살자고 말했는데 거절당했어!!!" 


웃기고도 슬픈 표정을 짓는 아이에게 난 오버하면서 너무 잘됐다고 말해줬다. 


갑자기 혼자되면서 외로움에 아이를 다시 데리고 오고 싶었던 마음과 40세도 안 된 젊은 남자가 홀아비로 늙을 순 없다는 마음이 서로 팽팽하게 대립하다가 후자가 이긴 것 같았다. 




엄마, 아빠한테 와이프가 생긴 것 같아.



얼마 전 일이다. 아빠와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아빠가 누군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수화기 너머 상대에게 "와이프한테 전화하세요." 했다고 했다. 그래서 난 "아빠한테 물어보지 그랬어. 와이프가 누구냐고." 


아이는 말했다. "부끄러워서 어떻게 물어봐..", "근데 정말 아빠한테 나 말고 딴 여자가 생겼을까?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아이는 웃으면서도 서운한 눈치였다. 그래서 난 이렇게 말해주었다. 

"아빠랑 너랑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아빠와 딸 사이야. 아빠가 다른 사람이랑 결혼하더라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아. 너는 아빠와 엄마의 첫 번째 사랑이었어. 그리고 엄마가 이렇게 옆에 있으니 아무 걱정 안 해도 돼~"


나는 기억을 더듬어 봤다. 언젠가 택배 문자를 받은 적이 있다. 전남편이 택배를 주문했는데 내 전화번호로 안내 문자가 잘못 온 것이었다. 문자에 표시된 물품명은 니하이스타킹이었다. 남자가 그걸 신을 리는 없고 여자 친구 선물인지 여자 친구에게 신길모양인지. 취향은 변함이 없네..라고 생각했었는데, 혹시 그 여자인 걸까? 


이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웃기지만 그래도 전남편에게 누군가가 생겨 결혼을 한다면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내 결혼 생활을 돌이켜 보고 또 관계라는 걸 경험해 보니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고 맞고 안 맞는 관계만 있을 뿐이며 그렇게 대단한 남자도, 그렇게 대단한 여자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전남편도 누군가로부터는 사랑받고 다듬어질 수 있는 사람일 거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정말 새 와이프가 생겼는지 알려주길 바란다. 너무 궁금하거든. 


예전에 전남편의 PC를 사용하다가 한 사진첩 폴더를 보았다. 사귀었던 여자친구의 이니셜로 폴더 3개를 만들어 놓았는데(아무래도 사귀었던 여자가 3명이었던 듯) 사진첩을 열어보니 다 못생긴 여자였다. 그래서 아주 기분이 나빴던 기억이 있다. 이번엔 부디 예쁜 여자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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