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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충신 Oct 22. 2024

지워지지 않는 여인들 - 인연

   농사일을 접는다고해서, 꼭 무료한 것만은 아니다. 자신의 삶을 뒤돌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집사람과는 학교 근무 중에 만났다. 우리 나이로 33세 때다. 인연은 우연에서 나오는 것 같다. 여고에서 근무하면서 이쁜 여고생들한테 둘러싸여 웬만한 여자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중학교에 발령받으니 처녀 선생님들이 잔뜩 대기하고 있었다. 그 중 집사람이 가장 눈에 띄었다. 중학교 근무 2년 반 동안에 집사람을 만나 결혼도 하고, 대학원도 졸업하고, 운전면허도 취득해 차도 샀다. 중학교 근무가 나한테는 인연의 시발점이었다.

  남자들이 배우자를 찾을 땐, 아무리 아니라고 우겨도 외모를 제일 먼저 본다. 콩깍지가 씌우든 말든 말이다. 그런데 그 우연을 인연으로 만들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난 그런 인연을 참 많이 놓쳤다. 또한 첫눈에 반한다는 말이 있다.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도, 만나지도 안했는데,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초등학교 다닐 땐, 우리 반 부반장이었던 선생님의 딸을 좋아했다. 이쁘고 얼굴이 하얬으며 키가 컸다. 아마 당시에 고백했으면 발로 차였을 것이다. 근래에 와서 고백했더니, 전혀 몰랐단다. 그리고 내가 무섭게 굴었단다. 지금은 모임에서 친구들과 같이 가끔 만난다. 늙어가면서 설레임은 사라졌지만, 어렸을 적 친구로서 만나면 그냥 좋다.

  고등학교 때다. 멀리 유학을 와 자취를 했다. 누님이 근처에 사셔, 주말이면 김치를 담가 주었다. 그걸 비닐봉투에 담아서 버스를 타면 묘하게 김치 냄새가 천하를 진동했다. 여름에는 더욱 심했다. 방금 전까지 열무와 고춧가루와 마늘이었는데 말이다. 

  어느날인가 버스 안에서 김치를 담은 비닐봉투가 터져 버렸다. 울음이 나올 정도로 창피했고 어찌할 줄 모르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당신 보따리에서 보자기를 꺼내 김치를 다시 잘 싸 주었다. 너무 고마웠다. 그런데 말이다. 고마운 아주머니는 보이지 않고, 맨 뒤에서 나를 빤히 쳐다보는 여학생이 눈에 확 들어왔다. 넘 예뻤다. 내 얼굴이 고춧가루보다 더 붉어졌다. 부끄러워서 얼굴이 폭발할 것 같았다. 목적지에 도달하기도 전에, 다음 정류소에서 내려버렸다. 걸어서 집에까지 가느라 고생했다. 지금도 얼굴이 붉어질 때면, 그 여학생의 얼굴이 생각나곤 한다. 아마도 그때부터 이쁜 여자만 보면, 얼굴이 붉어지지 않았나하는 상상을 해 본다.

  재수할 때다.

  지금이야 버스에 사람이 의자수보다도 많지 않지만, 70년대만 해도 콩나물 시루였다. 모처럼 자리에 앉아 졸고 있는데, 갑자기 머리 위가 뭉클했다. 버스가 움직일 때마다 묘한 쾌감이 몰려왔다. 얼굴을 들어 쳐다보니 무지 이쁜 여대생으로 보였다. 나를 빤히 쳐다보는 눈동자가 더욱 매력적이었다. 버스는 흔들리고 감각은 계속 전달 되었다. 내려야 할 곳은 이미 지나가 버렸다. 젊음이 불타오를 때다. 나를 좋아하는 줄 알고, 따라 내림을 기대하며 버스에서 내렸지만, 여대생은 내 자리를 차지하곤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그냥 가버렸다. 닭 쫓던 개꼴이었다. 그런데 나에게는 아직도 그 묘한 눈빛과 감각이 눈에 선하다.

  지금은 만원 버스가 그립다.

  대학교 시절이다.

  하숙집에서 밥을 먹고 있는 하숙집 따님의 친구가 다소곳하고, 넘 이뻐 보였다. 하숙집 딸한테 몇 번을 졸라 만났다. 재수생이었고, 운동선수 출신으로 정말 이뻤다. 몸도 탄탄해 보였다. 자발적 의지로 데이트 신청한 첫번째이자 마지막 여인이었다. 두 번인가 만났는데, 결혼하면 내가 꼼짝 못할까봐 겁이 났다. 후에 교육청 장학사도하고 교장선생님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를 기억할지 조차도 모를 일이다.

  예당와옥을 주말주택으로 이용할 때다. 동네 근처에는 내가 필요로하는 물건이 없어 읍내 철물점에 들렀다. 와, TV에서 보는 탤런트보다 더 예쁜 아줌마가 물건을 내준다. 너무 감동한 나머지 이후에도 몇 번인가 들렀지만 다시 볼 수 없었다.

  집사람한테 얘기했더니, 거기 다시 가면 패 죽인단다. 맞아 죽기 싫어 다시는 못가고 있다.

  난 희대의 난봉꾼인 돈 후안도 아니고, 바람둥이의 대명사인 카사노바도 아니다. 그렇다고 이쁜 여자만 탐하는 변태성 남자는 더더욱 아니다. 그럴만한 능력도 없는 평범한 필부필부일 뿐이다.  

  최재천 교수가 그랬던가? 모든 동물의 암컷은 우수한 유전자를 찾아 다니고, 수컷은 곳곳에 씨앗을 뿌리고자하는 욕망이 짐재해 있다고...

  이 세상에 유행가 가사에서 바라는 일편단심 민들레는 존재하지 않는다. 민들레 홀씨는 가볍고 번식력이 강해, 바람에 이리저리 잘 날아다닌다. 다만, 약속과 신뢰와 도덕심이 바람끼를 잠재울 뿐이다. 

  어쩌면 산다는 것 자체는 욕망의 분출이 아니라, 약속과 신뢰의 산물일지 모를 일이다. 그래도 언제 한 번 다시 철물점에 가보고 싶다. 

  [에필로그]

  집사람 이 글을 읽고나서, 글의 목적이 무엇인지 묻는다. 뜬금없는 얘기들만 나열했다는 것이다. 특별한 목적이 없이 문득 기억나는 내용을 반추해 보았다고 말하니,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단다. 글은 그리 쓰면 안된단다. 내릴까하다가 그냥 두기로 한다. 쓸데없는 내용도 어떤 사람에게는 즐거운 추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집사람에게는 즐거운 내용이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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