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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현복 Sep 11. 2023

사소한 하루를 작품으로 담는 법

 나는 매일의 그림 기록을 남긴다. 일상의 하루동안 나만의 자유로운 드로잉을 하고 매일의 기록들이 모여 전체의 한 작품이 된다. 중요한 것은 일기 쓰듯이 매일 반복해야 하므로 비교적 짧고 굵게 몰입된 에너지로 끝낸다. 한 장 당 대략 십 분 이상의 시간은 할애하지 않는다. 그래서 긴 시간을 들어가는 묘사해야 하는 사실적인 그림은 안된다. 추상적이며 형태가 없고 즉흥적이고 무의식적인 반응이 만들어내는 흔적들은 그날 그 순간의 나의 컨디션과 감정상태를 진단할 수 있다. 영화에서 심전도나 뇌파측정 때 감지 케이블을 붙이고 모니터에 아래위로 진동파가 나오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가. 이와 비슷하게 미술재료가 내 몸과 마음의 컨디션을 측정하는 신호를 나타내주는 훌륭한 도구의 역할을 한다. 실행 방법은 세 단계로 아주 쉽고 간단하다.


 첫째, 주변에 재료를 둘러보고 찾는다. 재료는 무엇이든 좋다. 붓, 연필, 볼펜, 물감, 이쑤시개, 물티슈 등등 무엇이든 종이 위에 자기 흔적을 남길 수 있는 모든 사물은 표현의 수단이 된다. 드로잉을 할 종이도 필요하다. 역시 위에 나열한 도구들의 흔적을 받아줄 수 있는 모든 재료가 가능하다 스케치북뿐만 아니라 천이든 골판지든 신문이든 플라스틱이든 상관없다. 오히려 이 재료들이 풍부해질수록 더 자유로운 결과물이 나온다.


둘째, 정신을 집중하기 위한 평온한 마음상태를 만든다. 고요한 음악을 틀어도 좋고, 좋아하는 향이 나는 인센스나 초를 켜두어도 좋다. 약 5분간 잠시 눈을 감고 자기 숨을 고르고 인식하며 주변에 분산되어 있던 의식을 나의 몸의 중심부로 집중시킨다. 이것은 우리가 혈압을 잴 때 고요한 마음과 안정된 자세를 취해야 하는 것과 같다. 흥분하고 긴장된 몸의 상태에서 측정된 검사결과는 정확도가 떨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셋째, 앞서 준비된 재료들을 무작위로 집어 원하는 종이 위에 자유로이 재료의 흔적을 남겨본다. 그 재료가 선을 만드는 도구(펜, 연필 등)라면 선이 종이 위에 지나가며 생기는 율동과 형태를 먼저 시각으로 느끼고 필압에서 생기는 팔의 움직임에도 집중해 본다. 자세히 말하자면 그 도구가 온전히 종이 위에 흔적을 남기는 동안 소비되는 내 몸의 에너지에 집중하는 것이다. 도구가 종이 위를 긁을 때 생기는 마찰을 재료를 잡고 움직이는 손과 팔의 근육과 신경으로 촉감을 느낀다. 또 도구가 지나가며 남기는 흔적에 소리를 청각으로 듣고 눈으로는 보면서 그 행위가 불러일으키는 감정에 심장부를 집중해 본다. 즉 일련의 모든 행위에 오감으로 재료의 움직임과 몸의 움직임을 느끼며 자유로운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색을 나타내주는 도구들도 마찬가지이다. 유화물감이든 아크릴이든 수채화물감이든 상관없다. 내가 원하고 마음에 드는 색을 찾아 배경위에 바로 짜본다. 미리 팔레트에 덜어 붓으로 칠할 필요가 없다. 직접 종이 위에 색을 올리고 붓으로 칠해본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어떤 형태를 그리고자 하는 의도를 버리고 물감의 색 그 자체에 집중한다. 색이 나에게 불러일으키는 감정을 느끼고 색이 만드는 흔적의 변화와 움직임에 집중하며 종이 위에 색이 자유로운 흔적을 남기도록 돕는다. 아마 선을 만드는 도구(펜이나 연필등)에서 거침없이 흔적을 남길 수 있지만 색을 만드는 도구에서는 조심스럽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은 당연하다. 그 재료가 가진 성질을 그대로 인정하고 관찰자가 되는 입장이기 때문에 재료의 특성에 따라 우리의 몸에 움직임과 힘은 다르게 작용해야 한다. 이렇게 모든 재료들로 배경 위에 각기 다른 흔적들을 남긴다.


 이때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스캔하는 것과 같다. 카메라가 우리 얼굴을 순간의 찰나로 사진으로 담는다면 또 엑스레이가 우리 몸의 뼈와 살을 음영으로 담는다면 그림일기(日氣)는 미술재료에 적정시간 노출된 우리 몸과 마음의 기운 즉, 에너지가 투영된 흔적이다.


 그렇다면 미술재료와 도구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것만으로 어떻게 내 몸과 마음의 상태를 비춰 볼 수 있다는 건가?라고 의문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미술도구가 자기를 통해 만들어내는 흔적을 고도의 집중으로 관찰하고 있으면 각기 다른 흔적에 따른 자기감정이 올라온다. 그 감정은 잠재의식 속에 내재된 소용돌이치는 두려움의 감정일 수도 있고 가슴깊이 뜨겁게 타오르는 사랑이나 기쁨의 감정일 수 있다. 더 정확하게는 이렇게 즉흥적으로 그려내는 행위를 통해 언제 쌓였었는지 모를 무의식에 내재된 감정이 종이 위로 숨김없이 쏟아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감정을 담은 드로잉을 반복적으로 실행하다 보면  결국 감정의 증상을 드러냄과 동시에 자기 눈으로 자신을 측정하는 행위가 같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이 지점인데 이때부터의 드로잉은 능동적으로 쏟아져 나온 나의 감정을 수렴하며 결과적으로 내가 원하는 조화로운 형태의 그림을 그려내도록 이끌어 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자동적으로 선이나 색 또는 그림에서 표현된 다양한 요소에 의해 자신이 미세하게 미적 쾌감을 느끼는 방향으로 찾아 나서게 된다. 이때 우리의 몸과 감정상태의 지휘자가 된 것처럼 내가 원하는 만족할 만한 조화로운 조율 상태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연주된 그림의 연주자로서 만족의 어느 순간이 되면 드로잉을 끝내며 그것이 그날의 일기가 된다.


 한 가지 중요한 팁은 드로잉을 시작하고 표현하는 중간 단계에서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고 원하는 방향으로 나오지 않는다고 절대로 중도에 포기하거나 구겨서 버리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은 마치 내 신체의 어느 한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순식간에 자기를 내팽개쳐 버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자기가 만족할만한 형태나 결과물을 만들어 낼 때까지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덧칠하거나 수정해야 한다. 우연의 결과도 받아들인다. 이런 행위 자체로 우리는 자기를 인정하고 포용하는 법을 터득하게 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한 장의 그림이 완료되면 그날의 자신의 상태를 고스란히 담은 또 만족스러운 자신의 취향을 반영한 하나의 작품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매일 한 두장의 그림만 그려내도 백일이면 100장 일 년이면 365장의 드로잉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쌓인 드로잉 한 장은 작은 크기일지라도 모두 펼쳐놓게 되면 어마어마한 규모의 확장된 자기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마치 우리 인생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self awareness drawing series_135장의 드로잉_가변설치_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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