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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현복 Oct 10. 2023

똥손을 금손 되게 해 줄 따뜻한 응원

그림을 그려보기로 작정한 사람들을 위해

드로잉_h11_oil on paper_34x24.5_2023

 우리는 학창 시절 미술을 한 번씩 배우기는 했지만 나이가 들고 생활반경이 예체능에 멀어질수록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림 그리는 행위 자체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리는 것은 악기를 연주하거나 음치가 노래를 불러야 하는 것처럼 대단한 극복의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 그저 무엇이든 그려보겠다는 마음가짐 하나면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다.


 어떤 분야든 학원에서 배울 수 있는 대한민국의 교육열 덕분에 미술학원은 한집 걸러 하나씩 있지만, 그것들이 오히려  일반인들의 자유로운 미술 활동을 방해한다. 마치 그림 그리는 사람은 따로 정해져 있고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돈을 주고 그리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는 인식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유럽 여행을 가본사람들이라면 혹시 미술학원 간판을 본 적이 있는가? 유구한 역사의 유럽인들은 미술학원에 가서 그림 그리는 법 따위는 배우지 않는다. 그들의 유전자가 우월해서일까? 아니다. 말하기 듣기처럼 그림 그리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천부적인 소통의 기능이기 때문이다. 첨언하자면 서양인들에게 아뜰리에는 모여서 자신의 미술양식과 철학을 나누는 공간이지 그리는 법을 가르치고 배우는 곳이 아니다.


 고대인들은 문자가 발달하기 전 벽화에 사냥한 동물의 그림을 그려 소통하기도 또 제사의 수단을 삼기도 했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알고 있다. 이처럼 그리기는 원초적인 소통의 수단이었다. 2-3세의 어린아이들에게 크레용을 쥐어준다면 고민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무엇이든 그릴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아무렇지 않게 머릿속의 무엇도 그려낼 수 있다.


 그리는 능력은 운동 능력과 비슷하다. 팔 굽혀 펴기를 따로 배우지 않아도 반복해서 팔 굽혀 펴기를 하면 근육이 자라는 것을 알 수 있듯이 그리는 행위 역시 반복할수록 머릿속의 이미지들을 정확히 그려내는 능력이 향상된다. 훌륭한 가수는 어떤 종류의 노래를 불러야 할지 고민하지 않는 것처럼 무엇을 그릴지 고민하는 것보다 먼저 나는 무엇이든 잘 그리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렇게 자신감을 갖고 그림 그리는 자리에 앉으면 무엇이든 잘 그려나가게 될 것이다.


  그림을 그려보기도 전에 두려움이 앞선다면?


 그림 그리는 사람이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무서우면 그리는 그 자리 앞에  앉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자기 스스로의 시선 역시 두려워해서도 안된다. 항상 우리 마음속 자기 검열의 자아 비판관은 엄격한 시선으로 우리를 보고 있지만 가장 먼저 그를 달래 저만치 보내도록 해야 한다. 엊그제 코치에게 '넌 글러 먹었다.'는 소리를 듣고 경기장에 들어서는 축구 선수가 그 말을 계속 자기 귀에 되뇐다면 훌륭히 경기를 치를 수 있을까? 무슨 일이든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일단 그간의 두려움이나 불안은 저만치 떨쳐버려야 한다. 그렇게 이성적인 판단의 마음대신 스스로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오픈마인드를 만들 필요가 있다.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을 그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 가득하다면 먼저 그 감정들이 물러나고 준비될 만큼 충분히 기다려 주어야 한다. 그동안 무엇을 그릴지 어떻게 그릴지는 고민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누가 되고 싶은지만 집중하자. 미술을 하는 행위 그 자체에 자아의 신뢰회복과 치유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혹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여러 모든 조건이 완벽히 세팅되어 있어야 있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진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 이유로 화방에서 가장 예쁜 펜과 고급진 붓, 깨끗한 연습장이나 스케치북을 사서 가지런히 배치만 해둔 뒤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축구선수가 다음날 경기를 위해 경기복을 다리미로 깨끗이 다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저 손 안의 축구공을 만지작 거리며 이런저런 준비 동작으로 긴장을 달래듯이 당장 자리에 앉아 손에 집히는 데로 아무 도구나 들어 일단 종이 위에 낙서부터 해보는 것이 어떨까?


 아마 훌륭한 선수라면 무조건 이 경기에서 내가 골을 넣어야 한다는 부담감과 책임감만 가지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경기 그 자체를 즐기고 어떤 방식으로든 경기 내용에서 자신의 잠재 능력이 충분히 발휘되었다면 그는 만족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림 그리는 사람 역시 무엇을 잘 그려야 한다는 자기 부담을 떨쳐버려야 한다. 또 어떤 결과물이 나오든 가치 있고 충분히 만족할 것 이라며 스스로에게 잘하고 있다고 칭찬해 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정말로 결국에는 자신에게 마음에 들 수밖에 없는 그림을 그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신의 마음 상태가 충분히 준비될 수 있도록 기다려 준 후 자리에 앉아 앞서 설명했던 즉흥드로잉'그림일기'부터 시작해 보기를 추천한다. 그러면 아마도 삼십 분 뒤 멋진 화가가 되어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혹시 어쩌다 한 번쯤 예술가들의 난해한 그림을 보고 <이렇게 막 그리는 게 미술이면 아무것도 모르는 나도 이 정도는 하겠는데? >라는 생각이 든 적이 있는가? 바로 그 마음이다.


 단순한 추상 드로잉으로 대중들에게 친숙하게 알려진 앙리 마티스도 역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사람들이 내 그림을 보고 이렇게 말하길 원한다. '아니 세상에 뭐 이렇게 쉬워 보이다니, 나도 그럴 수 있겠다!' 그런 말이 나올 만큼 쉬운 그림을 만들기 위해 나는 평생에 걸쳐 연습, 또 연습을 했다."

 그의 뜻대로 열린 가능성의 자신감을 갖고 마음대로 휘둘러보자. 실제로 많은 작가들의 작품 의도에서 보는 이들에게 그런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고자 한다. '미술은 어렵지 않아요. 여러분도 할 수 있어요!'라고 말이다.


 앞서 말했듯이 즉흥드로잉은 내면의 감정을 기록하는 일기와 같다. 그 형식이 텍스트가 아니라 색과 움직임이라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텍스트가 아닌 이유는 우리 내면에 잠재되어 켜켜이 쌓인 흔적은 읽거나 해석되어야 하는 정보가 아닌 가슴으로 느껴지는 감정의 두근거림이기 때문이다.


 불안, 공포, 좌절, 상처, 기쁨, 환희, 용서, 애틋함, 감동 등과 같은 우리 감정의 형태들은 삶에 크고 작은 사건과 대인관계의 경험으로 인한 트라우마의 자국으로 무의식에 남아 개개인의 자아정체성으로 적립되어 있다. 그 싸인과 같은 감정의 자국들이 우리 뇌의  망상활성계(RAS: reticular activating system)에서 특정 상황에만 반응하며 심화 또는 확증 편향되어 작은 신호에도 화가 난다거나 우울해지거나(우리가 흔히 남의 말에 상처받는) 신체적 반응들로 쉽게 나타나며 또 다른 개인적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이러한 자기감정의 신호들을 색이나 선, 난화와 같은 그림의 형태로 매일 쏟아내며 확인, 수정, 발전시켜 나아가는 과정을 통해 내면의 감정 회복과 같은 자가 치유를 하는 것이 바로 즉흥 드로잉이다.


 이런 자기를 인식하는 알아차림을 가능하게 해주는 즉흥 드로잉의 이점은 말로 다 설명하기 힘들 만큼 내면의 깊은 위로와 치료제 역할을 한다. 이렇게 그림을 그리는 행위 그 자체만으로 인류 공통적인 내면 치유의 효능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미술이 권유되어야 할 훌륭한 명분이다. 즉흥드로잉을 통한 내면일기는 명상과 구도의 정신적 영역을 넘어서 신체의 건강과 웰빙을 유도하는 건강한 취미이자 의식의 차원을 높이고 삶을 윤택하게 하는 철학이다.


 또 즉흥드로잉은 누구든지 별다른 배움 없이도 누릴 수 있는 천부적인 표현 수단이다. 오늘 하루 삼십 분가량의 작은 시간을 할당해 자기감정을 돋보기처럼 들여다볼 수 있는 그림일기를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드로잉_h12_oil on paper_34x24.5_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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