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귀게 된 사실을 난 부모님께 아예 모르게 숨겼었다. 남편이 날 좋아해주는 것은 둔한 나로서도 느껴졌었지만, 나도 남편을 좋아하는 만큼 너무 소중해서 함부로 하기가 싫었다는 표현이 젤 잘 맞을 것 같다.
사귀자마자일 때문에 경남 진주 집에 내려간 남편이 나중에 2~3개월 뒤 서울에 다시 올라오면, 그때 기회를 봐서 말씀드리려 했었다. 그때까진 나도 당시 이름있는 아버지 친구분인 화가 선생님의 수제자로 그림을 배우며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남편이 다시 올라오는 그날까지 성실하게 살고 있자 마음 먹고 있었다.
그런데... 주말에 선생님 화실에서 취미로 그림을 그리시던 아버지께서 알아차리신 것이다!!
화실에서 학생 한 명을 가르치던 중, 남편에게 전화가 와서 통화하는 걸 들으셨던 거였다.(참고로 우리 아버지의 눈치는 예삿 여자들은 저리 가라 하신다~) 게다가 내가 남편에게 존댓말을 쓰고 있었으니... 이상한 낌채를 눈치채신 것이리라....
아빠와 함께 화실을 나오니 아니나 다를까 아빠께서 여지없이 물어보셨다.
"ㅇㅇ 너... 누구 만나는 사람 있니?"라고...
빼도박도 못하게 생겼다... 위에 얘기 했듯 울 아빠는 속이려 해도 속일 수가 없는 분이시기에 차라리 솔직하게 말했다.ㅠㅠ
"네, 아빠... 지금 하고 있는 일 때문에 지방 집에 내려가 있는데 참 좋은 사람이에요..."
"그래? 그런 사람이라면 아빠도 한 번 보고 싶구나. 나중에 집으로 데려오너라~"
얼떨떨 했지만 데려오라는 말씀이 좋았던 나였다. ^^
드디어 남편이 다시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고...
거의 3개월 동안 2번 밖에 못 봤던 남편과 난 2~3일이 멀다 하고 매일 데이트를 했었다.
너무나 보고픈 사람이었기에 밤 늦게까지 함께 있고 싶었지만, 부모님께서 내가 늦으면 걱정하시며 행여나 남편을 안 좋게 보실까봐 난 되도록이면 거의 10시 전까진 집에 꼬박꼬박 들어갔었다.
10분이라도 늦으면 바로 연락드렸다. 지금 집 앞이라고...
거의 석달이 넘는 시간 동안에 10시 전까진 어떻게든 들어오려는 날 보신 엄마 아빠는 그때부터 우리 데이트 비용조차 더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해주셨다. 전에도 많이 주셔서 돈이 남아 있다는데도 또 주시며 좋은 시간 보내고 오라하셨다~
나중에는 울 부모님께선 아예 안심이 되셨나 보다. 연애 초반엔 내가 들어올 때까지 마루에서 두 분 다 기다리셨는데, 4개월이 넘어가는 시점이 되자 내가 조금만 늦을 때에는 1층 거실 보조등만 켜놓고 다들 주무셨다;;
'나 내놓은 자식인가?' ㅋ~
그때 조금 늦으면 남편은 우리집 근처 PC방에서 잠을 자곤 했는데 너무나 미안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ㅠㅠ 그래도 감사한 건, 남편이 전날 PC방에서 잠을 잤다고 하니 부모님께서는 아침에 "얼른 나가서 남편 밥 먹이라"시며 아침 일찍 나가 저녁 때 들어오는 것도 허락하셨다는 것이다.
연예를 하는 여자분들~ 내가 만나는 내 남자를 부모님께 좋게, 올바른 사람으로 보이게 하고 싶다면 내 자신이 스스로 잘 해야만 합니다!! 허구헌날 집에 늦게 보내거나 안 들여보낸다면 그 어떤 부모님께서 그 사람을 좋게 보겠습니까? 힘들더라도 귀가 시간은 지키도록 노력하시는 게 내 남자의 점수를 따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이젠 남편이 우리집에 인사를 올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서 엄마한테 말씀드렸는데...
"어딜 집까지 오라고 해!!"그러시는 게 아닌가!!
와~ 완전 황당했다~ '그럼 지금까지 해주신 것은 뭐란 말인가~'
엄마랑 다투고 내 방에 올라가 있던 동안, 나중에서야 사정을 알게 되신 아빠께서
"당신 왜 그렇게 했어~ 내가 한 번 부르라고 했는데!" 하셨단다.
아빠의 그 말씀을 듣고 엄마도 곰곰이 생각을 오래 하셨다가 나를 부르고 말씀하셨다.
"여태 너희 언니, 오빠는 결혼적령기 즈음 처음 데려온 사람들과 다 결혼을 했기에 우리집에 오는 사람은 결혼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만 했었나 보다... 나도 생각이 좀 좁았고 뭣보다 아빠가 오라고 하셨다니 그렇게 하자~"
그러던 중 프랑스에서 살고 계신 6살 많은 친언니네 가족들이 한국에 오게 되었다.
언니의 시차 적응이 다 되었을 때쯤 엄마께서도 내 남편이 궁금하시고... 언니도 궁금해 했다고 하니 언니한테 남편을 먼저 만나보라 하셨단다.
지금은 없어진 연신내의 '로맨틱 가도'란 레스토랑에서 그렇게 언니와 나, 남편은 만나게 되었다.
평소 언니는 내 얼굴이 작다며 부러워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남편과의 첫 만남 자리에서 앉자마자 "야~ 너 얼굴 커보여!!" 하는 것이 아닌가... ㅠㅠ
그렇다~ 울 남편은 얼굴이 작은 데다 키는 187cm로 크고 심지어 다리가 너무 길어서 앉은 키까지 작다~ ㅠㅠ
암튼... 우린 진짜 넘 좋은 시간을 함께 보냈고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남편은 울 언니가 너무 좋다며 팬이라 한다. 사람을 너무 편하게 해주면서 넘나 멋진 여성이라고...
둘이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눌 때면 어쩔 땐 질투가 난다. ㅡㅡ^
자리를 파한 후, 내가 남편을 지하철 역까지 바래다 준 사이에 언니가 집에 가서 엄마한테 한 말은 "멋있는데 귀여워요~ 사람도 아주 괜찮고~" 했다고 한다~ 엄마도 좀 안심이 되셨단다.
첫 인상을 그렇게 잘 심어드리고 부모님을 뵈려 했는데 뜻밖의 기회가 생겼다. 언니의 플루트 선생님 독주회가 한국에서 열린 것이다.
첫 만남이 집에서였더라면 좀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자리라면 더 괜찮을 수도 있을 거라 여겨졌다~ 남편 말대로 나이스다!!
연주회 당일 날 오후의 살짝 어스름한 시간에 남편을 만났는데...
헉~
너무 멋있다!!
진회색 차이니즈 정장을 입은 남편을 보고서 난 심장이 또 뛰어댔다.
"내 심장 좀 그만 뛰게 해줘욧!! 나 또 혈압 오른단 말이에욧!! >.<"
그런 뒤, 오늘은 부모님을 처음 뵙는 자리이니 만큼 연주회에 늦지 않게 참석하기 위해 홀의 윗층으로 올라갔다.
가는 내내 난 아빠가 남편을 어떻게 보실까 걱정이 되어서 온몸이 긴장으로 가득했다.
연주회장 복도에 발을 들여놓자 저 오른쪽 멀리 엄마부터 계셨다. 엄마는 우리들을 보고 웃으셨는데 대체 누굴 보고 웃으시는지... 게다가 아빠는 어디 계시나...
정면을 바라보는데 아버지께서 계셨다. 우리와 눈이 마주치신 순간 가시던 발걸음을 딱!! 멈추시는 것이었다.
왜 영화에서 나오지 않는가. 주인공은 가만히 있는데 주변 사람들만 지나다니는... 그것처럼 아빠만 중심에 계시는 것 같았고 주변에서 그 많은 사람들이 내는 시끄러운 소리도 그 순간엔 들리지 않았다!! 오직 아빠만 보일 뿐이었다!!
2초 정도의 정적이 흘렀을까... 아빠는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남편에게 악수를 청하셨는데, 남편은 똑똑한 목소리로 "안녕하십니까! 박기련입니다!"라고 말씀드리니, 아버지도 "내 자네 얘긴 많이 들었네." 하시며 환하게 웃으셨다~
우린 연주회가 시작되기 바로 직전에 복도에 나와 심호흠을 하며 서로를 격려해 주었다. 나나 남편이나 너무 긴장했었기 때문에 이젠 좀 풀어보자고...
아버지께서 날 아시듯 나도 아빠를 안다. 그때 그미소는 정말 반갑다는 웃음이셨다!!
연주회가 끝나고 난 남편과 조금만이라도 더 함께 있고 싶어서 남편을 바래다 준다는 이유로 집에는 따로 가기로 했다.
오늘 우린 둘다 큰일 치뤘다며 서로를 토닥여 줬다...
우리집에서 날 기다리실 거라며 남펀은 빨리 들어가게 했다. 그렇게 우린 곧 헤어져 각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평소보다 훨씬 많이 이른 시간에 집에 도착했더니 엄마랑 언니는 안방에, 아빠는 서재에...
난 너무 궁금했기에 엄마께 조심스럽게 여쭤봤다. "그 사람 어땠어요?"라고...
그러자 엄마 왈 "네 아빠가 하~도 맘에 들어 하셔서 엄마도 너무 맘에 드는데 말도 못 꺼내겠다!! 사람은 그렇지, 그렇게 선해보여야 한다고 하신다~!!"라고...
ㅠㅠ 어흑~ 너무 기분 째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엄마가 조용히 말씀하셨다.
"근데 그 사람 너무 멋있더라~"
"그러니 저도 아까 심장 두근대서 미치는 줄 알았다구용~ ㅠㅠ"
그렇게 언니의 지인인 연주회에서 부모님을 처음 뵈었고 다음은 남편이 우리집에서 첫 식사를 할 차례였다.
2, 3층 방들을 치우고 정돈하고... 남편이 집에 온다니 너무 설레였다~
내 방 스타일은 그닥 여자방 같지가 않았다. 미니멀 라이프 스타일인 난 인형이나 큐티큐티한 걸 별로 안 좋아했기에, 유일하게 여자방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건 향수 모아놓은 게 다였다.
그날, 고기를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서 임신까지 한 언니가 비프 스테이크를 할 테니 좀 도와달라고 부탁했기에 도와주려 부엌에 갔더니 엄마께서
"집안도 좀 치워야 하니 넌 밖에 나가서 기련이와 같이 차 한 잔 하고 이따 들어와~" 하시는 게 아니신가!! '어?!! 나 언니 도와줘야 하는데...'
엄마의 명령 아닌 명령에 난 옷을 주워입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언니가 "야! 너 어디가!!" 했었다. "언니... 미안하지만 엄마가 밖으로 나가래~ ㅠㅠ" 오븐 앞에서 주방 장갑을 끼고 부엌 바닥에 앉아있는 언니를 보자니 짠~ 했지만 어쩌겠는가... 나가라시는데...
전에 내가 남편을 만났다가 갑자기 혈압이 올라 뻗어서 쓰러졌던 '사과나무' 커피숍에서 남편과 나는 차와 커피 한 잔 씩을 마시며 얘기를 하다 드디어 엄마께 연락을 받고 집으로 가게 되었다.
딩동~ 딩동~
"어서 들어와요~"라고 반갑게 맞아주시는 엄마께 인사를 드리고 남편은 내 안내로 당시 3층 집이었던 우리 집을 한바퀴 둘러보고 다시 1층 주방으로 가게 되었다.
저녁 메뉴는 언니의 화려한 비프 스테이크~
난 먹어본 적이 꽤 있지만 남편은 처음이었단다. 큰 고기 덩어리를 남편에게 먼저 주시고 식사가 시작되었다. 엄마도 신경을 쓰셨는지 여러가지 반찬들이 있었다.
사위될 사람은 잘 먹어야 된다는 말을 신경 썼는지 울 남편 그때 배가 터질 만큼 참 잘도 먹었다. 지금에 비하면 3~4배 정도는 더 먹었던 것 같다. 그렇게 이야기도 나누며 맛있는 음식들도 나누며... 나로선 한없이 즐겁고 감사한 시간이었는데...
문제는 내가 미처 얘기를 못해줘 우리집 식사 메뉴얼을 남편이 몰랐던 거다~
울 집은 특히나 손님이 오면 식사 후 과일과 차가 기본적으로 제공된다. 거기다 아버지께서 식사 후에 거실에서 "한 잔 하게~"하시며 발렌타인 위스키와 안주를 들이신 것이다.
남편은 배가 찢어질 정도로 식사를 했는데 식후 과일이 나오는 것을 보고 식겁했다 한다. 겨우겨우 과일을 먹었더니 다음엔 술과 안주...
극한의 경험이었단다. ㅋ~
식사 후 2층 내 방에 들어온 남편의 말...
"방이 심플하네~"
"뭐, 내가 워낙 그런 사람이에요~ ^^"
"이건 여자방이 아니라 마치 남자방 같네~"
통유리창으로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져 내리던 날이었다.마치 우리의 밝은 앞날을 비춰주는 듯...
이후 부모님들 허락하에 동거를 시작하게 되었고 2010년 8월 21일, 뒤늦게 결혼식을 올린 후 20년이 넘은 아직도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잘 살고 있답니다~♡
......
여기까지가 남편과 처음 만난 2002년 4월부터 10월까지의 이야기다. 물론 그 이후도 다 기억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컴퓨터 문제나 우리 집의 이런저런 일들을 도맡아 해결해 주면서 우리 집에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존재가 되어버린 남편이다.
에휴~ 그때처럼 남편이 잘 먹었으면... 한때 83kg까지 나갔었던 남편은 지금 187cm의 키에 몸무게는 62kg밖에 나가지 않는다... 올 한해도 10kg 찌는게 목표였지만 오히려 3~4kg이나 더 빠져 버렸다... ㅉㅉ~
꿀물~ 우리 예전 체격으로 제발 좀 돌아가요~ㅠㅠ
나도 그러고 싶다네~ 나 만나 그동안 고생많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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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주부) 무자식 소식러 주당 부부의 지중해 배경 소주 술먹방3, #sulmukb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