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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주부, 무자식 소식러 주당 부부가 사귀게 된 사연~

오늘 마누라에게서 가슴이 벅차오르게 기쁜 말을 듣게 되었다..


, 자식 식러 부가 사귀게 된 사연~



남편을 만나기 전... 난 '성선설'을 믿었던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선천적으로 선한 사람들이라 믿고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서 사람들을 진솔하게 대하였었다.


헌데 왜인지 엇갈리는 듯한 느낌...


남자들은 여자를 하나의 배출구로 밖에 안 본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난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려버렸다...


아니겠지... 아니겠지...


믿고 싶지 않았고 믿고 싶지 않던 내 과거의 어리석은 모습이 그렇게 한참을 오랫동안 방황하던 중... 아픔이 또 다가왔다.


절친 중 하나라 여겼던 친구의 배신 아닌 배신...

난 친구든 지인이든 항상 진심을 다해 만나왔다고 여겼는데 상대방은 그저 나를 이용하기 좋은, 자신의 아무말 막 던지는 쓰레기통이라 생각했었나 보다...


그 이후로 나는 아무도 믿지 않겠다고 마음의 문을 닫아걸기로 했다.


더이상은 마음을 열지도, 푸념하는 얘기들을 들어주지도, 사람을 믿지도 않을 거라고...


그 혼돈의 시절에 남편을 만나게 되었다...


남편과의 첫 만남에서는 가벼운 얘기로 시작을 했었다. 그런데 내 말을 너무나 잘 들어주었던 남편... 조금 더 속 깊은 얘기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진지한 모습으로 꾸밈없이 응해주는 남편을 보고서 난 너무나 괜찮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왔었다.


그렇게 집에 와서 다시 만나기 3일 후까지 난 남편이 계속 떠올라 혈압이 올라가는 증상으로 심장이 쿵쾅대느라 정말 죽는 줄 알았다. 술 마실 때에만 일어나는 증상인데 술은 일절 마시지 않고서도 남편에 대한 생각만으로 그렇게나 심장이 뛰어댔다~


남편과의 두 번째 만남... 어차피 나는 프랑스로의 유학을 앞두고 있어서 좋아한단 말이나 실컷 하고 가자는 생각을 했던 터라 내가 "너 좋아해!!"라고 하니 남편 왈 "나도 너 정말 좋아해!!"라고 하다니... 정말 꿈에도 몰랐었다~


어쩌면... 남편이 날 잡아주기를 바랬었나?!! 추억으로만 남기려던 남편에게서의 "가지마..."라는 말이 왜 그리 좋았던지... 나도 어쩔 수 없는 팔불출인가 보다 ㅋ~


그때 마지막으로 사람을 한 번 더 믿어보자는 생각으로 남편을 믿어보기로 했었고 평소처럼 내 모든 걸 다 쏟아부었었다. 남편이 내가 하는 걸 보더니 처음엔 오버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단다~ 근데 난 그게 보통 하는 거였는데 ㅡ.ㅡ;; 내가 좀 별난 건가??


지금은... 우리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너무나도 행복하다는 게 사실이다~ 사랑의 모습은 달라졌을 지언정 더 깊은 사랑으로 살아가고 있으니...


여러분들도 깊은 사랑으로 서로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사랑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일 테니까요 ^^ 부부 간의 사랑을 포함해 내 이웃간의 사랑도 들어간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


(지금의 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마음껏 선의를 베풀며 살고 있다~ 옆에서 든든하게 지켜주고, 아니다 싶을 땐 제지해 주는 '남편'이 있기 때문에~ ^^ )



연애 시절의 자세한 얘긴 따로 썼습니다~^^;

https://brunch.co.kr/@af414d9aef7b470/90






93화, 2023.5.16일, 오늘 마누라에게서 정말로 가슴이 벅차오르게 기쁜 말을 듣게 되었다..


", 이제 더이상 죽으려는 생각 안해요~"


......


21년전인 2002 연애 시절, 그녀가 내게 입버릇처럼 했던 얘기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떠오른다.


"나, 스물여섯 살까지만 살고 죽을거에요~"

그녀 앞에서 내색하지 않았지만 한번 들을 때마다 가슴팍에 비수가 하나씩 꽂히는 듯 아려왔다.



아주 어릴 적, 막둥이였 그녀'애교'가 많아 '귀여움'담당하면서 온 집안의 사랑을 독차지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초등학교 시절, 그녀 수년간 친구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선생놈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하는 등 충격적인 일들을 겪게 며, 사춘기를 지나면서는 부모, 형제들조차 말도 못 붙힐 정도로 마음을 닫고 심지어 방문까지 걸어 잠궜다. 수년간이나..


10대 시절, 당시 그녀의 별명은 '(세상 물정 모르고 자란) 온실 속 화초'였다는데 이 때에도 그녀는 '깨어진 유리 조각'처럼 누구든 건드리면 그 날카로운 면으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그리고 자칫 잘못하면 스스로를 베어버리는.. 그러한 위태로운 상황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다 20대가 된 그녀는 26살에 나를 만나기 전까지 인생에서 최고로 힘든 정점의 시기를 겪고 있었다.


사람들을 잘못 만나면서 그녀의 인생은 겉잡을 수 없을 만큼 파국으로 치달아 슬프고.. 아프고.. 괴롭고.. 힘든 나날을 보냈어야만 했었다.

말 못할 많은 얘기들이 더 있지만 이 정도까지만..


그녀가 프랑스로 여행가서 성폭행을 당할뻔한 얘기도 바로 이 시절에 겪었던 일이다.(마누라가 쓴 )

https://brunch.co.kr/@af414d9aef7b470/131



그러한 시절을 겪으면서 26세가 되던 2002년,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한국을 떠나 친언니가 살고 있는 프랑스로 유학을 가서 전공이었던 서양화를 공부하며 더 이상 한국에 오지도.. 더 이상 그 어떤 남자와사귀지 않을 것이라 마음을 굳게 닫아버리고 말았다.


...


그 당시 나 또한 여자에게 큰 상처를 받아 다시는 여자를 사귀지도.. 믿지도 않을 것이리 생각하며 살고 있다가 '다다닥'이라는 인터넷 타자방에서 동갑내기인 우리 두 사람은 '운명'처럼 서로를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서울 토박이, 나는 경남 진주에 살고 있었는데 공부를 위해 잠시 서울로 왔다갔다 하며 인터넷 타자방에서 만나 나름 친해지게 된 그녀에게 한번 만나자고.. 술한잔 사달라 제안을 하였다.


"술한잔 사라~?"


"그래~? 공원에서 새우깡에 소주 한병 사줄테니 와라~?"


"좋았어~ 내가 간다~!!"


그녀는 내 말을 듣고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했었당시 나는 인터넷에서 알게 된 모든 여자들과 1:1로 만나 항상 술은 여자들에게 잘도 얻어 먹었던 '카사노바 컨셉'의 시절이었다.


그렇게 2002년 4월 21일, 연신내 어느 술집에서 우리는 처음 만나자마자 첫눈에 반했고.. 말과 생각과 마음이 서로 너무나도  맞아 떨어졌다.


서로가 최악이라고 생각했던 그 시절, 서로를 만나게 되면서 '정말 운명적인 만남.. 천생연분의 인연이란게 있을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녀 또한 나와의 첫만남 후 술도 마시지 않았는데 3일 내내 심장이 쿵쾅거려 죽는 줄 알았다고 했다.


그리고 3일 뒤인 2002년 4월 24일, (지금은 역사속으로 사라져버린) '피맛골'에서 두번째 만남을 가졌고 그녀가 농담반, 진담반처럼 내게 말했다.


"나 너 좋아해.... 좋아해.... 좋아해...."


"..나도 너 좋아해.."


" 우리 아빠도 좋아하고~ 엄마도 좋아하고..."


"나 진짜 너 좋아한다니깐!"


...순간 정적이 흘렀고 그녀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나.. 곧 프랑스로 유학 가.. 한국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너 만나서 정말 원없이 좋아한다고 얘기하고 싶었어.."


..또 한번의 정적이 흘렀고 이번엔 내가 말을 꺼냈다..


"가지마.."


"......"



그 뒤로도 계속 얘기를 나누다가 어느덧 막차 시간이 되어 버스 정류장에 가봤지만 이미 막차는 떠나버린 후였고, 택시타고 집에 갈까.. 이왕 이렇게 된거 나랑 더 있을까.. 갈팡질팡하던 그녀가 내게 말했다.


"안해보고 후회하는 것보단 해보고 후회하는게 낫겠다!"


그녀가 집에 전화해서 자초지종을 설명드렸고 우리는 당시 내가 거주하고 있던 신림동으로 가서 24시간 영업을 하는 술집을 찾아가 서로 그동안 받았던 상처에 대해 밤새도록 많은 대화를 주고 받았다.


보통의 남자라면 감히 감당하기 어렵고 힘든 말들까지 우린 모든 것에 대해 서슴없이 이야기를 나누며 그 날을 계기로 우리는 사귀게 되었다.


그 때 나는 그녀에게 한가지 약속을 하였다.


"서로 과거의 연애에서 다른 이성에게 상처를 많이 받았지만 나는 다른 남자와는 다를 것이다. 하지만 절대 나를 믿어 달라는 말 하지 않고 오로지 행동으로만 보여줄 것이다."


20년 넘게 믿으란 말 한마디 않고 약속을 지키며 살고 있는데 이젠 마누라가 해도 된다지만 아마 죽을 때까지 내 입 밖으로 나오진 못할 것 같은 말이다..


https://brunch.co.kr/@af414d9aef7b470/43



...몇년 뒤...


그러나 몇년을 사귀면서도.. 거의 함께 살고 있었음에도 수차례 자해를 하는 등 그녀의 '부정적인 마인드' 쉽사리 바뀌지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 몇년이 더 걸리더라도 '반드시 긍정적으로 바꾸어 놓겠다!' 내 의지와 노력은 꺾이지 않았고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노력을 알아봐 주셨는지 그녀도 조금씩 어렸을 적 '애교'도 되찾아가며 '긍정적인 삶과 마인드'로 차츰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마누라 '애교' 찾아주려고 내가 먼저 애교 시전을.. 그리고 한때 우울증에, 귀신에도 씌여 '♡♡병원' 입원까지.. 이런 마누라를 위해 나는 항상 조금이라도 더 사랑하며 행복하게 해주고, 대화를 많이 나누며 재밌게 해주려 벼라별 짓들을 다 하고 있다.


https://brunch.co.kr/@af414d9aef7b470/429



...21년이 지나 어느덧 2023.5.16일...


그렇게 '부정'과 '긍정' 사이를 끊임없이 오고가다 21년이 지난 지금, 마누라에게서 정말로 가슴이 벅차오르게 기쁜 한마디를 듣게 되었고.. 이내 조용히 눈물이  두 뺨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 이제 더이상 죽으려는 생각 안요~ 그러니까 더는 걱정하지 말아요~ 그리고.. 나는 이제 '나'를 사랑해요~"



누군가 말했다. 아픔의 시간보다 배 이상의 시간이 흘러야 비로소 그 아픔을 씻어낼 수가 있다고..


지금까지도 마누라의 양쪽 손목에는 아픈 세월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지만 우리의 사랑으로 '그녀의 아픔'들이 온전히 잘 아물어졌기를..


..넘쳐 흐르는 눈물들닦아내..


..울음 섞인 목소리로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흑흑).............."






마음의 상처.. 이건 뭐, '후시딘' 발라줄 수도 없고!

상처엔 '후시딘'인데!  (마눌, 그동안 욕봤다!~)

부채표 '후시딘' 협찬.. 미리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긴 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글은 재밌게 써야 하는데..ㅠㅠ


뽀나스 트랙~

() 자식 식러 부의 뚝배기 불고기에 술먹방, 브런치 작가님들을 위하여! 짠~

한달 누적 22,000뷰! 오또케~ 감사합니다~^0^♡

https://youtu.be/DIjsoFR6Jps?si=KBagBo_thTvjJU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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