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방영한 슬기로운 의사생활 1, 2는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현실에선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따뜻한 의사’라는 판타지에 많은 이들이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넘치는 환자들, 고된 병원 생활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이익이 아닌 오롯이 ‘환자’를 위해 마음을 쓰는 의사.
그런 의사는.. 솔직히 찾기 어렵다.
아플수록 더 서러운 게 사람 마음인데,
병원에 갔다가 몸보다 마음에 더 큰 상처를 안고 나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환자 입장에서 슬의생 속 판타지 같은 의사를 만나본 적은 없다.
특히 바쁜 병원에서 한 사람, 한 사람과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들어주며 친절히 설명까지 해주는 의사는…
없다. … 가 아니고. 있다. 어디에?
내가 근무하는 병원에.
나는 직업상 수많은 의사들을 만나왔다.
그중 우리 원장님은, 단연 ‘처음 보는 스타일’이다.
그는 정말 ‘환자를 위한 삶’을 살고 계신다.
작은 개인 병원임에도, 1년 중 362일 문을 열고 (신정, 구정, 추석—단 3일 휴무),
진료 시간도 예사롭지 않다,
월·수·금은 아침 8시부터 저녁 9시까지, 점심시간도 없이 진료를 본다.
왜냐하면.. “환자들이 오니까요.”
이곳은 경기도에 있지만, 도심의 분주함보다는 시골의 정취가 묻어나는 동네다.
그래서일까, 병원을 찾는 분들 대부분이 60대 이상, 70~80대 어르신들이다.
그분들이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오면, 원장님은 항상 자리에서 일어나 맞이한다.
“아이고~ 우리 어머니 오셨네요~”,
“아버님, 오래 기다리셨죠? 죄송해요~”
경상도 특유의 구수한 말투가 그 안에 담긴 정을 더 진하게 전한다.
원장님은 환자의 이름, 병력, 지난 진료 내용을 마치 데이터베이스처럼 기억한다.
그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환자 한 분 한 분 온 마음 다해 진료를 보신다.
그의 따뜻한 관심에, 어르신들은 마치 인정이라도 받은 듯 마음을 활짝 열고, 몸과 마음의 온갖 아픈 이야기를 쏟아낸다. 때로는 손을 잡아주고, 눈물도 닦아주고, 등을 토닥여주기도 하고..
가끔은 이곳이 내과인지 심리 상담소인지 헷갈릴 정도다.
진료실에서 오가는 대화는 지극히 사적이고, 따뜻하다.
그래서일까.. 병원은 늘 어르신들로 붐빈다.
환자가 몰리는 날엔 대기 환자가 40명을 넘는다.
기다리는 시간은 기본 2시간.
오랜 기다림에 어르신들은 짜증과 신경질을 한껏 온몸으로 표현하지만..
원장님의 햇살 같은 한마디 인사에 눈 녹듯 사라진다.
진료 시작은 오전 8시, 하지만 가끔 더 이를 때도 있다.
“원장님~ 나 출근해야 돼~ 좀 일찍 검사 좀 해주면 안 되나??”
“아버님~ 해드려야죠~ 몇 시쯤 괜찮으세요?”
“아침 6시쯤 하면 좋을 것 같은데...”
그렇게 우리 병원 문은 새벽에 열리기도 한다.
환자 맞춤형 병원. 우리 병원이 그렇다.
이 동네에는 형편이 어려운 어르신들도 많다.
비급여 검사는 꿈도 못 꾸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땐 원장님이 조용히 말한다.
“이건 그냥 해드릴게요. 너무 걱정 마세요.”
검사비 또한 전국에서 가장 저렴한 수준일지도 모른다.
돈을 벌기 위해 병원을 운영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사람을 돌보기 위해 병원을 지키는 분.
나는 6년 전, 일을 하러 이 병원에 왔을 때, 봄햇살 같은 사람을 만났다.
‘히포크라테스 선서’ 속 이상이 현실이 되는 이곳,
이곳에 판타지 의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