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떠난 자리의 흔적

[#REF!]참조 오류를 마주하며

by 초마실

이 대리가 남기고 간 시한폭탄

"화요일 회의 자료, 원래 이 대리가 담당했었지?

업무 인수받은 사람이 누구야?"

부장님의 목소리에 움찔하며 대답합니다.

"네, 부장님. 제가 받았습니다."

"그래, 사장님이 매번 챙기시는 자료니까 데이터 누락 없게 김 대리가 신경 써서 준비해 줘."


자리에 돌아와 이 대리가 남긴 파일을 여는 순간, 비명이 터져 나옵니다.


"오 마이 갓! #REF!"


화면 가득 메운 참조 오류의 향연.

도대체 이 수식들은 어디에 숨겨진 기초 자료를 읽어오고 있었던 걸까요?

연결된 원본 파일은 이미 이 대리의 PC와 함께 포맷되어 버린 모양입니다.

엑셀 도움말을 뒤져봐도 차가운 기술적 설명뿐, 당장 오늘 중으로 보고를 마주해야 하는 내게는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원망 섞인 한숨이 새어 나옵니다. '이 대리, 정말 이렇게 가버리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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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자가 감내해야 할 ‘연결 끊김’

뜻한 바 있어 과감히 '닫기(Close)' 버튼을 누르고 떠난 동료의 짐은, 결국 격자무늬 '셀(Cell)'에 남겨진 자의 몫이 됩니다. 떠난 이에 대한 야속함, 그리고 내가 차마 실행하지 못한 일을 저지른 그에 대한 미묘한 부러움으로 머릿속은 복잡해집니다.

사실 떠난 동료에게 완벽한 배려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는 이미 자신의 새로운 길을 향해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을 테니까요. 결국 [#REF!]라는 오류 메시지를 온전히 받아내고, 끊어진 수식의 고리를 다시 잇는 것은 오롯이 남겨진 자가 감내해야 할 고독한 작업입니다.




상대 참조가 아닌 절대 참조($)의 삶

가슴 속에 사표 한 장 품어보지 않은 직장인이 어디 있을까요.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엑셀 파일을 닫기 전까지 모든 데이터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계산되듯, 회사에 머무는 이 시간 또한 내 커리어와 성장을 위한 치열한 ‘연산의 과정’이라는 점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견디는 시간이 아니라, 나라는 함수를 완성해가는 과정입니다.

퇴사한 동료가 남긴 업무는 내 입장에서 보면 '상대 참조'와 같습니다. 주변 환경에 따라 위치가 변하고 값이 흔들리죠. 하지만 그 소란 속에서도 나만은 나만의 격자무늬를 묵묵히 채워나가야 합니다. 수식을 완성하듯 한 칸 한 칸 공들여 데이터를 입력해야 합니다.




나 자신에게 $ 기호를 붙여야 하는 이유

주변 동료의 퇴사나 누군가의 승진 같은 외부의 변화에 내 행복의 기준값이 휘둘리지 않도록, 이제 나 자신에게 '절대 참조($)' 기호를 붙여야 할 때입니다.

동료의 부재가 내 삶의 오류([#REF!])가 되지 않도록, 내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와 목적을 흔들리지 않는 고정값으로 두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타인의 로그아웃에 내 시스템이 다운될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언젠가 나 역시 이 파일을 닫고 나가는 날, 내 손에 무엇이 들려 있느냐는 것입니다. 타인이 남긴 오류를 수정하며 보낸 이 시간조차, 결국 나중에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소중한 '마스터 파일'의 일부가 될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오늘 당신의 셀에 입력한 정직한 데이터는 결코 당신을 배신하지 않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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