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살이
□ = 엘리베이터
맞다. 나는 엘리베이터가 싫어 주택으로 이사했다.
아파트에 살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엘리베이터를 이용한다.
기본적으로 엘리베이터라는 공간은 폐쇄적이지만, 공공장소의 영역이다.
내가 엘리베이터에서 느끼는 감정은 다양하다.
그리고 대부분 부정적인 감정이기도 하다.
엘리베이터에 타면 희미한 불안감과 위축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 공간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약간의 무력감도 느낀다.
혹시라도 타인과 함께 탑승을 하게 되면 본능적인 경계심이 발동된다.
폐쇄된 공간에서 내가 알지 못하는 타인과 가장 가까운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행위가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어설프게 아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숨 막히는 어색함을 느끼기도 한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타인과의 적정거리 유지가 불가능해진다.
그렇다면 타인과의 적정거리는 얼마일까?
인류학자인 에드워드 홀은 타인과의 거리를 4단계로 나누었다.
첫 번째가 45cm 이내의 '밀접 거리'다. 이 정도 거리에서 만남은 가족이나 연인 정도로 밀접한 거리이다.
두 번째는 45cm~1.2m 이내의 '개인적 거리'다. 지인이나 동료 정도의 친밀함을 전제하는 사적인 거리이다.
세 번째는 1.2m~3.6m 이내의 ‘사회적 거리’다. 처음 만나 인사하는 사람과 유지하는 사회적 거리이다.
네 번째는 3.6m~9m 이내의 '공적인 거리'다. 연설가와 청중, 무대와 관객 사이의 거리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개개인의 성향이나 나라 문화 간의 차이로도 이 거리는 조금씩 달라질 수 있지만,
왜 내가 엘리베이터에 부정적 감정을 느끼는지는에 대한 변명거리는 된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이런 감정들은 그냥 잠깐 참으면 되는 것이었는데,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나는 이런 것들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때 당시 내 아이는 타인에 대해 예민하고 민감도가 조금 높은 성향을 가진 아이였다.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혀 모르는 타인이다.
그리고 몇몇은 간혹 얼굴만 마주친, 그래서 서로를 잘 아는 사이는 아닌,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사람들이다.
아이는 엘리베이터라는 공간에서 타인을 어떻게 느꼈을까.
나랑 둘이 타면 옹알옹알 떠들고 웃다가도 다른 사람이 타면 순식간에 얼음이 되었다.
아이에게도 엘리베이터는 긴장도가 높은 공간이었던 것이다.
아이가 집 대문을 나서서 처음 타인과 관계를 맺는 공간이 엘리베이터라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타인을 대하는 시선의 이면에 잠재적 불안감과 경계심이 스며들지 않기를 원했다.
가능하다면 타인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마음을 가지길 바랐다.
그러다가 문득 엘리베이터가 없는 곳에서 살아보면 어떨까 싶었다.
그래서 파주에 덜컥 땅을 계약했다.
그리고 직접 설계를 하다시피 집을 지었는데, 그 과정에서 다시 한번 알게 된 사실은
나라는 사람은, 공간이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타인과의 거리 (물리적 거리, 심리적 거리 모두)에 예민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집을 지으면서 나를 더 잘 알게 된 셈이다.
그래서 지금, 나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주택에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