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습작
'희망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진 헬렌 켈러의 한 명언은 이렇게 시작한다. "하나의 행복의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 오늘의 불행이 내일의 행복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희망의 끈을 놓지 말고 부단히 노력하라는 뜻이다. 신빙성 여부는 제쳐놓고, 최소한 믿어서 손해 볼 건 없을 것 같아 한동안 그렇게 실천해왔다. 그런데 어쩌다 이 힐링 서적 단골멘트에 딴죽을 걸게 된 걸까.
꿈. 모든 건 새벽잠을 설치게 만든 한 편의 꿈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것도 짝사랑해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바라거나 경험해보았을, '짝사랑 상대와의 연애'에 관한 꿈. 아쉽게도 연애를 글로 배워 뇌가 애정 행각을 구현해내는 데 한계를 느꼈는지, 내용 자체는 진부하기 짝이 없었다.
연인들에게는 일상적이다 못해 소소할 순간들, 이를테면 ‘손잡고 밤거리 걷기’나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하기’ 등을 소재로 하는 단막극들이 이어졌다. 나에겐 그것들조차 엄두도 못 낼 일들이어서, 이 시간이 영원하길 간절히 바랐다. 뭐, 꿈은 이룰 수 없어서 꿈이라고, 결국은 깨고 말았지만.
아쉬움에 베개를 수차례 후리고 멍하니 퍼질러 앉고는 조각난 기억들을 애타게 긁어모았다. 그러나 남은 건 방안을 가득 메울 만큼의 한숨과 떨어지지 않는 여운, 그리고 머릿속을 울리는 그녀의 마지막 말뿐이었다.
왜 울어. 우리 더는 못 볼 것도 아니잖아.
계속 좋은 친구로 지내고 싶다는 말에 응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저 하나씩 쌓아 올린 마음을 도로 하나씩 내려놓으면 되는, 그런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짝사랑이란 건 쌓을 때와 내릴 때의 무게가 달라, 하나하나 내릴 때마다 극심한 신경통에 시달려야 했다. 병마는 항상 외로움과 함께였는데, 마음을 접는 건 사랑했던 쪽만의 역할이기 때문이라고 잠들지 못하는 밤들을 달랬다.
재활은 계속되었고, 그동안 계절이 몇 차례 바뀌었다. 그녀 생각이 매일에서 자주, 가끔에서 어쩌다 한 번으로 점점 옅어져 갔다. 그러다 어느새 모든 게 끝나있었다. 설레던 가슴도, 지독했던 열병도,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그냥 그렇게. 우린 예전 같지 않았고, 절대 예전 같을 수 없었다. 이기적인 결말이었다.
그런데 인제 와서 왜……. 뭐가 아쉬워서…….
전제 조건은 만족했을 터였다. 문은 확실하게 잠갔다. 틀림없었다. 그녀를 상기시키는 건 전부 없앴다. 다른 문이 열려야, 혹은 열릴 기미라도 보여야 했다. 그런데 이따위 꿈이라니. 한시라도 빨리 설명이 필요했다. 과학적이든 비과학적이든 상관없었다. 만약 아직 미련이 남았다거나, 최악에는 아직도 좋아한다고 생각하게 된다면, 간신히 디디고 있는 세계가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며칠간 고민을 거듭한 결과, 간신히 한 가지 답에 이르렀다. 그 꿈은 만일, 즉 일어났을지도 모르는 일들에 대한 간접적인 체험이었으며, 다른 문을 찾아 떠날 준비가 되었음을 알리는 ‘짝사랑의 마지막 단계’였다.
만일萬一
: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뜻밖의 경우.
: ‘그러할 리는 없지만’ 혹은 ‘어쩌다가 우연히’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일.
만일은 우리가 열지 않았거나 열지 못한 문들의 총체다. 인생은 수많은 문을 통과하는 과정이다. 행위 자체만 놓고 보면 간단하기 그지없으나 대다수에겐 호락호락하지 않다. 가는 길마다 문이 하나씩만 있으면 열기 편할 텐데, 순간마다 눈앞에 나타나는 건 만리장성처럼 늘어선 문의 장벽이다. ‘점심 메뉴’ 같은 일상적인 문제들은 그나마 낫다. 인생의 큰 줄기를 결정하는 ‘대학 학과’나 ‘직장’, ‘결혼’ 같은 문제들은 우리를 고뇌하게 한다. 고뇌 끝에 힘겹게 문을 하나 선택해 들어가더라도, 나머지 문들 뒤의 풍경에 대한 궁금증은 끊이질 않는다.
만일에 대한 물음은 그런 궁금증을 상상을 통해 실체화하는 작업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스스로 ‘만일 ~했다면 어떨까’하는 질문들을 던짐으로써, 닫힌 문 너머의 광경을 멋대로 엿본다. 엿보기가 생각보다 별로였다면 안심하고 지금에 집중할 수 있다. 그렇지만 엿본 세상을 동경하게 된 사람에겐 지금은 한없이 불만족스럽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비록 꿈속이었지만, 나는 여태껏 바라왔던 모든 것을 경험했다. 그녀와의 연애는 생각보다 감미롭고, 생각보다 포근하고, 또 생각보다 애틋했다. 꼭 잡은 손이 하얗고 부드러워서, 때마침 영화처럼 거리 위로 눈꽃이 흩날려서, 내 연인이 내가 바랄 수 없는 사람이라서 한없이 기뻤고, 또 한없이 애달팠다. 나는 그날 밤 분명, 살짝 열려있던 문을 활짝 열어젖힌 셈이었다. 그건 내 무의식이 내게 주는 선물이었다. 아파하고 괴로워해야 했던 지난날에 대하여, 간접적으로나마 보상받을 수 있도록. 문을 굳게 잠그고, 망설임 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그날 이후로 그녀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아침에 일어날 때 섭섭해 하면서도 후유 하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녀는 여전히 내 마음 한편에 자리하고 있다. 아직은 그녀를 들어낼 힘도, 각오도 없다. 그러니 가끔, 아주 가끔 마음이 아릴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건, 함께한 순간들이 좋은 추억으로 자랄 수 있게, 물주고 햇볕 쬐어주며 잘 가꾸는 일일 테다.
시간에는 경계가 없다. 과거, 현재와 미래가 구체적인 시점으로 기능하지만, 이들 중 과거와 미래는 개념으로만 존재하고 실존하지 않는다. 현실에는 그저 세계를 이루는 수많은 요소가 소멸과 생성을 반복하며 자아내는 ‘현재’만이 꿈틀거리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끊임없이 뒤를 돌아본다. 그리고 후회한다. 다시는 돌이킬 수 없음에도, 아니, 어쩌면 돌이킬 수 없으므로.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헬렌 켈러의 명언에는 뒷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가끔 우리는 그 닫힌 문만 너무 오래 보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열려 있는 다른 문을 보지 못한다." 이제 문은 닫아두자. 그리고 한 발만 앞으로 내딛자. 새로운 세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20대 초반, 열병에 시달리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