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말장난
당연히, 엄마는 요리가 서툴렀다. '엄마의 손맛'이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당연히'라는 수식어가 어색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우리 집에서 '엄마는 요리가 서툴다'는 명제는 언제나 참이었다. 노곤한 몸을 일으켜 새벽같이 출근해, 밤늦게 집에 돌아와 침대에 쓰러지는 반복된 일상. 촘촘하게 쌓이는 피로 사이사이에 '요리공부'가 비집고 들어갈 틈 같은 건 없었다.
그러나 당연하다는 듯이, 식탁에는 늘 아침이 차려져 있었다. 나와 내 동생이 밥을 챙겨먹지 못한 날은 손에 꼽는다. 엄마가 회식이나 잔업으로 그로기 상태가 되었을 때를 제외하면, 밥과 국, 그리고 적어도 3가지 이상의 반찬이 아침마다 아버지와 우리 형제를 반겼다. 다만, 엄마가 저녁까지 차릴 수는 없었기 때문에, 카레나 짜장처럼 오래 놔둬도 지장이 없는 음식들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국 종류가 많았다. 된장찌개, 김칫국, 미역국, 그리고 소고깃국. 소고깃국은 엄마의 자랑이었다. 새빨갛고 얼큰한 경상도식 소고기 무국을 한솥 가득 끓여놓으면, 아무리 열심히 먹어도 다 비우려면 일주일 가까이 걸렸다. 소고깃국을 좋아하는 동생은 차치하더라도, 나는 좋든 싫든 굶을 수는 없었기에 열심히 먹었다.
고등학교 때의 어느 겨울날에도 가스레인지 위에 소고깃국이 놓여있었다. 그날따라 맛있는게 먹고 싶었지만, 참고 가스레인지 불을 켰다. 양이 상당했기 때문에 끓을 때까지는 시간이 제법 걸릴 것 같아, 잠깐 눈을 붙였다. '잠깐'이라 말하기엔 너무도 많이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깨달은 건, 집안을 가득 메운 연기에 콜록거리며 잠에서 깼을 때였다. 부엌으로 부리나케 달려가 불을 껐지만, 이미 솥은 검게 타버렸고, 국물은 다 졸아버리고 없었다. 수습이라도 했어야 했는데, 비상금을 주머니에 욱여넣고 참담한 현장을 뒤로 한 채 문밖을 나섰다. 공부하러 가야 하니까, 어쩔 수 없어.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을 중얼거리는 내 머리 위로 말없이 눈이 내렸다.
자습을 마치고 교문을 나설 무렵, 밤늦은 시간이었음에도 세상은 새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전례없는 폭설이었다. 혼날까봐 마음을 졸이며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짙은 발자국이 눈밭에 패였다. 삑, 삑, 삑,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갔더니 집에는 불이 꺼져 있었다. 조용히 부엌으로 가서 상태를 살펴보았더니, 깨끗하게 뒷정리가 되어 있었다. 미안함에 안방 문을 살짝 열어 자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엿보았다. 고개를 안쪽으로 돌린 채, 몸을 말고 작게 숨을 쉬며 자고 있었다. 건더기밖에 남지 않은 소고깃국을 솥째로 싱크대에 버리며,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예년보다 이르게 첫눈 소식이 들린다. 곧 내가 사는 마을에도 눈이 내리면, 그날의 그을음과 죄책감으로 패여버린 눈밭을 다시금 떠올리겠지.
먹여보지도 못한 국을 쏟아보내야 했기에,
그날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던 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