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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공작 Mar 13. 2022

#비가 내린다, 비가 온다

아무튼, 말장난

남자애들이 비웃을까 봐 보여주지 않았던 탓에, S는 고등학교 3년 동안 내 작품의 유일한 독자였다. 심혈을 기울인 문장들을 그녀에게 보내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답장을 기다리는 것이 당시의 소소한 재미였다. 언제나 정성껏 감상평을 들려주는 그녀가 굉장히 고마웠다.



대입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던 고등학교 3학년 시절, 공부나 똑바로 하라는 부모님의 반대에도 쓰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기나긴 언쟁 끝에 한 가지 룰을 정했는데, 바로 '비 내리는 날에만 쓰는 것'이었다. 영감이 떠올랐을 때 바로 종이에 옮겨야 하는 것을, 상심이 컸다.



부모님과 싸웠다는 얘기, 우천 시에만 작품을 쓸 수 있게 되었다는 얘기를 S에게 전했다.



"그럼, 다음번 비오는 날에 읽을 수 있겠네."



언제나처럼 친절하게 답해줘 고맙다고 답장하려는 찰나,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메시지가 한 통 더 도착했다.



"'비가 내린다'보다 '비가 온다'라는 표현이 더 좋아. 그렇게 말하는 편이 비 오는 날을 더 기다려지게 만들거든."




창을 톡, 톡 두드리는 빗줄기에 알람 시간보다 빨리 눈이 떠졌다. 창밖을 내다보니 내리는 것은 가랑비, 감상에 젖기에 딱 좋은 양이었다. 숙취로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컴퓨터 앞에 앉아 S와의 추억을 떠올린다. 그리고 비가 그치기 전에, 새롭게 글을 쓰기 시작한다.



비가 내린다.

아니, 비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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