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는 젊은 사람들 이야기 - 사과 이야기.02
"나"의 이야기가 아니다.
내 주위 1년에 한번씩 이직하는 친구도 있고, 3개월을 못버티고 퇴사하는 친구들이 많다.
나조차도 그 친구들은 왜 그렇게 퇴사를, 이직을 자주할까 궁금했고, 그 친구들의 관점에서 얘기를 써보고 싶었다.
"요즘 애들은 왜 이렇게 이직을 자주 해?" 궁금한 분들이 "왜"를 이해하게될 수 있기를 바란다.
두번째 주인공은 사과다. 사과는 내 고등학교 친구의 친구인데, 마케팅 일을 하는 친구를 소개해달라는 부탁으로 나를 소개해줬고 좋은 인연이 되었다. 1년 정도 회사를 다니다가 버티지 못해 퇴사 후 지금은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다. 왜 직무 변경까지 하면서 이직하게 됐을까?
한동안 사과가 슬럼프에 빠진 적이 있는데, 사실 슬럼프보다는, 회사와 일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지난번에 적었던 가스라이팅하던 상사와 동일 인물이다. 한동안 사과가 이 사람과 일할 때 왜 힘들었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를 하나 알게 되었다.
이 글을 읽는 다른 분들도, 혹시 이 이유 때문에 스스로가 힘들지는 않았나 생각해봐도 좋을 것 같다. 이런 상사는 참 많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우선 이 팀장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영업 출신의 5년 차 마케팅 팀장.
팀장은 영업에서 일하다가 회사가 커가며 마케팅을 담당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얘기에 마케터로 직무를 바꿨다고 한다. 그래서 마케팅을 시작한 지는 5년 정도지만, 제대로 된 상사 없이 혼자 주먹구구식으로 일하다 보니 모르는 부분도 많았고, 일반적인 마케팅팀과 비교했을 때 답답한 점도 많았다.
마케팅적으로 업무를 진행할 때 그 업무를 모르는 팀장을 설득해야 하는 과정이 추가됐다. 예를 들어, 기존의 블로그와 페이스북에서 태그를 일체 달지 않았다. 왜 안 달았는지 물어보니 그 태그를 왜 달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그 결과 제품 이름을 검색해도 블로그 글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후 내가 태그를 달았으면 좋겠다고 얘기하자 그 태그를 달아야 하는 이유에 대한 보고서를 요청했다. 블로그에 태그를 넣는 이유에 대한 보고서라니... 이 무슨 황당하면서 쓸데없는 일인지. 참고로 이 블로그는 회사 계정의 네이버 블로그이다. 기술 블로그, 브런치 스토리 이런 것도 아니고 네이버 블로그였다.
광고도, 콘텐츠도 그 무엇도 제대로 모르지만 그저 이 회사에 오래 근무했고, 이 회사의 히스토리를 안다는 이유로, 이 회사에서 가장 오래 마케팅을 했다는 이유로 팀장이 되어 어떤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 결과 팀원들은 팀장을 교육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했다.
모르는 내용에 피드백하기란 힘들다.
사과는 콘텐츠 마케터로 블로그에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있었다. 약 2년의 경력과 개인적으로 6년째 운영하는 블로그로 인해 지금껏 작성한 블로그의 수는 모두 1천 건은 넘을 거라 자신한다. 그만큼 사과는 글을 쓰는 것에 자신이 있었고, 혼자서 스토리라인을 만들어 강조할 부분을 드러낼 줄 안다고 생각했다. 전회사에서는 블로그 글을 잘 쓴다며, 전적으로 혼자서 블로그를 담당했고 글을 쓰면 스스로 다시 확인하여 바로 업로드했다.
그런데 이직한 회사에서 사과의 업무 프로세스에서 변화가 생겼다. 사과가 작성한 글을 팀장의 컨펌 후에 업로드하는 것이다. 처음엔 사과가 기술적으로 회사의 제품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 컨펌을 받아도 좋다고 생각하여 작성을 시작했는데 지금에 와서는 가장 큰 스트레스 중 한 부분이 되었다.
사과가 스토리라인을 잡아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고 글을 쓴 뒤 팀장에게 컴펌을 요청하면 항상 이상한 피드백이 왔다. 보통 상사의 피드백이라고 하면 더 나은 방향으로의 가이드를 제시하고, 어떤 식으로 진행해보라는 말이 있어햐나는데 사과가 받는 피드백은 그렇지 않았다. 특히나 블로그 글은 '1 아니면 2'가 아니라, 방향이 무궁무진해서 가이드가 더욱 중요한 것인데, 팀장의 피드백은 항상 "이건 아니다."였다.
사과가 작성한 글을 보고 이건 맞지 않는다는 피드백을 주고 다시 쓰라고 할 뿐, 어떻게 다시 쓰면 좋을지, 어떤 부분에 집중해서 수정해야 할지에 대한 가이드가 전혀 없었다. 그저 이건 아니라는 말뿐. 처음엔 아니라는 말에 무작정 다시 쓰기를 반복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팀장에게 "그럼 어떻게 쓰면 좋을까요? 팀장님이라면 어떻게 쓰겠어요?"라고 물은 적이 있다. 그때 들은 대답은 "일단 이건 아닌 것 같고요."였다. 그리고 대안은 없었다. 이게 아닌 이유만 줄줄이 늘어놓을 뿐이었다.
그때 알게 됐다고 한다. 아 얘도 모르는구나. 본인이 모르는 것에 대한 피드백을 하다 보니 대안을 줄 수 없었던 것이다.
단순히 블로그 글만이 아니라 이 외 기획안이든 보고서든 다 그랬다. 본인이 모르니 이건 아닌 것 같다는 피드백만 있을 뿐 가이드는 받을 수 없었고 그 아래서 일하다 보니 사과 스스로만 무능력해졌다는 폐배감에 휩싸였다고 한다.
나만 힘든 게 아닙니다. 직장생활은 누구에게나 힘듭니다.
직장생활에 힘들어하는 모든 사람들이 "나만 이상한 게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쓰는 글입니다.
나도, 여러분도 모두 위로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