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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 라헬 Aug 03. 2023

키웨스트와 오랜지빛 갯벌

(라헬의 뉴욕 이야기 4)

 


   이번 여름은 매우 더웠다. 유난스런 폭염 속에서 언제 찬바람이 부나 싶었으니까. 허나 입추와 처서가 지나고나니 어김없이 가을바람이 푸른 하늘과 함께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 인생에서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커다란 의미를 부여해준 올 여름은 특별한 의미로 영원히 기억될 수밖에 없을 테다. 두 개의 국가자격증취득을 위한 시간과 노력. 늦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젊은이 못지않게 향학열을 불태웠던 그 시간들. 소중하고 귀한 모국에서의 여름을 보내며 ‘이래서 인생은 살아볼만한 가치가 있나보다’라며 함박웃음을 얼굴가득 피운다. 가을 이면 떠오르는 낱말들, 추억, 외로움, 낙엽등 많은 단어들이 심장을 스치며 그리움이라는 이름으로 가슴에 소용돌이친다. 살기에 급급했던지 깜박 잊었던 낱말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날이다. 밤새 큰소리로 울부짖던 어젯밤 비의 울림 때문인지 이상하게도 오늘은 더없이 가슴이 허(虛)하다. 지금의 내 모양새를 만든 많은 낱말들을 떠올리다보니 석양빛에 물들어 반짝이는 키웨스트의 갯벌이 문득 떠올려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갑자기 ‘한번은 시처럼 살아야한다.’라는 책이 기억 되는 것을 보니 분명 가을이 오고 있는 듯. 가을이면 버릇처럼 늘 아프던 내 가슴을 애써 쓰다듬는다. 그리고는 이십 오년 전 이맘때를 소환한다. 그 시간만큼은 내 인생에서 시처럼 살았던 때라고 감히 말하고 싶은 소중한 추억이기에.  호텔경영학을 전공한 작은 아들이 후로리다에서 석사과정을 끝낸 후의 일이다. 마이애미의‘만다린’이라는 호텔지배인으로 스카웃된 기념으로 내게 큰 선물을 했다. 마이애미 일주와 스위트룸에서 호캉스를 즐기는 플랜이었다. 4박5일의 여행을 아들이 내게 선물했으니까. 나는 그가 시키는 대로 먹고 자고 랜트카를 몰고 드라이브하는, 처음으로 나만의 시간을 즐겼다. 가는 곳곳마다 그의 배려는 눈물겨웠다. 일하는 것만이 전부인줄 알고 있는 외눈박이 엄마를 위한 꼼꼼한 배려에 순간순간의 감격을 눈물로 표현 할 수밖에.  여행 중 당황하지 안 토록 곳곳마다 배려한 그의 마음 씀씀이는 내 인생에서 가장 가슴을 뿌듯하게 했던 기억 중에 하나다. 호텔 안에서는 물론 호텔 밖에서의 식사와 공연 등의 스케즐은 나를 더없이 행복한 엄마로, 여자로 만들어주었던 시간들이었으니까. 아들의 부탁으로, 동료들은 가는 곳 마다 'Hi! Rachel,또는 Hi! Tim‘s mom'하며 나를 반겨주었고 혼자 여행하는  내게 최고의 친절을 베풀어주었다. 꽃다발과 함께.


   여행중 가장 멋있는 기억은 꿈처럼 누렸던 마이애미에서 키웨스트까지 드라이브였다.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속도로인 ‘오버시즈 하이웨이를 타고 키웨스트까지 가는 드라이브코스다. 코스중간에는 그 유명한 세븐마일 브리지도 통과 하게 되는데 4시간이면 족할 길을 무려 8시간 만에 도착해야만 할 정도로 감동과 행복의 길이였다.  키웨스트의 숙소에 도착하자 많은 이들이 나의 무사도착을 박수로 맞아준 것이 부끄러웠지만 어쩌랴.  아들도, 호텔 직원도 긴장시켰던 시간이었지만 나는 더없이 행복했던 8시간이었으니까.  마이애미에서 키웨스트까진 정말 많은 섬들이 있고 모두 47개의 다리로 이어져있었다. 이차선 도로이기에 추월도 과속도 용납지 못하는 길이다. 나처럼 초보는 정해진 길 한쪽에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든지 구경을 할 수밖에 별 도리가 없는 길 이였으니.  다리와 같은 높이인 듯한 수면(水面), 그래서 왠지, 차가 바다에 빠질 것 같은 느낌은 공포이기도 했다.

   가도 가도 끝이 없이 이어진 하얀 다리와 양편의 끝없는 푸른바다. 갈매기, 철새의 군단. 그리고 바닷바람에 너울대는 갯벌의 이름 모를 수초들.  눈앞에는 감히 인간이 거부할 수 없는 자연이 펼쳐졌고 나도 모르게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부를 수밖에 없는 지경이었다.   때마침 일몰의 시간이었고 바다와 맛 물린 갯벌엔 타는 듯, 강열한  오랜지빛 석양의 그림자가 길게 누워있는 광경은 어떻게 글로 표현 할 수 있을까. 그 광경은 조물주가 아니면 감히 펼칠 수 없는 천지창조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 온 몸에 전율을 느끼며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펑펑 눈물을 뿌렸던 그때. 한번은 시처럼 살았던 때가 바로 그날 이었을 테다. 아들이 음악방송인 ‘ESCAPE'라는 채널을 고정 시켜놓았는지 흐물대며 온몸을 휘감는 달콤한 음악이 계속 이어진다. 음악은 가을 하늘과 바람, 그리고 일탈한 나와 너무도 잘 어울렸다. 음악, 바다, 석양, 그리고 갯벌이 하나가된 그때가 바로 시였으니. 사람마다 갯벌의 의미는 다르다.  노동일수도, 놀이와 체험일수도. 허나 그날의 나의 갯벌은 석양과 함께 내 가슴에 시(詩)로 담아두려 한다. 키웨스트의 바다와 일몰이 수초와 어우러진 갯벌의 황홀한 오랜지빛 긴 그림자는 내겐 시(詩)일 수밖에 없었으니까. 지금도 가끔 그 시간의 석양을 소환하며 시(詩)를 읊는다.



                *헤밍웨이가 사랑했던 키웨스트. 그리고 그의 명대사들. * 

   

                  “그러나 사람은 패배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야”

                  “사람은 파멸당할 수 있어. 하지만 패배하지는 않아.” 

                  “태양은 결국 매일아침 떠오른다.”

                  “태양이 매일아침 뜨는 한 당신은 절망하지 않아도 된다.”

                  “태양은 곧 희망이다.” 

    


(오버시즈 하이웨이, 헤밍웨이의 집 입구, 7마일 브릿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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