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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 라헬 Jun 21. 2023

장마와 시래기밥은 사랑이다

(음식보다 추억이 더 고픈 이야기 1)


   나는 요리하기를 좋아 한다. 게다가 식탐도 매우 강하다.머릿속은 늘 뭔가를 만들고, 먹고 싶은 음식들로 가득 차 있다. 아침 식사 중 저녁 메뉴를 걱정하며, 근사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도 갈 곳을 고민하는 인사다.시간에 관계없이 언제나 요리를 할 수 있는 나만의 작고 예쁜 부엌이 있다. 행복중의 행복이다.




부엌은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곳이니까.새벽에 하는 요리는 거의 슬프거나 외로울 때다.복잡한 머리를 비워주고 화를 다독여준다. 새벽 요리는 잔치 국수나 어묵 탕 등 격식을 무시한 단품 요리(?)를 한다. 이유는 빨리 만들어 먹기 위해서인데, 만든 후 뜨거운 국물을 훌훌 마시면 슬픔과 외로움이 목구멍으로 밀려 내려간다. 


기쁠 때 하는 요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다. 만두, 녹두빈대떡, 돈가스, 떡갈비 등을 만들어 냉동실에 보관 한다. 여러 종류의 김치와 밑반찬은 냉장고에 넣는다. 이것들은 언제라도 방문하는 사랑 하는 이들에게 한상 차려 낼 수 있는 나만의 사랑 표시니까. 혹은 가끔 선물로도 쓰이게 되는데 받는 이들은 감격 한다.그럴 때 나는 살아있음을 느낀다. 


주위에 농사짓는 분들이 많다. 열무며 깻잎 고춧잎도 구입해 삶아 얼려 논다. 이 또한 좋은 선물이 된다.내가 혼자임을 아는 농부의 아내는 묻는다. “그 많은걸 뭣 해유?” 맞다, 냉동실 안에는 작년에 삶아 얼려서 쟁여 논 깻잎과 고춧잎이 있다.


 

장마가 시작됐다. 땅과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는 대단하다. 집 주위의 많은 비닐하우스 덕에 우렁차기까지 한 빗소리는 마치 영웅 교향곡을 듣는듯하다. 일자로 땅에 꽂히는 빗줄기를 보자 갑자기 시래기 밥 생각이 났다.

생각나면 바로 행동으로 옮겨야 나답다.



냉동고 한쪽, 얌전히 자리 잡고 있는 삶은 시래기 표고버섯 그리고 밤이 생각났다. 냉큼 꺼내서 렌지에 넣고 해동 모드로 돌린다. 쌀을 씻고, 멸치와 무 다시마로 육수를 낸다. 눈은 초롱초롱 빛나고 두 손은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빛의 속도로 움직인다. 나는 없고 손만 있는 상황이다. 해동된 시래기와 버섯을 물로 씻어 손으로 ‘꾹’ 짠다.  이에 들기름과 국 간장으로 조물조물 무쳐 놓는다. 밥솥에 불린 쌀을 넣고 거리를 살포시 쌀 위에 얹어놓는다. 밤도 곁 드려서,  물(육수)의 양은 평소 밥물의 양보다 적게 잡는다. 시래기 밥의 생명은 ‘고슬고슬’ 이니까. 밥 짓는 동안, 간장 파 마늘 땡초 고춧가루와 들기름을 넣어 양념장을 만든다. 다~됐다. 먹기만 하면 된다.


   


장대 같은 장맛비가 나를 시래기 밥에 꽂히게 한 오늘, 나는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게 됐고, 사랑하는 내 이웃과 나눌 수 있을 만큼 의 밥이 냉동실에 있음은 포근한 행복이다. 맛난 것을 먹고 나누는 기쁨, 내가 사는 이유다.


   시래기 밥을 다소곳한 공기에 담는다. 양념장 또한 작고 앙증맞은 종지에 담고, 얼마 전 담근 하얀 열무물김치도 곁 드려 놓는다. 나를 위한 식탁이 그럴 싸 하다. 비록 반찬은 한가지지만, 8가지 잡곡들로 만든 시래기 밥의 탄생은 흡사 보석처럼 빛난다. 밥 속엔 나의 사랑과 열정과 정성이 하늘만큼 더 하였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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