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헬의 놀이터)
그미의 글 터
방이 많을 필요는 없다. 두세 칸이면 족하다. 그러나 거실을 겸한 서재와 주방은 당연히 있어야 한다. 그곳은 거창하게 말하면 은밀하고 다정한 ‘만남’을 의미하는 장소가 될 테니까. 나와 책, 나와 노트북, 나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공간이 필요하기에. 그 공간에서 나 혼자, 아니 글 터를 찾은 이들과 먹으면서 쓰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천국이 따로 없지 않겠는가?
오래된 회색빛 기와를 지붕으로 얹은 집. 군데군데 녹슨 초록색 철 대문을 지나면 자그마한 마당이 있는 엄마 품 같은 집. 드라마에 나올 법한 그런 집에서 그림처럼 살고 싶었다. ‘그미의 글 터’라는 나무 문패를 달고. 앞뜰에는 며늘아기 지혜를 닮은 작은 꽃밭을 만들고 싶다. 색색이 난쟁이 채송화가 담장 아래로 병풍처럼 둘러있고, 철마다 다른 꽃을 피워내는 요술 꽃 마당 말이다. 마치 ‘헤세’의 정원 같은. 여름에는 모깃불을 피워놓고 평상에 누워 별 마중하며 별을 헤아리고, 달마중하며 달을 따면서 계절을 보내기도, 맞이하기도 할 테다. 어쩌다 들린, 인연들과 은하수에 흐르는 별을 헤면서 담근 막걸리와 달을 따다 구운 파전을 먹으면 그 얼마나 좋겠는가. 마당 한 귀퉁이에는 소박한 텃밭을 만들어야겠다. 지혜가 보고 싶을 때마다 한 줌의 꽃과 텃밭의 초록들을 거두어 화병과 소쿠리에 담아 주방의 작은 창문에 얹어 놓고 싶다.
뒤꼍에는 담을 대신한 앵두나무 아래로 한 무리의 키다리 칸나와 앙증맞은 장독대 그리고 펌프와 작은 무쇠솥이 걸린 아궁이를 만들고 싶다. 펌프 주변에는 큰 대야에 물을 그렁그렁하게 담아 놓고 여름날 수박을 띄워 놓는 곳으로, 파파할머니를 만나러온 장성한 손자의 등목을 해줄 수 있는 재미있는 장소가 될 테니까. 그리고 함박눈이 오시는 날 펌프와 장독대 그리고 무쇠솥 위에 소복이 쌓인 하얀 눈이 보고 싶기에 뒤뜰에는 그것들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아, 소낙비가 오는 날 그 위로 튕기는 물방울도 보고 싶기에.
여름에는 삼계탕, 겨울에는 우거지 듬뿍 넣어 끓인 된장국을 객들과 이웃에게 나누기 위한 절대 강자인 무쇠솥. 그것은 뒷마당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이 될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아궁이 위에 걸린 작은 무쇠솥은 내게 과거의 한세대를 추억 하게 할 것이고 그 기억은 나를 애달프게 할 것이다. 아궁이에서 피어나는 하얀 연기를 맡으며 엄마가 그리워 한 줄 쓰기를, 아니 한 편의 글을 쓰기도 할 테니까.
십수 년 전부터 오 년 동안 한국을 드나들면서 이런 집터를 찾아다녔다. 멀리는 고흥과 양양, 가깝게는 청평과 양평으로 발품을 팔아가며 열심히 나의 꿈을 찾아다녔다. 앞, 뒷마당이 있는 꿈꾸던 그곳 에서 숨 가쁘게 달려온 생을 쓰고, 그리며 신선놀음을 하고 싶었으니까.
어쩌다 발 없는 말이 유유자적하다가 바람결에 흐르고 흘러 천지를 돈다. ‘경기도 **에 글 쓰는 이의 글 터에서 별과 달을 노래하며 하룻밤 묵어가는 곳’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다. 딸과 함께 방문한 늦깎이 글을 쓰는 여인과 아들과 트래킹을 하다 그미가 끓인 된장찌개를 맛보러 온 젊은 아빠는 참지 못하고 소리를 퍼트린다. ‘그런데 쥔장이 글을 쓴대. 쥔장의 된장찌개 맛이 조선 최고. 그런데 더 놀라운 건, 무료지만 안타깝게도 하루에 한 팀만 가능해’라는 소문이 소리 없이 퍼지는 나의 꿈 터. 그래서 내가 이름 붙인 ‘그미의 글 터’를 만드는 꿈을 꾸었다. 그곳이야말로 내 노후를 책임져줄 최고의 놀이터가 될 것을 의심치 않았으니까.
삼십여 년 동안 삶이 힘들어 고통스러울 때마다 이 꿈을 꾸며 열심히 살아왔던 나. 그러나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우선 나를 도와주어야 할 청평조카의 반대가 하늘을 찔렀다. 보기보다 겁쟁이인 나를 잘 아는 조카는 “이모! 그냥 이곳저곳 여행이나 하면서 쉬셔요. 무슨 고생을 사서 하려고 이런 야무진 꿈을 꾸시는지, 허 참 쯧쯧~”하며 혀를 찬다. 그러면서 하는 농담 한마디, “하시려면 남자 친구부터 만드셔~~” 마당쇠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하긴 집의 이곳저곳 수리가 필요할 때마다 음식만 했던 내 손은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을 테니까.
이런 저런 이유로 ‘그미의 글 터’의 야무진 꿈은 눈물을 삼키며 접었다. 오 년의 수고와 함께. 그리고 글을 쓰고 싶고 여행하기 위해 2019년 봄, 그리던 고향에 발을 디뎠다. 그러나 코로나라는 복병으로 인해 그 꿈마저도 거의 좌절에 다다른다. 그러나 하늘이 무심치 않아 문학**를 만나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었으니 다행 중 다행이요 상賞 중의 상이 아니겠는가. 코로나 기간에도 화상과 카카오톡으로 작품을 공유하고 서로 염려하면서 사랑으로 이제까지 왔으니, 이곳은 내 최고의 놀이터가 아니겠는가.
해서 ‘그미의 글 터’는 가슴에 고이 접고 이제부터 나의 놀이터는 이곳 임을 굵고 고운 글씨로 가슴에 담는다. 나를 쓰는 이로 키운 문학**,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더라도 이 끈은 절대 놓지 않고 싶다. 이곳에서 열심히 놀고 사랑하고 기도하며 세월을 낚을 생각을 하니 내 남은 생은 행복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2025.4)
*그미: 그녀를 뜻하는 말로,
그녀를 좀 더 높게 표현하거나 멋스럽게 표현할 때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