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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재 미첼 MJ Mitchell Sep 28. 2023

시詩-나무책상과 책상나무

민재 미첼 MJ Mitchell

나무책상과 책상나무


민재미첼


어린 시절 내게는 작고 낡은 나무책상이 있었다 서랍이 두 개 달린 투박한 좌식 책상이었다 매끈하게 다듬어지지 못한 나무에는 나이테와 옹이가 선명해서 나는 이따금 책상이 무럭무럭 자라는 꿈을 꾸었다 수많은 서랍이 열매처럼 주렁주렁 달린 책상나무 꿈을 꾸고 난 아침이면 정말 책상이 자랐는지 어린 손뼘으로 길이를 재어 보곤 했다 그리고 수많은 서랍을 하나하나 열어보는 상상을 했다 서랍마다 하나의 세상이 들어 있었고 각각의 서랍은 모두 다른 세상을 품고 있었다 연필과 지우개, 구슬과 색종이, 우표, 병뚜껑, 스티커, 사탕과 껌, 종이 인형, 머리띠와 머리핀, 헝겊 조각, 바늘과 실  그리고 엄마의 빈 화장품 병에서 나는 향기가 모두 서랍 속 세상이었다 자라는 동안 나는 책상나무의 서랍 속 세상을 하나씩 꺼내 먹었다 씁쓸한 날에는 사탕 서랍을 열었고 외로운 날에는 인형이 든 서랍을 열었다 아직도 서랍 속 세상을 꺼내 먹으며 자라는 중인걸 보면 나는 여전히 어른이 되지 못한 모양이지만 열어 볼 서랍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과 책상나무가 죽지 않고 계속 자라고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된다 나의 낡은 나무책상과 동심童心의 책상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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