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웃기는 사람으로 각인된다는 것은

저는 웃기는 일반인입니다만

- 바로가기 :

https://alook.so/posts/KmtkG6r


- 글을 쓰게 된 목적 : 


삶의 절반 이상을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을 웃길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살았다. 고민한 기간으로만 생각하면 왜 직업이 되지 못했을까 싶지만, 좋아한다고 다 사귈 수 있는 게 아닌 것처럼 직업이 되지 못한 취미가 있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그래도 삶의 영역에서 유머를 놓치지 않으려고 늘 애써왔기에, 행복을 이루는 뼈대 중 한 파트는 든든하게 지켰던 게 아닌가 싶다. 남을 웃기는 일을 좋아하다보니, 종종 받게 되는 요구 중 하나가 [웃겨 봐]였다. 이런 요구를 들을 때마다, 언제 나한테 웃음을 맡겨놨나 싶지만. 웃겨 보라고 해놓은 사람만큼 웃기기 힘든 사람이 없으니, 적절히 나만의 레파토리로 잘 빠져나가곤 했다. 그렇게 말하면 아무도 못 웃긴다면서 호통을 치기도 하고. 돈이나 주면서 시키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그만큼 웃음, 코미디, 유머, 개그는 나에게 참 소중한데, 생각보다 그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는 건 쉽지 않다. 추구하는 가치의 중요도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겠지. 최근 MBC 100분 토론이 1000회를 맞이했다고 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니 얼추 20년이 넘도록 진행된 셈. 1000회 특집으로 방영된 정준희 교수가 손석희 아나운서를 대상으로 진행했던 인터뷰가 인상 깊었다. 손석희 아나운서는 그동안 만났던 수많은 토론자 중에서 인상깊은 사람을 꼽아주었는데, 나는 유독 노회찬 의원이 기억에 남는다. 그가 남긴 수많은 어록들, 유머들이 생각났다. 웃긴 사람이 이렇게나 무섭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질 않으니.



#alookso #얼룩소 #글쓰기 #큐레이션 #신문기사깊이읽기 #신문기사톺아보기 #핵심기사모음 #개그공인시험 #개그맨 #코미디언 # #역치 #성대모사 #100분토론 #백분토론 #1000회 #정준희 #손석희 #신해철 #노회찬 #노무현


#멋준평론


웃기는 사람으로 각인된다는 것은



0.

남을 웃기는 것만큼

위대한 일이 있을까


일반적으로 요구한 사람을 만족시키기 어려운 [3대 요구]가 있다면, [사투리로 말해 봐], [영어로 말해 봐], [웃겨 봐]가 아닐까 싶습니다.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 사투리를 쓰는 원어민이라고 해도 갑자기 사투리로 말해보라고 하면 말을 잇기 어렵습니다. 같은 한국어도 힘든데 영어로 말해 보라고 하면, 말할 것도 없겠죠. 그중에 가장 난감한 요구는 [웃겨 봐]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무리 재미있는 사람이라도 갑자기 웃겨보라고 말하면, 당황해서 웃기기 어렵죠. 물론 이런 난관을 극복하고 결국 웃게 만드는 프로 코미디언들이 있습니다만.


그런데 내가 원하는 대로 상대방이 반응하도록 만드는 정말 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내가 먼저 따라 해서 보여주는 건데요. 사투리나 영어로 말을 거는 것만큼 상대방의 반응을 끌어내는 좋은 방법이 없을 거고요. 오히려 어설프게 시도하는 나의 발음을 지적해주기도 하죠. 웃겨 보라고 말하기 전에, 내가 먼저 한번 웃겨주고 나서 웃겨보라고 요구하면 아마 어떻게든 자신만의 웃기는 재주를 잘 발휘할 겁니다.


저는 다른 사람을 웃기는 걸 좋아했습니다. TV 프로그램이나 유튜브 영상 중에서도 예능과 코미디 프로그램을 즐겨보는 편이고, 재미있는 유행어나 성대모사 같은 것이 인기몰이를 하면, 따라 하기 쉬워보이는 건 종종 연습하기도 했죠. 언제 한번 써먹을지 모르지만, 그 한 번의 순간을 위해서. 오랫동안 다른 사람을 웃기는 걸 취미로 해왔지만, 남을 웃기는 건 여전히 아직도 어렵습니다. 마치 글쓰기처럼 말이에요.


반대로 생각하면 남을 웃기는 일만큼 위대한 일이 어디에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웃음기를 잃은 채 무력함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어떻게든 웃기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 저는 개그맨, 코미디언처럼 다른 사람을 웃기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을 보면, 단순히 그들을 좋아함을 넘어 경이로움과 존경심을 느끼곤 합니다. 토익, 토플처럼 영어 공인 인증 시험과 시험 점수가 있는 것처럼 개그 공인 시험이 있으면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해보기도 했죠. "개익 900 넘어봤니? 나, 개플 115점이야." 처럼 말이에요. 아마 말도 안 되는 얘기겠습니다만.




1.

웃기는 사람으로

각인된다는 것은


웃기는 사람은 웃긴 이미지가 박혀 사람들에게 강하게 인식됩니다. 인지도를 높이는 차원에서 좋은 부분도 있지만, 때로는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늘 진지한 역할을 맡던 배우가 한번 웃긴 역할을 하면, 연기의 폭이 넓어졌다고 칭찬받습니다. 배우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도 비슷한 칭찬을 받죠.


하지만 감초 역할을 맡던 개그맨이 진지한 역할을 하면, 오히려 어색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웃기는 사람은 그냥 계속 웃기는 역할만 해야 한다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데뷔를 개그맨으로 한 연예인들은 인지도는 꽤 높은데, 오랫동안 활동하지 못하거나 배우로 전업하여 성공하기가 꽤 드문 듯합니다. 웃기는 이미지가 잔상으로 남기 때문이죠. 다른 사람을 웃기는 일은 정말 힘든데, 힘든 것과 별개로 대우가 그다지 좋지 않은 것 같아 코미디를 사랑하는 저로선 좀 슬프네요. 물론 제가 그들을 걱정할 입장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주먹만 치켜세우면, 누군가를 두렵게 만들거나 울리는 일은 쉽습니다. 숨어 있다가 깜짝 나타나서 누군가를 깜짝 놀라게 하는 일도 어렵진 않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웃기는 일은 정말 어렵습니다. 말하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잘 듣고, 이해하며 공감하고 있다가, 마음속에 가진 생각, 고민, 편견, 선입견, 고정관념을 살짝 건드리면서, 상대방이 불쾌하지 않도록 합의를 끌어내야 하니 말이에요. 무작정 한 방 먹인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 때로는 적당히 당해주기도 하면서 밀당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웃긴 사람이어도 시간이 지나 익숙해지면 금방 식상해지거나 시들해지곤 합니다. 대중은 늘 신선하고 새로운 사람을 원하니까요. 누군가를 웃기는 건 내면의 에너지를 흔드는 자극입니다. 자극에는 역치가 존재하기 마련이니 반응이 식상해지거나 시들해지게 되는 걸 당연하게 담담하게 받아내야 하지만, 그런 평가를 참는 걸 힘들어하는 게 또 웃기는 사람들의 주요 특징이죠.


내면에 존재하는 에너지를 흔들려면, 참 많이 생각해야 합니다. 이 이야기가 시간과 상황에 상관없이 재미있는 얘기인가, 대중의 특성에 따라 다르게 들리는 얘기인가, 혹시 철 지난 유행어를 쓰고 있지는 않은가 하고 말이에요. 다른 사람의 내면에 존재하는 에너지를 흔들려면, 나 역시도 내면의 에너지를 써야 한다는 것. 이렇게 남을 웃기는 일은 어려움을 넘어 위대한 일이지만 별로 우대받는 것 같진 않네요.



2.

유머가 만든 각인 때문에

잊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MBC 100분 토론이 어느새 1,000회를 맞이했다고 합니다. 자주 챙겨보지는 못해도 가끔 관심 있는 이슈를 놓고 토론을 벌인다고 하면 한 번씩은 풀버전으로 보기도 했는데요. 1,000회 특집 중 하나였던 [그래도, 토론] 방송이 꽤 뜻깊었습니다. 왜냐하면 현 100분 토론의 사회자인 정준희 교수가 100분 토론 사회자하면 떠오르는 그 사람, 손석희 아나운서를 찾아가서 인터뷰했기 때문입니다.


https://youtu.be/OPSuCKD-BsI


두 사람이 만나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그동안 100분 토론에 출연했던 다양한 사람을 떠올리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토론에 능했던 세 사람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바로 가수 신해철, 국회의원 노회찬, 전 대통령 노무현이었습니다. 슬프게도 셋 다 지금은 볼 수 없는 고인이 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네요.


가수 신해철은 자신의 주된 역할이 노래 부르는 사람이었지만, 분야를 가리지 않고 존재감을 보여준 종합 엔터테이너로 기억됩니다. 연기, 예능, MC, 논객 등 다양한 영역에서 발군의 모습을 보여줬죠.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 전설적인 유튜버가 되어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때로는 엉뚱하고 가끔 독창적인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새 빨려 들어가게 됨을 한두 번 경험한 게 아니었으니 말이죠.


노회찬 의원은 딱딱하고, 재미없는, 와닿지 않는 정치 이야기를 웃음과 해학을 통해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들어 준 보기 드문 정치인이었습니다. 정치를 명확하게 이해하지 않고 있다면, 정치를 소재로 절대로 그렇게 다양한 비유를 들며 설명할 수 없겠죠. 또한 다양한 비유를 통해 사람들을 울고 웃길 수 없겠죠. 가끔 말도 안 되는 토론 프로그램을 보고 있다가, 긴장을 풀어주는 그의 유머가 종종 떠오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노회찬 의원만큼은 아니었지만, 못지않게 유머러스한 분이었죠. 끝이 없어 보이는 문제를 놓고 끊임없이 토론하고, 소통하면서 어떻게든 해소해 나가려고 애쓰셨던 분이었습니다. 국민과 격의 없이 토론하길 사랑했고, 그만큼 토론을 사랑했던 대통령은 없었던 것 같죠. 웃음과 유머에 관대했던 분이라 그런지, 유독 위 사람들이 오랫동안 마음속에 각인되나 봅니다. 이렇게나 웃긴 사람이 무섭습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이토록 오랫동안 잊히질 않으니.

매거진의 이전글 안 뽑아도 되니까 빨리 알려만 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