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반의 서재 Jan 22. 2024

경단녀, 장숙희

3화 신데렐라 병 말기 환자

천만다행인 건 나의 두 아이는 폭탄인 남편을 닮지 않고 나를 닮아 키도 크고 얼굴도 그럭저럭 봐 줄만 하다는 것. 


난 이 부분만큼은 늘 두 손을 꼭 모으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곤 한다. 


얼굴은 따지면서 왜 우리 남편 같이 못생긴 배불뚝이에 훌러덩 작자와 결혼을 했냐고 물으신다면...? 


그야 결혼 전에는 그 인간이 나를 늘 공주처럼 몸과 마음을 다해 받들어줬으니까...!


남편의 간도 빼줘~ 쓸개도 빼줘~ 아예 그냥 다 빼줘~놀이에 내가 아주 그냥 그 공주 놀이에 너무 심취를 해서 눈이 아주 멀어버린 거지~~ 뭐어~~ 


어려서부터 아버지 얼굴을 모르고 부정이라는 것을 전혀 받아보지 못한 어리석은 내가... 


연애 때 성심성의껏 잘 대해주는 남편에게 그동안 받아보고 싶었던... 아니 결핍 됐던 아버지의 사랑을 투영했는지도 모른다. 


가정을 등한시하고 그저 친구들 밖에는 모르던 아버지라는 작자는 연대보증이 잘못돼서 자신의 사업이 쫄딱 망하자마자 그냥 지 혼자서 맘 편하게 떠났다.


아직 어린 언니와 나를 그냥 쓰레기처럼 내팽개쳐버리고 그날로 자유롭게  겁나게 먼 여행을 떠났다.


그래서 나는 어려서부터 엄마하고 언니하고 이렇게 셋이서(?) 아주 조촐하게 살았다. 


집은 늘 환기가 전혀 되지 않고... 쿰쿰한 곰팡이 냄새가 진동을 하고... 구석구석 숨어서 징글징글하게 사사삭 기어 다니는 시커먼 바퀴벌레들이 한가득한 반 지하방. 


볕도 들지 않는 늘 어둡고 작은 방에서 우리 세 모녀는 웃음기 없이 살았다.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늘 돈 많은 집 남자에게 시집을 가서 볕이 드는 양지바른 넓은 집에서 돈 걱정 안 하고 사는 게 일생일대의 꿈이었다.


말하자면 왕자님이 나를 구해주러 오는... 

(왕자님이 미쳤나? 너를 구해주러 오게?)


내 입으로 말을 꺼내기도 겁나게 우스꽝스러운... (알고 있으니 참 다행이긴 하다만...) 참 말도 안 되는 신데렐라 스토리를 나의 인생 모토로 삼으며 살아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신데렐라가 아닌데 나를 구원해 줄 왕자님을 꿈꾸는 말도 안 되는 스토리. 


나는 그 당시만 해도 허황된 스토리를 믿을 정도로 골이 한참 빈 사람이었을지도. 


왜 그 이십 대 풋풋한 시절에 택도 없는 왕자님을 기다리는 대신 차라리 열심히 일해서 성공할 생각을 단 한 번도 하지 못했을까...? 


그랬다면 이렇게 못생긴 나르시시스트...


자칭 어머님만의 왕자와는 연을 맺지도 않았을뿐더러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텐데...!






그 당시 나를 좋아해 주는 오빠가 있었다. 어려서부터 같은 동네에 사는 교회 오빠. 


그 오빠는 늘 나를 친 여동생같이 잘 대해줬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오빠 덕분에(?) 내게 대놓고 들이대는 남자들은 없었다. 


말하자면 원천 봉쇄라도 된 듯 모든 남자애들이 나를 그냥 돌보듯 했으니까. 


그도 그럴 것이 그 오빠는 내가 사는 동네에서 싸움도 잘하고 공부도 꽤나 잘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오빠는 엄친아였구나.


늘 여자애들에게 인기도 많았지만 그 교회 오빠는 단 한 번도 다른 여자애들에게 살갑게 대해 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언제나 내게만 곁을 내주고 잘해줬던 그 오빠를... 잘난 구석이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었던 내가 매정하게 찼다. 


내가 내 발등을 알아서 내리찍었으니 나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한심한 사람이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중견 기업에 입사를 해서 그럭저럭 만족하며 살았는데...


늘 나의 관심은 돈 많이 버는 남자였고 그 당시 언니의 맞선 남으로 나온 남자가 내 남편이 되었다는 사실이 신기할 뿐이다.


엄마의 친구가 언니를 위한 맞선 남으로 꼭 집어 소개를 한 남자.


하지만 언니가 그 맞선 자리가 껄끄럽다고 한사코 고사를 하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내가 대신 나가게 된 자리였다. 


처음에 나간 자리에서 나는 크게 실망을 했다. 


웬 난쟁이 똥자루 같은 남자가 나를 위아래로 쭉 훑어 내리며 흡족해하고 있었으니...


나는 차마 그 자리에서는 싫다는 내색을 할 수는 없어서 그냥 그 남자가 사주는 요리를 꾸역꾸역 소여물 먹듯 위 속으로 욱여넣었다. 


그는 내가 자신을 마음에 들어 했지만... 내숭을 떤다는 강한 확신 아래 이런저런 되지도 않는 농담을 마구 던져 댔다. 


속으로는 역겨웠지만 그냥 빨리 얻어먹고 집에 가자는 마음이 컸던 탓에 그의 시답잖은 농담에 그저 수줍은 척 웃어넘겼다. 


그렇게 우리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어야 할 선 자리가 금세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그날은 회사 야유회 겸 간단한 운동회가 있었던 가을이었다. 


2인 1조 경기에서 뛰던 중 우리 팀이 내 쪽으로 넘어지는 바람에 나는 왼쪽 팔과 왼쪽 다리에 골절 상을 입고 깁스를 했다. 


그런 나를 날마다 회사까지 데려다주고 끝나면 집까지 데려다 주기를 한 달 반. 


나는 점차 그의 듬직하고 배려 깊음에 홀라당 넘어갔다.


그는 항상 나를 자신의 일보다 우선시해 줬고 공주처럼 대해줬다. 


그러니 아버지 없이 자란 내가 그에게 끌렸던 건 당연지사였을지도 모른다.


그 당시 나를 좋아해 줬던 그 동네 오빠는 뜨뜻미지근한 나의 태도에 슬슬 질렸는지 나를 만나러 오는 시간이 뜸해지더니 결국에는 내 눈앞에서도 자취를 감췄다. 


얼마 후 나는 남편과의 사랑을 키워서 결혼에 골인을 했다.


이렇게 나의 결혼 생활은 완벽해야만 했고 완벽할 줄로만 알았다.


평생을 나를 공주님처럼 대해 주겠다는 남편의 공약을 곧이곧대로 믿어버리는 일생일대의 대단히 큰 실수를 저질러 버린  것... 


지금도 남편은 내가 자신을 소개팅에서 처음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다고 착각을 하고 사는 시답잖은 남자다.   


만일 내가 이 남자가 아닌 그때 그 동네 오빠를 선택했더라면 내 인생은 행복했을까...?


 결혼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골 때리는 시집살이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요즘 말하는 직장 따돌림이 그냥 장소를 살짝 바꿔서 일어났다고 보면 딱 맞아떨어지는 상황이었다. 


그런 시어머니에게도 잊고 싶은 뼈아픈 과거는 있었던 것일까? 


시어머니 역시 내 남편과 똑같은 나르시시스트 시아버지-아이러니하게도 시아버지는 배우를 뺨치는 외모에 훤칠한 키의 소유자-를 만나 맘고생을 오지게 했으며 거기다 한 술 더 떠 자신의 시어머니한테 구박이라는 구박은 원 없이 당했다고 눈물을 훔치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를 생각하며 내 손을 꼭 잡고 눈물을 글썽이셨던 건 영락없는 악어의 눈물이었던 것이었을까? 


아무래도 내 얼굴이 자신의 시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도화선이 된 것이 아니었을까?


그러니 나를 보고 있으면 부아가 치밀어 올라서 참을 수가 없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남편과 결혼을 했을 때 자신의 두 손으로 내 손을 꼭 잡으며 말씀하셨다. 


자신은 절대로 며느리를 구박하지 않고 늘 딸처럼 잘 대해 주겠다는 공약을 인정사정없이 날리셨던 분. 


그랬던 분이 결혼 생활한 지 채 반년도 지나지 않은 김장을 하는 날을 기점으로 나만 당할 수만은 없지, 너도 한 번 당해봐라를 지금까지 멋지게 내게 실천하시는 분이다.


예나 지금이나 실천력 하나만큼은 끝내주시는 분이다. 


내가 그런 시어머니에게 옳은 말을 해봤자 그 대답은 말대꾸로 바뀌며 시댁의 모든 원망이 나에게 향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껏 어머니의 불 화살이 나를 겨냥해서 심하게 날아와도 늘 그러려니 최대한 나의 시커멓게 타는 속내를 내비치지 않고 살아왔다. 


혹여 그 불똥이 우리 두 아이에게 튈까 봐 더 속을 칭칭 감추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 살아왔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나 장숙희는 결혼과 동시에 남편과 시어머니와 시누이들의 시답잖은 동네 북이 되어 버렸다. 


소위 말하자면 감정의 쓰레기통...!


그래서일까...? 


그 화병이 나이 이제 갓 오십이 넘은 내게 갱년기 우울증이라는 멋들어진 탈을 쓰고 마치 손님인 것처럼 슬며시 다가온 것이다. 


게다가 기미로 뒤덮여 있는 거무튀튀한 얼굴에는 아주 촌스러운 분홍 끼가 감도는 홍조가 나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다. 


나는 욕조에 걸려있는 거울을 보면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도 한 번 피부과나 가볼까? 돈을 좀 쓰면 나도 예뻐질 수 있을까?”


한참을 거울을 보며 중얼거리고 있는 그때, 띠띠띠띠띠~~ 하는 경쾌한 소리에 뒤이어 문이 열리며 남편이 들어왔다. 


예나 지금이나 남편은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과는 거리가 아주 먼 남자다. 


있는 듯 없는 듯 하지만 필요하다 싶으면 곧 죽어도 의견을 피력하는 매사에 확실한 걸 좋아하는 나와는 정반대로 


그는 매사에 깐족거리면서 아재 유머라며 미운 소리를 쓸데없이 지껄이다 매를 버는 스타일이다.


“여보! 나 아직도 예뻐?”

“뭐어? 왜 그래? 징그럽게~~”

“아니, 아직도 내 얼굴 봐 줄만 하냐고.”

“그럼~~ 봐줄 만은 하지.”


나의 질문에 남편이 귀찮을 때마다 하는 건성 대답에 나는 속이 살짝 뒤틀렸다. 


이럴 때 좀 예쁘다고 말해주면 어디 덧나냐, 이 인간아~~라는 말이 바로 입 밖에서 맴돌았지만 그냥 꾹 참고는 물었다.


“당신 그나저나 오늘은 왜 이렇게 일찍 들어왔어?”

“그냥~~ 몸이 좀 안 좋아서~~”

“그래? 어디가 어떻게 안 좋은데? 몸이 안 좋으면 오늘 병원이나 한 번 가봐.”

“병원은 뭘~~ 그냥 쉬면 괜찮아지는데. 신경 쓰지 말고 어서 볼일이나 봐.”


남편은 사실 병원에서 맞는 주사가 너무 아파서 죽기보다 싫다고 꾀병이 심한 어린아이 같은 스타일.

작가의 이전글 경단녀, 장숙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