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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 하늘 흰구름 Apr 10. 2022

유재석이 아니어도 빛나는 그

'비울수록 사람을 더 채우는 말그릇' 이 책이 내게 남긴 이야기

얼마 전 MBC '놀면 뭐하니?'란 프로그램에서 개그맨 '조세호'씨가 나와서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동료들이 본인이 스타라 생각하는지 묻는 장난 섞인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별이 다 같은 사이즈야?
별이 이만한 것(작은 별)도 있고,
이만한 것(큰 별)도 있는데,
 내 나름대로는 스타가 됐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사는 거야.

이 영상에서는 예능이기에 자연스레 큰 별에 유재석 씨 사진이 비쳤다.

그리고 나는 그날 그가 유능한 MC 유재석 씨 옆에서도 스스로를 가려지지 않는 빛을낼 수 있는 사람이란 느낌을 받았다.

사진 출처_MBC 예능 '놀면 뭐하니?'



자격지심을 키웠던 시절이 있었다.

박사학위를 받고 처음 회사에 입사했을 때 자주 듣던 말 중 하나는...

'어느 교수님 연구실 출신이세요?'였다.

그 질문에는, 몇 가지 의미가 있다.

그중 가장 내게 가장 부담스러운 의미는

'앞서 입사해 회사에 있는 선배들만큼 내가 능력이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었다.


내 사수도, 그리고 내 선배들도 유능했고,

사람들은 나에게 그만큼의 기대와 평가의 시선을 보냈으며,

나는 마음속에 그 유능함과 내 부족함 사이에서

자격지심이란 놈을 마음속에 키웠던 것 같다.


"저는 그 정도의 능력은 없어요"

그 당시 자주 했던 이 말에 나는 아마도

나도 그만큼 되고 싶다는 욕심,

그렇게 안되었을 때 나에게 느끼는 실망감에 대한 방어,

다른 사람도 그걸 안다는 창피함,

이런 것들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초반에 나는 내 의견을 말하는 법이 없었다.

내 말투는 회사에 별 뜻은 없다는 말투였고, 보고서도 사실 이외의 의견을 작성하는 법이 없었다.


그렇게 반년 정도 지나고, 새로운 선배가 나와 같은 파트로 파견을 왔다.

그 당시 그 선배는 내가 퇴사한다고만 하면 사람들을 모아 치킨과 맥주를 사주었다.

퇴사한다고 해서 술 마시러 갔는데 사실...

그분은 딱히 내게 퇴사하지 말란 말도, 퇴사를 하란 말도 없었다.

그날 하루 힘들었던 것, 화났던 것을 들어주고 그냥 일상을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게 다였다.


그리고 집에 갈 때쯤 물었다.

"그래서 퇴사할 거예요?"

그때 나의 대답은 거의 "몰라요"였다.

그리고 그 선배는 일할 때 자주 물었다.

"이건 뭐예요? 왜 이렇게 분석한 거예요?"

그리고 내 대답을 듣고 나면  

"아~ 맞네. 알겠어요."

이렇게 말하고 갔다.


그런데 그 선배와 일을 한 이 후로

나는 어느 순간 나의 의견을 자주 말하게 되었고,

내 의견을 말하기 위한 공부를 하는데 재미를 느꼈고,

그 재서야 일하는 데 즐거움이란 걸 더하게 되었다.


그러다 점차

나는 다른 누구와 나 자신을 비교하여

나를 낮추는 법을 버렸고,

나 스스로를 인정하는 법을 배웠다.


그땐 정확히 알지 못했다.

무엇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누구나 원하지 않는 공식 때문에 힘들어한다는 것,

그 공식이 인격의 차이에서 생긴 게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되면

다른 사람의 인생에 대해 함부로 충고할 수 없게 되고,

그야말로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누는 게 가능해진다.

_ '비울수록 사람을 더 채우는 말그릇' 중에서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삶에서 나오는 그 말의 공식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끔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공식의 원천인 그 삶을 알지 못하면서 조언과 충고를 한다.

그리고 그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쉽게 실망하고 판단한다.


사람의 마음은, 나의 안쪽 어딘가에서 떠돌고 있는 말을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사람을 만났을 때 열리게 된다.


고쳐주고 싶겠지만 고치려 하지 말고, 간섭하고 싶겠지만 간섭하지 말자. 숨은 이야기까지 들으려고 한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수용하는 의미이다.'


관계란 '편하게 생각하라'라고 해서 편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 말을 줄이고 상대방의 말에 관심을 보일 때 자연스럽게 편해지는 것이다.  

_ '비울수록 사람을 더 채우는 말그릇' 중에서


그 선배가 내게 했던 것은 충고도 조언도 아니다.

그저 내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물어봐 주고 들어 주었던 것,
진심 어린 경청과 노력이었다.

그게 지금에 와서야 더 큰 그릇에서 나온 마음이었음을

그리고 더 큰 노력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 마음과 노력이

내가 나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답하게 만들었고,

자격지심을 키우고 있던 나를 마주하게 만들었고,

그것을 걷어내게 만들었고,

나를 인정하게 만들었다.


 

'나를 이해하고 인정한다는 것'은

이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함을 인지하는 것이고

때론 혐오하는 자신의 모습과도 마주하는 용기를 갖추는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어렵기에 그 결과는 값지다.


그 결과는 다른 사람의 충고에
쉽게 자신의 한계와 가치를 정하지 않는,
스스로를 다른 사람과의 비교 안에 가두지 않는,
내 안의 단단함을 믿고 쉽게 비관도 자만도 하지 않는,
그리고 그 단단함이 다른 사람에 대한 관대함까지 이어지는 그런 나를 만나는 것이다.


글 서두에 언급한 '조세호'씨는

자신을 작은 별에 가두지도 더 큰 별처럼 포장하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을 살피고 이해하여 스스로 빛나게 만들었다.


내게는 그 빛을 유지하기 힘들 때가 자주 찾아왔지만,

스스로를 빛나게 했던 그 시절이
아직까지도 빛의 스위치를 점검하고 고칠 수 있는 힘이 되고 있다.



** 이 글을 남길 수 있게 해 주신 '비울수록 사람을 더 채우는 말그릇'의 저자 김윤나 님과

제게 스스로 빛낼 수 있는 힘을 주셨던 그 선배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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