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나의 뜨거운 겨울 뉴질랜드_6. 기본

6. 기본

by 맑은 하늘 흰구름

"이 나이 때 영어, 수학은 기본이야. 수학은 안 해도 최소한 영어는 해야지."

"애들이 기본으로 영어는 다니지. 기본만 보내."

"이 나이 때 이 정도는 기본이야."

요즈음 아이 학습에 대한 고민을 한다.

돌이켜보면, 나 스스로도 내 교육관만을 지나치게 고집하고 있진 않은가 싶었다.

그래서 한편으론 불안했다.

아이를 내가 너무 나에게 맞추어 키우려는 건 아닌지.

그래서 최근에 많은 조언을 들으러 다녔다.

내겐 쉽게 흔들리지 않는 이상한 고집이 있어 조언을 듣는 것이 세상을 닫고 사는 것에서 나오는 길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육아와 양육에 정답은 없고, 부모의 선택이라지만,

많은 사람들이 '기본'이라는 말로 정답을 이야기한다.

정말, 이게 기본일까.


뉴질랜드에서 루지를 타러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 적이 있다.

그때 놀랐던 건 10대로 보이는 아이들이 가파른 산에서 산악자전거를 타던 장면이었다.

그러고 나서 보니 산악자전거 루트가 지정되어 있는 표시가 보였다.

아이들은 가파른 산맥에서 자전거를 타고 빠른 속도로 내려오고,

커브에서는 거의 날다시피 방향을 바꾸었다.


그 이후 길을 다닐 때 꽤 많은 아이들이 헬멧과 무릎, 팔꿈치 보호대를 하고 있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뉴질랜드 놀이터 옆에 대부분 있는 인라인과 킥보드 묘기장도 눈에 들어왔다.

둥그런 커브로 된 장소에서 아이들은 인라인과 킥보드를 타며 높은 곳에서 묘기를 펼치는데 꽤 아찔하다.

4살 정도 돼 보이는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며,

초등학교, 중학교 아이들이 인라인과 킥보드를 타며,

위험에 자신을 던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많은 아이들이 코가 다쳐서, 이마가 다쳐서 반창고를 붙이고 있기도, 깁스를 하고 있기도 했다.

그런데, 이러한 경험을 뉴질랜드 아이들은 익숙하게 하는 듯했다.

킥보드, 인라인 스케이트장


아이들의 놀이터에도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아찔한 기구들이 많다.

집라인도 꽤 길고 높으며, 커다란 통에 들어가 아이들이 굴리면 굴러가는 기구도 있다.

꽤 높이 올라가야 하는 구름사다리도 있다.

한국이었으면, 위험한 기구로 취급하여 놀이터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이 보이는 것들이 자리해 있다.


그러고 보면, 뉴질랜드 아이들의 기본은 '위험에 뛰어드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다 큰 사고가 나면 어떻게 하냐'라는 질문을 하면 나도 뭐라고 말해야 하나 싶다.

하지만, 뉴질랜드 아이들은 주저함 없이 그런 경험에 기꺼이 몸을 던지는 듯했다.

특별한 성취를 위해서가 아니라, 부모님이 강요해서가 아니라,

그 아이들에겐 그게 기본인 듯싶었다.


그런 기본을 자연스럽게 익힌 아이들은 어떤 것들을 해낼 수 있을까.

아이들은 그렇게 다치고 깨지고 다시 도전하며

자신을 보호하고 스스로 조절하는 능력을 배운다.

또한 결국은 해내보는 성취감을 가진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그걸 하는 이유가
부모도, 아이도 이 것들을 배워 가는 것을
'기본'이라 여겨
자연스레 한다는 것이다.


뉴질랜드에서 캠핑카를 타고 여행을 할 때

산악자전거를 타고 꽤 높은 산을 오르는 70대로 보이는 할아버지께서

차를 타고 가다 손뼉 치는 우리에게 엄지 척을 해줬던 추억이 있다.


그 장면을 떠올리면 아직도 나는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생각에 잠기게 된다.

위험하고 극한 상황에서
다시 도전하고 자신을 조절하는 능력을 갖춘 어린이들이 자라
또 한계에 도전하고
그 도전하는 자신을 밝게 빛나게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그렇다.

그리고 그 모습이 존경스럽기도 하고
동경하게 되기도 해서 그렇다.



결국 우리가 아이에게 심어준 '기본'은
아이의 평생을 지탱할 초석이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사용하는 '기본'이라는 단어가 갖는 힘을 무시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그러기에 더욱 신중히 그 '기본'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


정말 우리가 아이들이 '기본'으로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일까.


인사가 기본이던 시대에 자랐던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에게 영어 수학이 기본인 것이 조금은 낯설다.


'기본'이란 것은 꼭 갖추어야 하는 것.

그래서 다른 것보다 우선시되어야 하는 것이다.

'기본'을 갖추다 보면 포기해야 할 것들이 있다.

영수를 기본으로 하여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면

그리고 그게 더 기본에 가깝다면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자유 의지로 탐구하고 놀 수 있는 시간'

'도전해 보고 싶은 것을 찾고 실패해 보는 경험을 할 시간'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생각이 커져갈 시간'

'운동과 음악을 하며 마음을 해소하는 방법을 배우는 시간'

그리고

'같은 시간을 공유하며 우리가 사랑할 시간'


어떤 것을 포기할 수 있을까.


최근 다양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며,

생각보다 더 가혹한 한국 입시 현실 앞에서

나는 감히 이런 이야기를 꺼내기조차 망설여졌다.


모든 영역에 기본이 있고

그 기본을 갖추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한국 아이들이

그 영역의 기본을 다 갖출 수 있는 여유가 되는지

의문이 들었다.


'기본'을 지킨다는 것은 '근본'에 가까워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아이가 갖추어야 할 근본에 영수를 넣을 자신이 아직은 없다.

내가 생각하는 근본들을 잃을 것 같아서.


맞추어진 영수를 넣은 아이의 미래에

산악자전거를 타고 뻘뻘 흘리는 땀을 훔치며

밝은 미소로 내게 엄지 척을 해주었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아서

그렇게 나는 '아직은'이라는 생각을 했다.


내 아이에게 꼭 필요한 ‘기본’은 무엇일까.

그 ‘기본’을 지켜주기 위해
나는 어떤 것들을 잠시 미뤄두어야 할까.

그리고 나는 정말, 그럴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일까.


산악 자전거를 타시던 할아버지를 만났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