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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 하늘 흰구름 Mar 12. 2022

'프란츠 카프카' 그를 안아주고 싶다.

<'변신'_프란츠 카프카 단편소설>이 내게 남긴 이야기

일어나 보니 갑충으로 변했다.

그래도 소설 속 주인공 그레고르는 가족을 사랑했다.

그리고 가족으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받고 죽었다.

이 소설이 사람이 갑충이 되는 극단적 변신을 통해 가족과 인간의 존재 이유 그리고 노동자의 애환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모르겠으나...

지금 나는 그냥 이 글을 쓴 그를 안아주고 싶다.

내게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벼랑 끝 그의 슬픔만이 보이고 들리는 것 같았기에...




체코 프라하는 내가 사랑하는 도시이다.

오래 머물렀던 건 아니지만, 짧게 머물렀던 그곳의 거리에서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를 보고 슬픔과 감동을 동시에 느꼈던 기억이 있다.

파란색 셔츠에 갈색머리, 눈을 감고 한껏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지휘하는 지휘자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때 음악보다 그 사람의 표정에 느꼈던 전율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 작은 오케스트라를 보고 걷는 프라하는

모든 게 아름다웠다...


까를교를 걸으며 보는 블타바 강과

프라하의 붉은 지붕이 가득한 전경..

구시가지 광장에서 아이들이 자신의 웃음소리를 함께 담아 비눗방울을 날리는 영화 같은 장면..

빨리 가지 않아도 발 닿는 곳 어디든 그게 아름다울 수 있다고 말해주는 듯한 트램..

연인의 무릎에 앉아 사랑을 나누는 모습에...

나는 그 도시에서 이방인도 관광객도 아니었으며

그냥 머무를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바라보고

쉬어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누구도 관광객을 신경 쓰지 않는 그 도시에서

남편과 나 온전히 우리일 수 있었던 시간이,

프라하가 가지고 있는 슬픔조차도

낭만이란 단어에 담겨 있는 것 같던 그 시간이,

내게 진한 행복으로,

때로는 사랑과 열정이 담겨 있는 그때가

그리울 만큼 슬프게 다가온다.


 

이렇게 나에게는 첫눈에 반해서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도시가

그에게는 걷고, 먹고, 자고, 살고 있지만...

그 어디에도 그를 담을 수 없음에 상처받고 고통스러웠을 것을 생각하니,

그 아름다운 도시의 전경과 대비되어 나를 슬프게 한다.


책에서 소개한 작가 프란츠 카프카 그는, 프라하에서 유대인의 상인으로 태어나 유대인이었으나 정통 유대인의 세계에 편입되지 못했고, 독일어를 사용했으나 프라하의 독일인 사회로부터 배척되었고, 프라하에서 태어났으나 체고 인도 아니었다고 한다.

그는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으나 보험회사에서 일을 하였고, 카프카가 남긴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에는 모든 문제의 답을 정해놓고 자신에게 명령만 하여 자신을 드러낼 수 없게 한 아버지로부터 소외되었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음을 말하고 있다.


그는 내가 낭만이라고 생각한 그 도시에서, 자신의 모든 것이 소외받고 부정당하고 그저 소모품으로 느껴지며, 결국은 소설 속 주인공 그레고르 자체일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소설 속 그레고르는 과연 변신하였을까?

 아니면 모습만 다를 뿐 그전부터 그는 그런 존재였을까?


그는 모습이 변하기 전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가 자부심을 느꼈다 말한 가족 부양은 실은 가족에게 조차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필요한 사람'이 되어 버렸음을 의미하며, 이 것이 사라졌을 때 결국 필요 없는 존재로 전락할 것임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인정하게 되었을 때, 현실에서 자신조차 자신을 소외시키기 전 마지막으로 갑충의 모습으로 변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느꼈던 그것이 거짓임을 바라며, 가족의 헌신과 가족의 온전한 사랑으로, 단순히 먹고사는 그런 갑충과 같은 삶이 아닌 표현하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며, 진짜 자신으로 변신하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러기에 그는 변신에 실패했다.

카프카 그는 프라하 안에 결국 자신을 담았다. 자신의 문학뿐 아니라 유대인과 노동자의 애환까지 담는 유명한 실존주의 문학가로 남았다.

하지만 나는 그가 너무 안쓰럽고, 프라하의 그 거리에서 고되게만 느껴졌을 노동을 하며 축 처진 어깨로 걸어 다녔을 그를 안아주고 싶다.

소외로부터 지친 마음을 위로하고 싶다...


그는 우울했을까? 소주 연합 신문에 연재된 젬마 작가의 글에서 ‘우울은 당신이 길을 벗어났으니 방향을 수정한 의미’라는 글을 보았다. 아마 그는 우울할 수 조차 없었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다.


그 아름다운 도시에서 어느 하나라도
그에게 아름다웠기를 바라본다...


'등에 사과가 박혀 썩어가고 있다는 것과 그 주변에 퍼진 염증 부위가 부드러운 먼지로 덮여있다는 사실조차도 거의 느끼지 못했다. 그는 감동과 사랑의 마음으로 가족을 회상했다. 그가 사라져야 한다는 생각은 아마 여동생보다 그 자신이 더 단호했을 것이다.'

_ 소설 '변신' 속 그레고르가 죽기 전 장면 중


정의로운 삶도 결국 현명함과 실효성 만이 아닌 마음으로 행하는 것임을 다시 한번 생각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삶의 벼랑 끝에서도 느낄 수 있는 마음을 나눌 수 있길 바라본다.

그리고 그 마음으로 소외되지 않는 정의가 실현되기를 조용히 외쳐본다.



**이 글을 제게 남기게 해 주신 소설 '변신'의 작가 프란츠 카프카님께 감사와 경의와 위로를 표합니다.


**이 글은 소주 연합신문에 동시 기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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