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이 리젠트컷을 한다면...
1. 좁디좁은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카메라는 골목 안쪽에서 바깥쪽을 향해 고정이 되어 있다.
사람들은 골목 안쪽으로 걸어가다가 갑자기 오른쪽으로 방향을 돌고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그들이 계단으로 올라가는 장면은 창문을 통해 부분적으로 보인다. 어찌 보면 그들의 동선에 크게 주목하지 않는다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내 주인공인 기홍 뒤에 졸졸 따라올라간 경주가 기홍의 외마디 비명소리에 놀라 내려간다. 하지만 그 모습을 고정된 위치에서 부분적으로 보았던 관객과 아무 생각 없이 좁은 계단을 따라 기홍을 따라간 경주는 왜 기홍이 비명을 질렸는지는 알 방법이 없다.
영화는 이처럼 프레임 안에서 ‘보다 ’라는 것을 끊임없이 무력화시키는 여러 행위들은 자연스레 보다라는 것으로 탄생하는 권력 자체를 무주공산으로 만든다. 이 무주공산은 프레임안으로 끊임없이(아주 계산적으로) 침투하는 외부 사운드와 엇박자의 편집으로 이루어진다.
2.
편집으로 인해 뒤에 붙여진 장면들을 생각해 보자. 대부분의 인물들은 다른 장소에서 시작한다.
단순한 엇박이 아니라 뒤에 이어지는 쇼트들은 인물들을 프레임 밖으로 밀어내면서 만들어진 쇼트들이기에 관객들은 인물이 왜 그 장소에 갔는지 추론을 해야 한다. 관객 눈앞에 상영 중인 영화와 관객의 머릿속에 상영되는 영화- 두 편의 영화가 서로 맞물리고 움직이는 셈이다. 주인공이 관객에게 보여주는 서사보다 영화가 점프 컷을 통해 발생하는 프레임 밖의 힘은 관객으로 하여금 숨겨진 서사를 머릿속에 상상하게 만들고, 이를 통해 표면 뒤에 숨어 있는 권력의 움직임을 유추하는 방향으로 변형된다.
자연스레 끝에 다다랐을 때 기홍이 본 것의 무기력함은 관객에게도 그대로 전달된다.
과연 내가 본 것과 기홍이 본 것은 무엇인가? 보지 못한 것에 대한 서사는 철저하게 관객 본인들이 살아오면서 세운 고정관념으로 인해 채워지는 것일 텐데 그렇다면 이 영화의 방향은 열린 것인가 닫힌 것인가?
3.
그런데 사실 이 질문은 괴물에서 송강호가 수술실에서 명대사를 통해 내뱉었던 화두이기도 하다.
"사망자인데요. 사망을 안 했어요"
영화는 세계인가 아니면 영화는 세계의 일부분인가 라는 논제를 굉장히 합해 보이는 감성으로 표현한 영화. 다만 이 논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셨던 전 장관님(?)과 I am 봉준호 때문인지 이 영화는 이창동의 기생충 리뷰이며 합하게 보이지만 결국 클래식한 영화다.
사족
*'너와 나' 이건 '괴인'이건 정부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지금 현재 독립 영화감독들이 정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제대로 알 수 있다. 한쪽은 정부를 소거하고 박찬욱을 '정부'를 탈출하고.. 이와 반대로 브로커에서는 형사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