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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봄 Aug 05. 2022

중년, 아직 늦지 않았다

마흔 넘어 셋째를 낳고 다시 육아를 시작한 것처럼

“이제 내 나이 마흔둘. 별안간 시간이 빛의 속도로 흐르고, 요즘 유행하는 음악에 아무 감흥을 느낄 수 없다. 배가 나오기 시작하고 이곳저곳이 쑤시고 결린다. 그리고 갑자기 스포츠카가 생겼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중년의 발견》(청림출판, 2013)은 이와 같은 저자의 고백으로 시작된다. 저자 데이비드 베인브리지는 영국의 유명 논픽션 작가이자 생물학자로 이 책은 중년이라는 시기를 철저히 과학적 관점에서 분석한다. 책에 따르면 중년은 동물 중 오직 인간만이 가지는 시기로 신체적으로 노화하고 퇴화하는 때가 아닌 사회적, 정신적, 육체적 세계가 변화하는, 이른바 새로운 삶의 국면으로 들어가는 시기라고 한다. 보통 중년을 감퇴, 퇴화 등 부정적 시선으로만 보는 것과는 사뭇 다른 얘기다. 중년의 뇌는 일생에서 가장 생산적인 시기로 최대의 효율성을 보인단다. 중년은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보는 통찰력이 있으며 부분보다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지혜로운 시기라는 것이다.


내 나이 올해 마흔넷, 40대 초반도 아닌 중반, 틀림없는 중년이다. 90세까지 산다는 가정 아래 인생의 절반을 살았고 절반쯤 남은 시점,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바로 임산부와 여성을 위한 영양제를 개발하는 기업의 홍보로 마케팅 매니저가 된 것이다. 지금까지 했던 일과 달라 생소하지만 중년의 통찰력과 지혜로 헤쳐나가리라 다짐한다. 인생이 재미있는 것은 미래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에게 셋째가 찾아올 지도, 전혀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도, 미처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인생의 중반기를 지나는 시기, 바로 중년에 시작됐다.


여기서 친정 아버지 얘기가 빠질 수 없다. 아빠는 올해 일흔하나가 되셨다. 인생의 중년을 지나 노년기를 맞은 것이다. 아빠는 여전히 크고 건장한 체격이지만 젊을 적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머리숱이 눈에 띄게 줄었고 남은 머리카락은 희게 변했다. 하지만 아빠의 열정은 청년의 그것 못지않다. 우리 가족은 아버지가 은퇴 후 취미 생활을 즐기며 여유롭게 지내시리라 생각했지만 아빠의 계획은 달랐다. 그동안 해왔던 일과 전혀 무관한 새로운 일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아니고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에서 호텔 사업이라니.


아빠는 지난 2018년 여름, 몇 차례 고비와 위기가 있었지만 하노이에 한국인을 위한 비즈니스 호텔 ‘호텔 더 하노이’를 오픈했다. 당시 아빠의 나이 예순 하고도 일곱이었다. 우리는 아빠의 열정에 혀를 내둘렀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건 아빠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베트남을 오가며 사업을 하는 한국인들에게 입소문이 나며 호텔 사업이 천천히 궤도에 오르던 차, 코로나라는 거대한 쓰나미를 맞아 최근 어려움을 겪고 있다. 베트남에서 일하는 많은 이들이 사업을 접고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아빠는 여전히 하노이와 서울을 오가며 일에 매진하고 계신다. 가족들은 건강 등을 이유로 귀국을 권했지만 아빠는 일하는 즐거움이 곧 늙지 않는 비결이라 말씀하신다.


아버지를 보며 인생의 시계는 정해진 것이 아니라 각자 만들기 나름이라는 것을 느낀다. 최근에는 은퇴하는 60세를 일컬어 ‘액티브 시니어’라고 부른단다. 은퇴가 곧 끝이 아닌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김병숙 교수의 저서 《은퇴 후 8만 시간》에 따르면 한국인은 60세 은퇴 전까지 8만 시간 정도 일한다고 한다. 그리고 인생 2막인 노년기에도 비슷한 8만 시간이 주어지는 것이다. 이는 60세에 은퇴 후 100세까지 산다고 가정하고 하루 여가 시간 11시간 중 절반을 일할 경우를 가정해 산정한 결과다(은퇴 후 8만 시간 = 5.5시간×365일×40년). 이렇게 따지면 중년의 시기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어렵다는 건 투정이다. 실패가 두려워 시도조차 못 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양궁 선수들은 활을 쏠 때 일단 첫 화살을 당긴 후 어디에 맞혔는지 확인하고 다음 화살을 준비한다고 한다. 첫 번째 화살을 쏜 뒤 두 번째 활시위를 어디로 당길지 가늠하는 것이다. 화살을 나이로 치면 인간의 화살통에는 저마다 몇십 개의 화살이 담겨 있다. 첫 화살이 과녁에 제대로 꽂히지 않았다 해서 세 번째, 네 번째도 그러리란 법은 없다. 몇 번을 반복해 쏘다보면 결국 한 번은 명중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중년, 아직 늦지 않았다. 결과가 어찌 되든 일단 도전해보려 한다. 마흔 넘어 셋째를 낳고 다시 육아를 시작한 것처럼. 새롭게 시작한 일이 부디 좋은 결과를 맞기를, 과녁 한가운데에 명중하기를 빌어본다.



노산이어도 괜찮아! _ 김보영, 이희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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