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저 아기 상어 스티커 ○○가(둘째) 붙인 거예요? 진짜 잘 붙였다~."
첫째 아이가 둘째가 서랍장 여기저기에 붙여놓은 스티커를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보기엔 마구잡이로 붙인 건데 나름의 작품(?)처럼 보였나 봅니다. 온 마음을 다해 칭찬을 해 주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는데 왠지 모르게 찡했어요. 제가 가지지 않은 걸 첫째가 가진 듯해서요. 건강한 마음으로 잘 커주고 있는 첫째가 기특해 온 힘을 다해 웃어 보였습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칭찬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어떤 사람에겐 그럴 수 있지만 저는 그렇지 않더라고요. 그만큼 어려운 일도 없습니다. 이상하게 전 남이 저보다 잘하면, 제가 못하는 게 돋보기를 들이댄 듯 무척이나 커 보이더라고요. 굳이 비교할 필요가 없는데 말이죠. 그저 축하해 주면 되는 일을, 나는 왜 저렇게 못할까 하는 마음을 앞세울 때가 많아요. 겉으로 축하해주면서도 속은 말이 아닌 거죠. 참 못났죠.
아이를 키우며 제 어린 시절을 돌아보곤 해요. 나란 사람이 어떻게 커서, 지금의 내가 됐는지 탐구해 보기도 하죠. 나는 왜 남과 비교하며 자존감을 끌어내릴까, 내가 잘하는 것보다 그렇지 않은 것에 속을 태울까 같은 질문 말이에요. 이렇게 묻고 또 묻다 보면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하나 둘 연결되고 썰물에 모래사장이 드러나듯 그때의 감정이 얼굴을 드러내더라고요. 그러면서 알게 된 것들이 있어요.
어릴 적 저의 집에선 엄마보다 아빠가 다정하셨어요. 절 더 챙겨주는 쪽도 아빠였죠. 그렇다고 엄마가 못해줬다는 건 아니에요. 단지 많이 무뚝뚝하셨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도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잘 몰랐던 것 같아요. 근데 어린 저에겐 서운한 기억이 꽤나 많이 남아있어요. 학교에서 시험을 잘 봐도, 상을 받아도 칭찬에 인색하셨죠. "다들 잘했겠지", "시험이 쉬웠던 거 아니야"라는 말은 노력을 깎아내리는 것 같았거든요. 한 번이라도 "와, 우리 딸 잘했네", "열심히 했으니 결과가 좋았네"라는 말을 해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기억이 없어요. '원래 엄마 성격이 그렇지' 하고 넘겨보지만 서운한 건 어쩔 수 없죠. 굳이 남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것도 이런 어린 시절의 영향이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칭찬만은 잊지 말자고 되뇌죠. 그것도 구체적인 행동에 대한 칭찬이요.
칭찬도 제대로 해야만 힘이 더 커지는 것 같아요. "응 잘했어", "와 최고네"라는 표현은 기분이 좋을 순 있지만 오래 남는 말은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구체적인 칭찬이 중요하다고 육아 전문가들도 이야기 하나 봐요. 아이가 방 청소를 잘했다면 "정리정돈을 잘해서 방이 깔끔해졌네"와 같은 말이, 아이가 시험을 전보다 잘 봤다면 "저번보다 더 꼼꼼히 복습하더니 좋은 결과를 얻었네"처럼 구체적인 칭찬이 동기를 강화하는 것 같달까요. 굳이 육아 전문가의 말이 아니어도, 누구나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아이를 낳아 키워보기 전까진 어린 시절이 그렇게 중요한지 몰랐어요. 환경이 어떻든 알아서 잘 크는 사람도 분명히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런 이유로 '상황이 어쨌든 너도 알아서 잘 크라'고 강요할 순 없어요.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은 삶의 큰 줄기이고, 그걸 빼놓고는 그 사람을 얘기할 수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아이들의 어린 시절이 좋은 기억으로 채워졌으면 하고 바라요. 그러려면 저 역시도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 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