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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닌 Apr 07. 2022

너의 시간엔 내가 진짜 있었을까

 



"오늘은 '밤 산책' 가고 싶어요." 린이집에서 집으로 가는 차 안, 다섯 살 첫 아이가 뭔가 생각난 게 있단 듯이 말했다. 창밖에는 흐드러 벚꽃이 빠르게 스다. 이맘때였다. 까만 밤, 그 길하얗게 밝히던  벚꽃길을 손 잡고 걸었던 그날 말이다. 새하얀 봄의 한 조각 아이에게도 그때 기억을 끄집어낸 게 분명했다.


밤의 온도가 겨울을 지나 봄에 맞춰질 때 어둑한 밤에도 꽃길을 걷곤 했다. 벚꽃길었다. 유독 밤이 되면 더 깊어지고 신비로워지는 그 길이 좋아 아이를 데리고 찬찬히 걸었. 남들이 꽃놀이를 위해 일부러 찾는 거리가 집 가까이에 있기도 해서 늦은 시간은 문제 되지 않았다. 이번에도 못 할 이유가 없었다. 당연히 그러자고 답했다.


그러고 보니 정말 오랜만의 '밤 산책'이었다. 둘째를 낳고 1년 3개월간 휴직했다 막 회사로 돌아간 때라 집에 오면 그저 하루를 마무리하기 바빴다. 아이들 씻기고 재우고 밀린 일을 하다 보면 눕자마자 기절하듯 잠들었다. 아이와 몇 마디 못 하고 아침을 맞는 날도 잦았다. 어질러진 방을 급히 치우듯 살아내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그래서인지 첫째는 별 거 아닌 일에도 신나 했다. 집 밖에 나가자마자 라이트를 번쩍이며 굉음을 내오토바이 보고도 불빛이 예쁘다며 들뜬 리로 말했다. 5분쯤 걸어 꽃길에 다다라선 연신 폴짝 뛰었다. 아래에서 쏘아 올린 야간 조명 빨갛다 파래지고 노랗다 보얘지며 꽃길을 비췄다.


아이는 밤이 되니 꽃이 불빛을 낸다며 신기해했다. 빛을 따라 꽤 오래 걸었다. 힘든 것도 잊은 듯 작은 두 다리는 연신 종종댔다. '신기한 거리'의 밤이 유독 환했다. 벚꽃길을 벗어나 집에 닿을 때까지 아이 손을 놓지 않았다. 오랜만이라 더 그러고 싶었다. 4월, 아직 찬 밤의 기운에도 온기가 돌았다. 따뜻한 봄이다.


그동안 '시간이 없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아이가 둘로 늘고 일을 다시 시작하다 보니 '나만의 시간'에 대한 갈증에 목이 탔다. 그런데 짧은 밤 산책에도 한껏 신난 아이를 보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시간이 없다는 동안 내 아이의 시간에도 내가 없었던 아닐까. 매일매일 얼굴을 보고 사는 걸 온전히 함께한다고  없을 거다. 하루에, 한순간이라도 그 시간을 나눠야 서로의 시간에 의 흔적이 남는다.


'이제부터 남는 모든 시간을  위해 쓰겠어'라고 선뜻 말할 수 없는, 부족한 마다. 나는 아이들만큼이나 전히 내 시간이 중요한 사람이다. 그래야 끊임없이 힘을 비워내 사는 삶기운을 채워 넣을 수 있다. 그래도 너의 시간에 우리 조각들을 하나 둘 만들야지. 밤 산책끄집어낸 봄의 한 조각처럼, 저 먼 날에 네가 나를 문뜩 떠올릴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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