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Sep - 23 Aug
어느덧 10월 중순이다. 토론토에서 돌아온 지 두 달이 다 되어가고 있다. 날씨가 많이 쌀쌀해지니 토론토 생각이 많이 난다. 9월이면 단풍이 만개하고 10월에는 단풍이 하나둘씩 바닥으로 떨어져 겨울을 맞이하는 곳, 하지만 분명한 사계절이 존재하는 곳. GTA에 살았기 때문에 모두가 아는 CN 타워 있는 토론토 중심에 살았다고 할 수 없지만 광역 토론토 속에 살았기에 편의상 모든 곳을 토론토라 칭하며 나의 1년간 토론토 생활을 기록하려고 한다.
밴쿠버에서 토론토로 9월 중순에 주이동을 감행했다. 첫인상부터 나와 맞지 않음을 인지했던 캐나다에서 좋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자리를 잡나 했는데 서쪽 끝에서 동쪽 끝으로 이동해야 하니 너무도 무섭고 불안했다. 다시금 사람을 사귀고 정착해야 한다는 사실에 울적했지만 아직 겨울이 오지 않은 토론토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꽤 많이 가지고 있었다.
토론토에 도착하고 이틀 지나서 나는 노스욕으로 향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굳이 거기에 있는 Service Ontario를 예약했다. 노스욕은 토론토 다운타운에서도 지하철로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라 그냥 다운타운에서 해결했어도 될 일이었는데 밴쿠버 다운타운을 생각하고 예약했던 것 같다. 도착한 토론토는 정말 거대했다. 캐나다 제1의 도시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원체 땅덩이가 큰 나라이기에 모든 게 큼직했는데, 밴쿠버는 굉장히 작은 편에 속했다. 일 처리를 모두 끝내고 도서관을 들려서 다운타운으로 내려왔다. 모두가 사진 찍는 Nathan Phillips Square에서 나 역시 사진을 남겼다.
처음 맞이한 다운타운은 바다가 없어 속상했지만 바다만큼 넓고 큰 호수가 있었고, 밴쿠버에는 없는 온갖 것들이 즐비해 있었다. 스탠리 파크는 없지만 다운타운 곳곳에 공원도 많이 있었고. 해가 사랑하는 서쪽 사람들에 비해 동쪽 사람들은 차가운 듯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이 정도면 친해질 수 있겠다 싶은 곳이었다. 그리고 내 예상은 적중했고.
운 좋게 사람을 한 명 사귀게 되었고 그들의 도움으로 편하게 나이아가라를 구경했다. 도착한 지 4일째 되던 날이었다. 3시간가량을 차로 이동해 도착한 나이아가라는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가면서 사실 걱정이 많았다. 나이아가라는 날씨가 중요한 데 가는 길이 많이 흐려서. 하지만 다행히 날씨가 매우 좋았다. 무지개를 보기 딱 좋은 날씨. 무지개가 떴으면 하는 마음이 컸는데, 앞으로의 토론토 생활 걱정 말라며 무지개가 나를 향해 활짝 피어났다. 멀리에 있어도 물방울이 사방으로 튀길 정도로 어마어마한 사이즈의 폭포가 떨어지는 소리와 사람들이 감탄하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미국 버팔로 쪽에서 바라보는 폭포보다는 캐나다 쪽에서 바라보는 폭포가 더 아름답다는 말을 모두가 해서 미국 쪽이 궁금하긴 했지만 다리 건너 넘어가지는 않았다. 굳이 가지 않아도 알 것 같아서.
싸가지고 간 유부초밥과 동행자 분이 싸 온 김밥을 먹으며 평온한 시간을 보냈다. 관광지답게 사람이 굉장히 많았으나 아무렴 상관없었다. 오랜만에 여행자의 태도로 자연을 한 몸에 느끼니 그저 기분 좋았다. 약간의 단풍들과 푸른 하늘, 떨어지는 물소리가 감상에 젖게 만들었다. 앞으로의 토론토 생활해 낼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에 조용히 웃었다.
나이아가라 다녀와서 곧바로 새 회사에 출근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매일 출퇴근 길에 동네를 구경했다. 꽃놀이는 안 가도 단풍놀이는 꼭 가는 내게 이곳은 천국과도 같았다. 물들어 가는 토론토는 매우 예뻤다. 국기에 왜 단풍이 들어가는지, 사람들이 왜 단풍국이라고 부르는지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하루하루 나무들이 색동옷을 입는데 걸음을 멈춰서 사진 찍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이 나를 둘러싸는 그 순간들이 너무 행복했다. 해가 뜨면서 더 환하게 보이는 단풍들도 해가 지면서 가을 특유의 분위기를 뿜어내는 단풍들도 모두 너무 예뻐서 뭐 하나 고를 수가 없었다. 그 맘 때쯤 핸드폰 속 사진첩에는 단풍 사진이 한가득이었다.
바쁘게 한 달을 보내니 할로윈이 코 앞이었다. 단풍들도 바닥에 많이 떨어졌고, 곳곳에 할로윈 데코가 보였다. 한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모습이 가득하니 신기하고 정말 외국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달까. 할로윈 당일 밤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밤늦게 집으로 들어가는데 동네는 평소와 다르게 환했다. 해가 완전히 져서 캄캄해진 밤, 집들은 불을 환하게 켜놓고 아이들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은 부모님을 동반하고 집들의 문을 두드려 외쳤다. Trick or Treat! 그들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아이들은 부모님과 함께 세트로 분장했던 아이들이다. 꽤 많았는데 마블도 있었고 디즈니 영화에 나오는 등장인물들도 있었다. 귀여워서 웃음이 절로 나왔다.
10월 31일은 다른 의미로도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잘 다니던 회사에서 내게 노티스를 줬다. 캐나다는 3개월 동안이 Probation이라고 해서 수습 기간이다. 별말이 없어서 계약 제대로 하고 정직원으로 다닐 수 있겠다 싶었는데 회사 상황이 안 좋아져서 내게 다른 회사를 알아보라고 말해왔다. 애초에 나를 뽑았을 때부터 회사 사정이 기울고 있었는데 나를 굳이 뽑았단다. 화가 났다. 물론 회사가 완전히 맘에 들지 않아서 다른 회사를 찾아보고 있기는 했지만 당장 실직자가 된다는 건 굉장히 무서운 일이었다. 한 달 전에 나이아가라에서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지었던 그 웃음은 내게 사라져 버렸고 걱정에 며칠을 울었던 것도 같다.
10월에도 다운타운을 종종 방문했었다. 혼자 카페 가서 시간을 보냈다. 오래된 특별한 친구를 만나기도 했었고, 사람을 사귀기도 했었다. 새로 사귄 친구는 한참 힘들었던 내게 큰 힘이 되었다. 사방이 지뢰밭 같아 불안함에 울다가 잠들던 그 밤들을 지워주었다. 어느새 나는 불안한 미래를 코앞에 두고도 웃을 수 있었다. 토론토 토박이었던 친구 덕에 걸어서 토론토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커피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십분 활용해 다운타운에 있는 유명하다는 카페는 다 돌아다녔고, 그 시간들이 소중해졌다. 걱정되는 많은 것들을 잊게 해 줬고 붙인 것 같으면 떨어져 나가는 정을 다시금 토론토에 붙이게 해 줬다. 그 친구와 함께 하는 시간에는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의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재고 따진 것도 다 잊고 특별한 거 없이도 웃고 떠들 수 있는 그런 내가 되어버린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딱 이맘때 만난 친구라 최근에 자꾸만 생각난다. 시절 인연이라고 하는 편이 맞겠지. 마냥 좋고 행복했던 것만은 아니다. 싸우기도 많이 싸웠고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것들도 투성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가장 힘들 때 큰 힘이 되어준 이기에 좋은 것만 기억한 채 뒤로하기로 했다.
한 자릿수의 기온은 10월부터 이미 시작되었으나 이상하게 눈이 오지를 않았다. 눈 천국이라는 온타리오에 눈이 안 오는 게 이상했다. 왜 안 올까 목 빠지게 기다린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나는 아이처럼 신났다. 눈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캐나다에서 맞이하는 첫눈이라는 그 이유 하나 때문에. 나는 밴쿠버에서 야무지게 사 온 장화를 신고 주인아주머니와 산책에 나섰다. 아주머니께서 겨울 신발 꼭 필요하다는 말에 사야겠다고 다짐하며 뽀드득 눈을 밟았다. 집 근처에 엄청 큰 소나무가 있는데 소나무에 눈이 걸리니 그게 장관이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계절을 이리 한눈에 볼 수 있음에 감사했다. 산책 끝나고 눈을 맞으며 자쿠지에 들어가 반신욕을 하는데 그날의 그 온도와 느낌은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다. 하나도 춥지 않았던 정말 이상하면서도 아름다웠던 토론토 긴 겨울의 시작이었다.
첫눈은 다음날까지 이어졌다. 눈이 자주 오는 곳답게 길은 금세 치워졌다. 첫눈을 함께 즐기고 싶어서 다운타운을 향했다. 세상 모든 것들이 하얀 옷을 입고 있는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부는 바람이 세차서 피부가 찢어지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지만 바람이 잠잠해지면 포근했다. 푹신푹신한 눈이 자꾸만 걷고 싶어 져서 산책을 하는데 할로윈 데코는 어디 갔는지 싹 사라졌고 반짝이는 불빛들이 집집마다 걸려 있었다. 사람들이 걷지 않아 잔뜩 쌓인 눈을 밟으며 크리스마스 장식을 구경하다 보니 추운 것도 잊혔다. 걸으면서 쌓인 깨끗한 눈이 보이면 뭉쳐서 던지기도 하고, 어린아이로 돌아간 시간이었다. 눈이 오면 하늘이 흐려지는 한국과 다르게, 눈이 내려도 금방 푸른 하늘을 보여주는 캐나다가 신기했다. 물론 쌓인 눈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고 눈이 조금 미워졌지만 겨울 신발을 사면 괜찮겠지 싶었다. 실직자 신분에 불안했지만 행복했다.
캐나다의 크리스마스는 내가 기대했던 크리스마스와는 조금 많이 달랐다. 내 첫 해외 크리스마스는 유럽이다 보니 유럽과 같은 분위기를 기대했지만 이곳은 달랐다. 장식도 유럽에 비해서 화려하지 않고 유럽보다 뭔가 자본주의가 짙게 깔린 느낌이랄까. 사실 나는 크리스마스를 뉴욕에서 보내고 와서 캐나다에서 보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같은 북미니까. 그럼에도 할로윈이 지난 시점부터 그다음 해 2월까지 크리스마스 장식을 길거리에서 볼 수 있었다. 시린 겨울 이상하게 나는 크리스마스 장식만 보면 포근하고 따뜻했다. 그리고 그 사이 나는 새로운 직장을 구했다. 스타벅스, 오랜만에 일하는 거였지만 했던 경험이 있어 쉽게 그 속에 녹아들 수 있었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이 만나는 사람들과 묘하게 들뜬 연말을 즐기며 나는 22년과 작별했다.
질릴 때까지 눈이 내린다는 말이 맞았다. 눈은 끊임없이 내렸고 나는 그 사이 두 번을 넘어져 다쳐서 겨울 신발을 장만했다. 비싼 가격에 고민했지만 병원비보다는 싸다 싶었다. 평생 이렇게 눈과 함께한 사람들은 지겹다며 고개를 저었지만 나는 눈이 내리는 날들이 매번 좋았다. 캐나다 살면 부지런해야 하는데, 봄에는 집 앞 길가를 꾸미고 여름이면 잔디를 계속 깎아야 하며 가을이면 떨어진 낙엽을 쓸어야 하고 겨울이면 눈을 치워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종종 집 앞 눈 치우는 걸 도왔다.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눈사람도 만들고 눈에 별안간 앉아도 보고. 캐나다의 눈은 폭신폭신했다. 한국 보다는 눈이 좀처럼 뭉쳐지지 않아서 매번 눈사람을 만들 수는 없었지만 그 누구보다도 이 눈들을 즐겼다. 나이고 뭐고 다 잊고 쌀 포대 꺼내다가 언덕을 썰매 타듯 내려가고 싶었지만 차마 어린아이들 사이에 낄 수 없어서 꾹 참았다. 어느 날은 캐나다 타이어에 썰매가 판다는 소리를 듣고 하나 장만할까도 생각했었지. 눈이 와서 흐린 날들이 지속되어도 날씨가 오락가락해도 나는 전혀 우울하지 않았다. 겨울 되면 우울에 잠식되어 힘들다던 사람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웃는 사람이었다. 좋은 사람들 덕이겠지. 결코 눈 때문만에 그 겨울이 행복했던 건 아니었을 것이다.
2월, 나는 여전히 구직자였다. 스타벅스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내가 원하는 건 오피스 잡이었다. 22년 10월에 노티스를 받았을 때부터 면접을 꾸준히 보고는 있었지만 비자 서포트라는 산을 넘어가기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캐나다 겨울은 눈만 내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비도 종종 내려서 겨울 신발이 아닌 장화를 꺼내 신어야 하는 날도 있었다. 궂은 날씨에도 면접 보러 갈 때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차가 없는 나는 뚜벅이었으니까. 그런 우울감이 나를 좀먹을 때면 귀신같이 나를 끌어올려주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어서 버틸 수 있었다.
2월의 끝이 가까워질수록 해가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졌다. 눈이 내려도 녹는 속도가 빨랐다. 물론 밤이 되면 다시 차게 얼어버렸지만. 내 매일도 같았다. 해가 떠 있는 시간이면 우울감을 극복하는듯했지만, 해가 지는 밤이면 생각이 많아져 여러모로 불안하고 우울해졌다. 매일을 초 긴장 상태로 살아야 했고, 내가 가장 힘들 때 든든하게 내 곁을 지켜줬던 그도 도움이 되질 않았다. 우리 사이에는 서로 좁히지를 못하는 꽤나 넓은 간극이 존재했고 내 삶만으로도 충분히 버거웠던 나는 내가 가장 소중했기에 안녕을 고했다.
2월 말 눈이 Snow storm으로 눈이 펑펑 내리고 바람마저 강하게 불었던 날, 모든 학교들에 휴교령이 내려지고 회사원들이 출근도 못했던 날, 마지막 희망이었던 회사에서 최종 탈락 노티스를 받았던 바로 그날, 나는 캐나다에 와서 처음으로 크게 아팠다. 너무너무 아파서 아픔을 느낄 수 없도록 제발 나를 기절시켜 달라고 누군인지도 모를 이에게 빌고 또 빌면서 며칠을 보냈다.
3월이면 한국에서 봄이 한껏 다가온 걸 느낄 수 있지만, 캐나다에서는 아직 겨울이다. 종종 눈이 내렸지만 빈도수가 잦지는 않았고, 금방 맑아지는 하늘도 자주 볼 수 있었다. 여전히 추웠고 열심히 했음에도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사실에 마음이 너무 힘들었지만, 가까이에서 나를 위해주는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하루하루에 집중하면서 이 캐나다를 드디어 즐겨보자는 마음으로 최대한 돌아다녔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혼자 무엇을 하는 것에 쉬이 적응했고, 회복 탄력성도 좋은 나라서 며칠 아팠던 건 아주 오래된 일인 것처럼 지냈다. 종종 방심하면 찾아오는 어마 무시한 감정들이 있었지만, 남은 시간 동안 여러 곳을 구경해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토론토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그리고 3월 끝자락에 푸른 이파리들이 나무에 생겨나기 시작했다. 봄이 오는 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토론토에도 봄이 찾아왔다. 세상이 푸릇한 색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고 길가에는 꽃들이 피어났다. 나는 생전 하지도 않던 꽃놀이를 계획했다. 친구들과 함께 동네 근처에서부터 벚꽃 명소로 유명한 하이파크까지 다녀왔다. 기상이변으로 갑자기 날이 30도까지 올라갔던 날은 한 여름옷을 입고 토론토도 다녀왔다. 눈꽃도 충분히 예쁘다 생각했었는데 길목마다 피어난 꽃들이 더 예뻤다. 아주 작더라도 어여뻤다. 하얀색의 눈보다는 여러 색을 가진 꽃들이 마치 수고했다고 내게 말을 건네는듯했다. 모든 것에 새싹이 돋고 꽃이 피는 이때 나는 지난 힘겨움을 모두 떨쳐낼 수 있었다. 피고 지는 게 반복되는 나무와 꽃들처럼 내게도 이제 피어날 무언가가 싹트기 시작했다고 생각했다.
그 무렵 나는 다운타운에서 맘에 쏙 드는 곳을 발견했다. 사실 겨울에도 지나친 적 있던 곳인데 눈으로 뒤 덥혀 매력을 못 느꼈던 것 같다. 카페와 맛있는 빵집이 즐비해있는 곳. Ossington. 공허했던 내 마음을 살찌웠던 곳이다. 나는 캐나다의 봄을 만끽하며 반가운 마음으로 피어나는 모든 것들을 맞이했다.
봄과 여름의 사이에 놓인 나는 더욱더 매일을 즐겼다. 눈앞에 놓인 모든 것들이 아름다웠다. 맑은 하늘도 푸르른 나무들도 동네 사람들이 꾸민 정원의 모습도 모두. 날이 따뜻하다 못해 덥다고 느껴졌던 날은 집 뒷마당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술도 마셨다. 그 모습을 본 주인 아주머니는 선베드를 꺼내주셨다. 마음껏 즐기라고. 사진을 많이 남기고자 노력했다. 이 아름다운 것들을 곧 떠나야 한다는 마음에 눈에도 카메라에도 최선을 다해 남겼다. 좋아하는 야구도 보러 갔었고 호수 변에 가서 피크닉을 즐기기도 했다. 매 순간이 소중했고 행복했다. 즐기자는 마음 하나만 두고 모두 내려놓으니 작은 하나도 소중했다. 조금 남아있던 우울감도 모두 사라지게 한 5월이었다.
1년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6월이 찾아왔다. 바로 내 생일이 있는 달이라서. 6월의 토론토는 매우 더웠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대게 30도를 넘지 않는 토론토지만 몇 년 전부터 더워졌다고 들었다. 퇴근길에는 늘 물을 트렌타 사이즈로 얼음과 함께 담아서 퇴근했고 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가는 길이 너무도 멀게만 느껴졌다. 마침내 생일이 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축하해 줬다. 주인집에서 케이크와 맛있는 저녁도 사주셨고, 그리웠던 밴쿠버에 가서 보고 싶던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도 보내고 여름이 바짝 다가온 밴쿠버도 즐겼다. 토론토에 나를 사랑해 주는 이들과도 신나는 시간을 보냈고. 다만 흘러가는 시간이 느껴질 때면 가끔 울적했다. 곧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럴수록 최대한 매일을 즐겨보자 다짐했고 실행에 옮겼다.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고 그렇게 6월은 끝나갔다.
오지 않았으면 했던 토론토의 온전한 여름이 찾아왔다. 캐나다 사람들은 좋은 날씨를 매일 느낄 수 있다는 이유로 여름만 기다리며 사는데 나는 이 여름이 그다지 기다려지지 않았다. 직장을 구하고 비자를 서포트 받았다면 생각이 달라졌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니까. 떠나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니 맑은 날에도 불구하고 매일 밤 서글퍼졌다. 이제야 온전히 사랑하게 된 곳을 떠나야 한다. 맞지 않는 다며 첫날부터 불만이었던 캐나다에 드디어 마음을 붙이게 되었는데 떠나야 한다니. 이 아름다운 풍경들을 이제 매일 눈에 담을 수 없다는 것과 나를 아껴주는 이들을 떠나야 함에 가끔은 몰래 눈물을 훔쳤다.
처음 토론토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문했던 나이아가라를 다시 방문했다. 그 무지개는 여전했지만 그때와는 다른 이야기를 내게 건네는듯했다. 나의 앞날을 또 다른 곳에서의 한 발을 응원하는 것 같았달까. 토론토 아일랜드에 가서 지는 해 아래 빛나는 윤슬과 우뚝 솟아 있는 CN 타워를 가만히 바라보며 나는 토론토에게, 그리고 캐나다에게 작별을 고했다. 영원한 이별은 아니지만 내가 돌아올 때까지 이곳에서 나를 기다려 달라고. 다시 돌아왔을 때, 따뜻하게 나를 맞이해 달라고 그렇게 말하며.
떠나는 비행기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미웠던 캐나다에 이대로 남고 싶어서. 이 여행을 끝내고 다시 돌아갈 곳이 한국이 아닌 캐나다였으면 하는 마음에.
안녕 토론토. 다사다난해지만 그럼에도 내게 좋은 추억으로 남아주어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