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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몽이 쓰다 Sep 09. 2023

지금 내 가슴속 작은 불씨는 무엇인가?

잊고 있던 나의 불씨를 찾다.

수화에 미쳐 있었던 때가 있었다.

대학시절에 모든 열정을

'수화'로 시작해서 '수화'로 끝났다.


밤. 낮. 장소 가리지 않고

공연준비를 했고,

농아인 친구를 더 이해하기 위해

왕복 5시간의 자원봉사를 한 달에 한 번씩 다녔다.


온통 머릿속은 '수화'의 연결고리였다.


사회복지 전공이었던 나는

직업군으로 선택하기엔

사회복지가 적성에 맞았지만

사회복지의 정서에는 맞지 않았다.


음성 꽃동네에서 중증 치매 어르신들을 돌보며 나를 엄마로 딸로 남편으로 대하던 분들의 마지막을 목격하며 삶의 허무함과 가슴 무너짐을 경험했고 사회복지관에서 사회취약계층의 가정방문을 하며 마음이 단단하지 못한 나는 그들에게 동화되어 그들의 삶이 내게 고스란히 흡수되었다.


백방으로 돕고 싶었지만,

내가 나를 지켜 내지 못해 많은 날을 눈이 짓무르도록 눈물을 흘렸다.


지역아동과의 상담에서 나는 아이의 평탄하지 못한 삶에 아이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아주 큰 잘못을 범했다.


사회복지사로서 나는 실격이었다.


그 후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회복지를 떠났다.

아니 발도 들여놓지 못했다는 것이 맞겠다.


너무 벅차게 행복하며 소중했던 시절

동시에 삶의 양면성을 들여다보게 된

평생 가슴에 안고 갈 뜨거웠던 학창 시절을 뒤로 한채


안정적인 직장에 취업을 하고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누리며 남부럽지 않은 20대를 보냈다.


그러다

난 정말 이대로 살아가도 되는 것인가?

이렇게 무료하게 따박따박 월급 받고 살아갈 것인가?

이런 생각들로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 하고 싶었다.

꼼꼼하고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하고

공감능력 뛰어나며

내가 알고 있는 것

갖고 있는 것

모두 퍼 줄 수 있고

남녀노(소-는 이 와중에 나랑 안 맞음) 누구와도 대화가 가능한

나의 능력을 어디에 발휘할 수 있을까?


가장 행복한 날을 함께 할 수 있는 '웨딩플래너를 해 볼까?'

어쩌면 청각장애인들의 결혼식을 내가 도울 수 있을지도 몰라!


삶의 어두운 면만 생각하지 말고

그들이 갖아 행복할 때 만나자!!

라는 결심이 서는 순간.......


미련 없이 탄탄대로였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웨딩플래너'로 전향했다.


내 입지가 굳혀져 가고

한국웨딩플래너협회 교육팀 소속으로 신입플래너들을 교육하며

외부로 강사를 나가고 있을 때쯤


계획했던 나의 일들을 시도해도 될 것 같았던

그 시점에서

꽃딸을 임신하게 되었다.


열 달의 입던.

6년간의 독박육아로

나도.

직업도.

나의 소명감 있었다 수화도


그렇게 잊혀 가고 있었다.


내 전부였던 수화가

이제는 한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방송에 나오는 수화통역이나, 공공장소에서 청각장애인들의 말하는 손을 보고 있으면 눈길이 가고, 많이 잊었지만, 간단한 대화를 엿보는 정도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저 그렇게 살고 있었다.



대학로에서 우연히 관람하게 된 청각장애인 부스

꽃딸이 지화를 배운다.


ㄱ ㄴ ㄷ


대충 보고 따라 하는 줄 알았는데

손 사진을 보며

자기 이름이라며 반겨한다.



덩달아 잿빛 사진 한 장이 떠오른다.

가슴에 아련한 열정도 피어오른다.


꽃딸을 통해 나를 보았고

가슴이 뛰었다.


구체적으로 떠오르지는 않지만,

무엇인지 알았다.


막연하지만 설레었다.




누구나 가슴에 작은 불씨 하나를 갖고 살아간다.



로는 희미해져 느껴지지 않을 때도 있지만

조금만 나의 숨결을 불어넣으면

다시 반짝하고 튀어 오른다.


나의 가슴속 작은 불씨는

수화.

청각장애인이었나 보다.


한동안 사그라졌던 나의 불씨를

오래된 일기장에서 발견하고

다시 뜨거움이 차 올랐다.



아직 남아 있는 나의 불씨를 타오르게 할 것인가

새로운 불씨를 싹 틔울 것인가.............



나의 나침판은 아직도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가?

오늘 밤 내 손 위에 올려진 흔들리는 자침을 오래도록 들여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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