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가 남자라는 이유로 심각성을 잃었다
나랑 남자친구는 만난 지 100일 된 기념으로 대마도에 다녀왔었다. 우리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었고, 남자친구는 우리의 다정한 모습을 담은 영상을 유튜브에 업로드하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상한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 댓글을 쓴 사람은 몇 년 전부터 남자친구에게 집착한 사람이었고, 한동안 잠잠하더니 또다시 이렇게 이상한 말을 하며 남자친구 앞에 나타났다.
(남자친구는 몇 년 전 그녀를 스쳐 지나가듯 모임 장소에서 두 번 보았고, 대화 한 번 제대로 나눈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검색을 통해 알아낸 남자친구의 트위터로 이상한 연락과 함께 집착을 했다고 한다.)
남자친구의 트위터, 블로그, 유튜브 계정을 알고 있는 그녀는 어떤 채널을 가리지 않고 모든 곳에서 나타나 알 수 없는 말을 뱉어내며 남자친구를 명예훼손 하고, 우리를 조롱했다.
남자친구는 본인뿐만 아니라 나까지 피해를 입게 된 것에 그녀가 선을 단단히 넘었다며 분노했고 그렇게 경찰에 신고하게 되었다.
남자친구가 경찰에 신고를 했을 때 여자 경찰관의 태도는 참으로도 실망스러웠다. (왜 그런 반응을 했을까? 남자가 스토킹 피해자인 게 장난 같았을까?)
전화를 받은 그 여자 경찰관은 “그런 전화 많이 받아요, 오늘 하루에도 몇 번을 받았어요.” 라며 심드렁하게 대꾸를 했다.
남자 여자 분쟁이 일어나는 것을 싫어하는 나지만, 남자가 스토킹 피해자인 게 그렇게 대수롭지 않은 일인가?
스토킹 피해 전화를 많이 받는다면 이건 더더욱 심각성이 있는 문제이지 않은가? 우리나라 스토킹 문제가 심각하게 여겨진 게 불과 몇 년이 안 되기는 하지만 스토킹 피해자를 ‘별 일 아닌 것’처럼 대하는 게 이상하다.
꼭 스토킹을 당하던 피해자가 스토킹범한테 눈에 보이는 신체적인 피해를 입어야만 큰 문제가 되는 것일까?
(눈에 안 보이는 정신적 피해를 대수롭게 여기고, 신체적 피해가 일어나기 전에 큰 일을 막을 수 있었더라면 지금처럼 이렇게 하늘의 별이 된 사람이 많지는 않을 듯한데 말이다.)
남자친구가 스토킹 당했다고 했을 때 남자친구 주위 반응은 “인기 많네”였다. 이게 말이 되나?
스토킹 피해를 당했는데 그저 인기가 많다니…
남자친구는 이 피해로 인해 긍정적이던 성격이 부정적으로 바뀌었고 살아온 인생 중에서 제일 힘든 시간을 보내었다. 1년 반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도 가해자를 생각하면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했는지’에 대해 억울해하며,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없음에 분통이 터져한다.
미국은 총기 허용이 되어 있는 국가로 내 몸을 지키기 위해 총기 사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내 몸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게 없다. 만약 상대방이 나를 공격하더라도 상대방이 더 많이 다쳐버리면 ‘과잉방어’로 오히려 내가 가해자가 될 수 있다.
특히 이번 사건은 가해자가 여자이고, 피해자가 남자이지만 어떠한 방어 태세를 취하다가 여자가 다칠 경우에는 남자가 가해자가 될 수 있는 상황이다. (참나..)
어찌저찌 수사가 진행되었고 우리는 계속해서 그녀의 새로운 댓글과 글을 캡처하여 담당 수사 경찰관분께 전달해 드렸다.
가해자는 우리 사진을 캡처하여 그녀의 인스타그램에 우리를 조롱하는 문구와 함께 업로드하기도 하고, 남자친구 블로그에 찾아와 사실이지도 않은 말들을 내뱉으며 명예훼손을 하고, 유튜브 댓글에서도 조롱과 명예훼손의 말을 서슴없이 적어댔다.
수사 역시 쉽지가 않았다. 가해자의 ‘인권’ 역시 중요한 나라이기 때문에 스토킹범의 신상 정보를 쉽게 파악할 수 없었고, 법원에서 위치 추적도 허용해 주지 않아 경찰관분들이 맨땅에 헤딩하듯이 여기저기에서 오랫동안 기다리며 많은 시간을 지체하여 가해자를 잡아야 했다.
1년이란 시간이 걸렸고, 재판에 넘겨진 그녀는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선고 당일 그녀는 남자친구 블로그에 찾아와 ‘합의하고 싶으면 연락해라’라며 전화번호를 남겨 두었고, 바로 글을 삭제하더니(법원의 접근금지 명령 위반), 어이없게도 항소 신청을 했다.
재판 기록을 보니 반성문까지 써서 법정에 제출했던데, 정작 피해 당사자인 내 남자친구에게는 그 어떤 사과 한 마디를 한 적이 없다. 심지어 선고날에도 합의하고 싶으면 연락해라라는 반성의 기미가 전혀 없는 말투로 글을 남기면서 자신의 처벌만 어떻게든 줄이려고 했다. (처벌이 싫었으면 처음부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으면 됐는데 말이다.)
한 사람의 인권과 삶을 박살 낸 가해자는 뭐가 그렇게도 뻔뻔한지 모르겠다. 이전부터 법원에서 연락이 왔고, 그녀의 국선변호사 측에서는 합의의사를 여러 번 물었다. (남자친구는 절대로 합의할 수 없다고 정당한 처벌을 간곡히 주장했었다.) 한 사람의 인권을 무참히 짓밟은 가해자도 국민이라고 국민세금으로 운영하는 국선변호사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니 … 이게 옳은 일인지 모르겠다.
심지어 남자친구 말고도 이전에 또 다른 피해자가 2명 더 있었는데 그분들은 신고까지만 이루어졌고, 길어지는 시간과 스트레스로 고소를 취하했다고 한다.
아직 항소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으로 다음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이전보다 죄질이 가볍게 여겨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남자와 여자의 문제가 아닌, 피해자와 가해자로서 가해자 인권과 미래보다는 피해자의 인권과 삶에 더 초점이 맞추어진 판결이 내려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