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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g satisfied Jun 25. 2024

24'06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예고편이 공개됐을 때부터 꼭 보고 싶었던 작품을 얼마 전 친구와 심야 영화로 보고 왔다. 시작부터 엔딩크레디트가 끝까지 올라갈 때까지 숨죽이며 영화를 봤다. 영화 제목인 '존 오브 인터레스트(The Zone of Interest)는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를 둘러싼 40 제곱 킬로미터 지역을 일컫는 명칭이다. 이 영화는 바로 이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 살던 한 독일 가족의 삶을 통해 유대인 학살을 고발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회스네 가족이 사는 저택의 정원

영화는 유대인 학살의 잔혹함이나 처참함을 단 한 순간도 시각적으로 보여주지 않지만, 그 어떤 영화보다 유대인 학살의 잔인함, 폭력성, 비인간성을 잘 보여준다.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아름다운 영상미를 보여준다. 잘 가꿔진 아름다운 정원, 강가에서의 평화로운 피크닉, 고급 가구와 식기류로 채워진 저택, 그리고 이 풍요로움을 만끽하는 독일인 장교 루돌프 회스 가족. 하지만 이들을 둘러싼 소리는 고통과 인간의 잔혹함으로 가득 차 있다. 저택 옆 수용소에서는 총소리, 윽박지르는 소리, 비명소리, 기차소리, 기계음, 폭발음이 끊이지 않는다. 더없이 풍요롭고 아름다워 보이는 회스네 가족의 삶과 대비되어 들리는 고통의 소리는 인간의 잔혹함을 더없이 적나라하게 느끼게 해 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듣는' 영화다. 관객은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끊임없이 들려오는 고통의 소리를 견뎌내야 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힘들었다. 아름다운 정원 뒤 옆 수용소 굴뚝에서 쉬지 않고 나오는 시체 태우는 연기와 끊이지 않고 들려오는 총소리와 비명은 영화를 보는 내내 역겨움을 유발한다. 


회스 가족의 평화로운 한 때(왼), 저택에서 식사를 하는 헤트비히 부인(오)

익숙해질 수 있는가? 영화 초반에 마주한 아우슈비츠의 소리가 너무 충격적이었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고통의 소리에 익숙해지지 못한 나는 그 속에서 아무 일 없다는 듯 평화로운 일상을 유지하는 회스 가족이 낯설게 느껴졌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이 떠올랐다. 아렌트는 현대인의 죄를 무사유에서 찾는다. 나의 생각과 행위를 타인의 관점에서 사유하지 않는 것은 죄가 될 수 있다.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자기 생각과 행위의 의미를 타인의 관점에서 사유하지 못한다면 자기도 모르게 죄를 저지를 수 있다. 

영화 속 회스 가족은 악의 평범성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들은 총소리와 비명 소리를 배경으로 호화로운 생활을 이어간다. 영화 내용 중 회스의 아내인 헤트비히가 모피를 입어보며 흡족해하는 장면이 있다. 이 모피는 새것이 아니고, 수용소에 끌려와 희생당한 유대인의 압류당한 모피다. 수용소에 끌려와 강제노역을 당하거나 죽임 당했을 모피 주인을 생각하면 쉽게 입기 힘든 옷이다. 그런데 헤트비히는 모피를 입고 흡족해한다. 그리고 주머니 속에 들어있던 주인 모를 립스틱까지 꺼내 마치 화장품 가게에서 쇼핑하듯 발라본다. 이 장면은 창문 너머로 아득하게 들려오는 총소리와 신음소리로 채워진다. 기괴스러운 장면 중 하나다. 

수용소로 끌려간 유대인의 압류품인 모피를 입어보는 헤트비히 부인

그렇다면 나는 정말 익숙해지지 않았나? 나는 이미 회스의 가족처럼 타인의 고통에 익숙해져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전쟁을 나와는 독립적인 국제적 이슈로 바라본다. 아침의 나는 뉴스를 보며 그들을 잠시 걱정하고, 오늘 점심을 뭘 먹을지, 이번 주말에는 어느 카페를 가고, 다음 여행은 어디를 갈지 고민한다. 영화 초반부, 회스 부부가 잠자리에 들기 전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다. 끊이지 않는 총소리를 배경으로 회스 부부는 지난 이탈리아 온천 여행에서의 행복했던 시간을 이야기한다. 헤트비히는 행복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깔깔거리고 웃는다. 분명 행복한 웃음인데 소름 끼치는 웃음이었다. 과연 나의 웃음은 헤트비히의 웃음과 얼마나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영화는 나치의 만행을 고발하는 영화가 아니다. 영화감독 조너선 글레이저는 오스카 시상식 수상소감에서 이 영화를 통해 '그들이 그때 무엇을 했는지 보라'를 말하고자 한 게 아니라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보라"고 말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사진출처: cgv 존 오브 인터레스트 영화 정보 (https://moviestory.cgv.co.kr/fanpage/mainView?movieIdx=88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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