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다 러브하우스 때문이다.

대학 전공과 직업의 괴리

by 키풀


'따라 따라 따~' 익숙한 BGM이 흐르며 문이 열리고 재 단장한 집을 보여주는 <러브하우스>라는 방송이 있었다. MBC에서 꽤 오랫동안 방영한 인기 예능으로 눈물 없이 보기 힘든 사람들의 사연과 함께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집을 말끔하게 고쳐주는 과정을 담은 방송이다. 일주일 동안 가장 기다리는 프로그램이었다. 행복해하는 사람들의 표정과 뿌듯한 얼굴로 인테리어를 소개하는 디자이너를 보고 반했다. 그때부터 학교에서 적는 장래희망란엔 죄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라고 적었다. 그 꿈을 위해 부모님을 졸라서 미대 입시 학원을 다녔다. 엄마, 그때 나 좀 강하게 말려주지!



고등학교 시절 내내 손가락에 지문이 없어지도록 파스텔을 문질러대던 난, 그토록 꿈꾸던 미대생이 되었다. 동기들과 이야기해 보니 나처럼 러브하우스를 보고 인테리어 디자이너의 꿈을 키운 아이들이 꽤 있었다. 얘들아 우린 낚인 거야. 뚜껑을 열어보니 생각한 것과 많이 달랐다. 티브이에는 디자이너가 어떤 식으로 콘셉트를 잡고 디자인을 하는지 나오기보다는 고뇌하는 디자이너와 콘셉트 사진들을 멋있는 화면 전환으로 보여줬다. 축축하게 곰팡이 핀 벽과 바닥을 보여주다가 '과연 어떻게 바뀌었을까요?'라는 성우의 말이 흘러나오며 반짝이는 효과를 준 새 단장한 집을 보여줬다. 비포 애프터를 강렬하게 보여줘야 하니 인테리어 과정보단 결과물에 치중해서 방송하는 게 당연하다. 보이는 것만 보고 부푼 꿈을 안고 시작한 대학생활은 고난이었다.


우리 과에는 1~3학년이 4학년의 졸업작품을 도와주는, 각자의 도우미 라인이 있었다. '졸업하면 인테리어 회사 가시는 거예요?' 반짝이는 눈으로 묻는 신입생들에게 퀭한 얼굴을 한 선배들은 졸업하면 전공은 살리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들을 많이 했다. 충격! 4년 동안 배웠는데, 왜죠? 시간만 버렸네. 이상하게 생각하던 나도 시간이 지날수록 선배들이 이해됐다.



전공수업은 한 학기 동안 공간을 하나 완성하는 것으로 진행되고 이 과정이 곧 성적이 되었다.

1. 클라이언트를 정하고 콘셉트 잡기

2. 교수님한테 까이기

3. 도면 그리기

4. 교수님한테 까이기

5. 도면 수정하기

6. 교수님한테 까이기

7. 도면_최종

8. (밤새워) 도면을 모형으로 만들기

9. 3D 프로그램으로 공간 구현하고 마감재 적용하기

10. 교수님한테 까이기

11. 발표 PPT 만들기(최종/ 최종 22/ 진짜 최종의 과정을 거친다)

12. 발표하며 교수님한테 까이고 동기들의 질문 폭탄 받기

13. 작업 과정(콘셉트부터 3D까지)을 담은 전지 사이즈의 패널 만들기

14. 패널과 모형 전시


모형 만들기 전, 도면과 함께 찍어놓은 사진





모든 작업에는 교수님에게 까이기가 수반된다. 이렇게 하다 보면 결국은 교수님들의 성향에 맞춰져서 작품이 나온다. 전공 수업은 여러 개였고, 수업마다 과제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새벽까지 작업을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조별과제인 경우도 많아서 서로의 자취방에서 졸린 눈을 비비며 작업을 하기도 했다. 긴 과정들 중에서 그나마 내가 흥미를 느낀 건 모형 만드는 일이었다. 평면의 공간이 입체로 보이는 점이 좋았다.

어떻게 혼나다 보니 4년이 지나갔다. 동기들과 후배들과 과실에서 밤을 새우며 졸업작품도 무사히 끝냈다. (두 번은 하고 싶지 않다) 그래도 성적은 잘 나와서 좋은 곳에 원서를 넣어볼까 했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듣게 되는 업계의 환경과 대우를 알고 있는데 그걸 감수하고 이 직업을 택하기는 싫었다. 분명 나중에 후회할 것이 뻔했다. 졸업작품을 끝내고 내 도우미 라인의 후배들에게 갖고 있던 인테리어 서적을 나눔 했다. 졸업 후엔 어디로 취업하냐는 그녀들의 말에 내가 1학년 일 때 선배가 하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아마 나도 퀭한 얼굴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미대를, 그것도 나름 알아주는 유명한 곳을 졸업하고는 취업도 하지 않고 본가에 내려와 널브러져 있는 딸을 보다 못한 엄마는 뜻밖의 제안을 했다. 아는 분이 세무사무실을 하는데, 직원을 구한다 했다. 다녀보면 배우는 것도 많고, 돈에 대해 눈을 뜨지 않겠냐 했다. 세무사무실? 나 수포자인데. (내가 미대 입시할 때 미대는 수학 점수가 필요가 없어서, 학원을 다니면서부턴 수학을 아예 놓았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졸업한 지 세 달이 넘어가는 시점에서 더 이상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건 너무 눈치가 보였다. 그렇게 '세무'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채로 내가 상상도 하지 못하던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계산기 두드리는 일을 하다니!




대학 졸업자의 50% 이상이 전공과 무관하게 취업 준비를 한다고 한다. 시간과 돈을 들여 공부했지만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본인과 맞지 않는다고 느낀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 줄 몰랐다. 다양한 사연으로 전공과 무관하게 취업을 하는 사람이 많다. 졸업 직후엔 4년 동안 비싼 수업을 들었는데 그것이 생산활동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점이 괴로웠다. 장밋빛 미래를 꿈꾸고 시작한 일이 현실에 부딪혀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전공을 살리지 못한 나를 책망했다. 진로를 더 빨리 결정하지 않았던 점도 후회했다. 그 당시의 나는 정말 말 그대로 '큰 일'이 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곳이든 길은 있었고, 나에게 그 길은 생각보다 잘 맞았다. 그 길이 잘 맞지 않았다면 아마도 또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섰을 것이다.

걱정이 무색하게도 전공과 무관한 곳에 취업해도 잘 살아간다. 10년 전의 나에게 너무 책망 말라고 얘기하고 싶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