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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동범 Jan 27. 2024

일 포스티노: 마리오의 식탁

픽션 에세이_보통의 식탁_07







마리오의 식탁을 떠올린다. 마리오와 아버지는 고요히 빵과 수프를 먹는다. 그들이 먹는 빵은 거칠고 소박하다. 빵과 수프 외에 식탁에 차린 것은 없다. 처음부터 어부였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어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섬. 마리오와 아버지는 자신들의 삶처럼 투박하기 그지없는 한 끼 식사를 한다. 수프가 담긴 그릇은 낡았고 빵을 뜯는 그들의 손은 오래된 나무 문처럼 검고 거칠다. 검고 거친 손을 가진 그들은 아무것도 아닌 삶을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고 잊히겠지. 그러나 아무것도 아닌 삶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삶의 여정일 수 있지 않을까.


평범하게 늙어가고 묵묵히 살다 고요히 죽음에 이르는 삶.
그러나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아닌 삶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삶이 아닐까.


<일 포스티노>는 우편배달부 마리오와 시인 네루다의 우정과 함께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가난한 어부들의 섬 ‘칼라 디소토’에 사는 마리오는 어부인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다. 하지만 가난한 작은 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마리오는 자신의 삶이 거친 빵과 수프처럼 보잘것없다고 생각한다. 마리오는 미국으로 떠난 사촌들처럼 더 큰 세상을 꿈꾸기도 하지만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마리오 역시 아버지의 삶이 그랬던 것처럼 평범한 삶을 살 것이고 결국 칼라 디소토에서 생을 마칠 것이다. 그러나 마리오는 네루다를 통해 시를 알게 되었고 새로운 삶에 눈뜨게 된다. 물론 섬에서의 소박한 삶에 큰 변화는 없지만, 마리오는 시를 통해 새로운 삶과 만난다.


작은 섬 칼라 디소토에 살다 숨을 거둔 수많은 마리오를 떠올린다. 아무것도 아닌 삶. 영화 속 마리오의 삶에서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한다. 끊임없이 무엇이 되고자 하지만 결국에는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삶을 살게 되는 사람들. 평범하게 늙어가고 묵묵히 살다 고요히 죽음에 이르는 삶. 그러나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아닌 삶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삶이 아닐까 싶다. 마리오의 삶은 그가 먹던 거친 빵과 소박한 수프처럼 평범했지만, 평범한 삶이 주는 소박함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평생을 칼라 디소토 같은 작은 섬에서 살다가 고요히 맞이하게 되는 죽음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영화 도입부에 나오는 소박한 식사 장면을 떠올린다. 어둡고 고요한 마리오의 집. 언제까지고 지속될 것만 같은 깊은 고요. 그리고 고요를 배경으로 묵묵히 빵과 수프를 먹던 식사 시간. 문득 그들이 식사하는 장면에서 아무것도 되지 않는 소박한 삶의 행복을 발견한다. 그 무엇도 되지 않는다는 것은 어쩌면 가장 힘든 일인지도 모른다. 오래도록 마리오의 빵과 수프를 그리고 그것을 먹던 순간의 어둠과 고요를 생각한다. 그리고 그토록 투박한 삶에 깃든 평범한 아름다움을 떠올린다.




* 영화 <일 포스티노>(1994)는 가상의 섬 칼라 디소토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우편배달부 마리오와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칼라 디소토는 이탈리아 시칠리아 살리나 섬에서, 마리오의 아내 베라트리체 루소의 카페가 등장하는 장면은 나폴리 프로치다 섬에서 촬영했다. 영화는 파블로 네루다가 유명을 달리한 마리오를 회고하는 장면으로 끝나는데, 마리오 역을 했던 마시모 트로이시는 마리오의 죽음을 복기하듯 영화 촬영을 마친 다음 날 심장병으로 숨을 거두었다.



조동범, <보통의 식탁>(알마, 2018) 중에서







조동범

매일매일 읽고 쓰며 호숫가를 산책하는 사람이다. 문학동네신인상을 받은 이후 몇 권의 책을 낸 시인이자 작가이다. 시와 산문, 비평과 인문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쓰고 있으며, 대학 안팎에서 문학과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을 실천하며 길 위의 삶을 살고 있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 시집 <심야 배스킨라빈스 살인사건> <카니발> <금욕적인 사창가> <존과 제인처럼 우리는>, 산문집 <보통의 식탁> <알래스카에서 일주일을> <나는 속도에 탐닉한다>, 인문 교양서 <팬데믹과 오리엔탈리즘> <100년의 서울을 걷는 인문학>, 글쓰기 안내서 <부캐와 함께 나만의 에세이 쓰기> <상상력과 묘사가 필요한 당신에게>, 시창작 이론서 <묘사 진술 감정 수사> <묘사> <진술>, 문학평론집 <이제 당신의 시를 읽어야 할 시간> <4년 11개월 이틀 동안의 비> <디아스포라의 고백들>, 연구서 <오규원 시의 자연 인식과 현대성의 경험> 등이 있다. 김춘수시문학상, 청마문학연구상, 미네르바작품상, 딩아돌하작품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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