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 by 박찬욱 PART.2
<헤어질 결심>을 처음 봤을 때는 이전 작품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 든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서래의 사랑을 희생으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서래의 사랑을 희생으로 해석하면 이 영화는 또 한 편의 로맨스 영화에 지나지 않는다.
유부남을 사랑하고, 볕들 날 없는 고된 인생을 살면서 그 한 줌의 사랑에 목을 매다가 결국 스스로를 파괴하는 그런 수동적인 사랑.
하지만 그저 서래의 사랑을 수동적으로 해석하기엔, 그녀의 말과 행동이 들어맞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영화를 다시 한 번 관람했고, 전례 없이 1차보다 2차에서 더욱 강렬한 전율과 충격을 느낀 작품이 되었다.
송서래의 사랑은 자기희생 따위가 아니었다.
송서래의 사랑은 파괴적이었고, 이기적이었다. 그녀는 ‘붕괴’로부터 사랑을 느끼는 여자였다.
서래는 막말로, ‘가질 수 없다면 부셔버리겠다’는 식의 사랑을 하는 사람이다. 박정민이 연기한 캐릭터는 서래의 인생에 대한 스포일러이자, 서래의 페르소나인 셈이다. 그는 범죄를 저지르고 붙잡힐 위기에 처하자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대로 죽음을 택한다.
서래도 마찬가지이다.
코 앞까지 쫓아오는 해준과, 그가 모든 사실을 알았다는 걸 눈치채자 서래는 마치 연기처럼, 그렇게 깊은 바다 속에 스스로를 버린다. 아무도 찾지 못하도록.
그렇다면 왜 죽음이었을까. 영화를 보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수많은 방법이 있는데 왜 하필 죽음이었을까.
그러다 문득, 송서래의 사랑은 붕괴로 정의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떠올렸다.
그렇다. 죽음이나 소멸만큼 누군가에게 영원히 각인되는 방법은 없다. 사람은 이별을 극복하지만 죽음은, 특히나 시체조차 찾을 수 없는 소멸과도 같은 죽음은 잊을 수 없다.
특히 해준처럼 유약한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평생의 미제 사건이 되어 결코 잊혀지지 않는 각인처럼 새겨질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 속에서 해준의 의사는 단 하나도 없다.
그저 송서래가 흔드는 대로, 떨어트리는 대로 부서지고 깨어지며 그녀가 선사하는 이기적이고 파괴적인 사랑을 고통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렇기에 서래의 사랑을 희생으로 해석하면 이질감이 든다. 이 대사를 기억해야 한다.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맞다. 송서래는 나쁘다. 송서래는 선한 사람이 아니다. 송서래의 사랑은 이기적이다. 그래서 송서래는 진심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먼저 다가와서 친절하게 말을 걸어주고, 비싼 초밥을 대접하고, 내가 살인자인 걸 알았으면서도 모든 신념을 버려가면서, 나로 인해 완전히 ‘붕괴’되어 버릴 정도로 나를 사랑한다고 했으면서.
그리고 마침내, 서래는 사랑을 표현하기로 결심한다.
해준이 말한대로 깊은 바다에 빠트려서 아무도 찾지 못하게, 스스로를 버림으로써 역설적으로 사랑을 완성한다.
송서래의 헤어질 결심은, 사실 해준을 사랑할 결심이었던 것이다.
그의 눈꺼풀 안에 새겨져서, 매일 밤 눈을 감을 때마다 온 몸이 부서질 듯 끔찍한 파도소리, 바닷물의 짭짜름하고 비릿한 냄새와 함께 떠오를, 평생 해결할 수 없는 미제사건이 되어 그를 철저히 ‘붕괴’시킬 그럴 결심인 것이다.
▼ [헤어질 결심] PART.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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