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을 하고 돌아와 6살 아이를 씻긴다. 기분이 좋았는지 흥이 올라 노래를 부른다.
사랑이 떠나가도, 가슴에 멍이 들어도, 한 순간뿐이더라, 밥만 잘 먹더라, 죽는 것도 아니더라.
눈물은 묻어둬라, 당분간은 일만 하자, 죽을 만큼 사랑한, 그녀를 알았단 그 사실에 감사하자.
얼마 전부터 라디오에서 자주 흘러나오는 노래다. 아이에게 노래가 제법 귀에 감겼나 보다. 발음도 또렷하게 가사를 꾹꾹 눌러 부르는 것이 귀엽다. 무슨 말인지는 알고 부르는 걸까. 무슨 상관이랴. 즐거우면 그만이지. 헌데 나는? 평소에는 별 생각 없이 흘려듣던 노래인데 오늘따라 가사가 귀에 선명하다. 왜지? 문득 어젯밤의 근심 탓이 아닌가 싶다.
밤새 잠자리에 누워 두 어 시간을 넘게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들었다.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근심이 나와 나란히 누워 좀처럼 떠나려 하지 않았다. 힘겹게 일어난 아침, 밥상 앞에 앉아 숟가락은 들지도 못한 채 멍하니 한숨만 내뱉는다. 아내도 마찬가지이다. 무언가 턱 막고 서서 진로가 사라진 기분이랄까.
공인중개소에서 연락이 온건 어제 저녁 무렵이었다. 전세 연장 시기가 다가오는 때라 마침 기다리고 있던 터였다. 하지만 휴대폰 너머로 뜻밖의 말이 들렸다. “집 주인이 집을 팔겠다고 하네요.” 갑자기 숨이 턱 막혔다. 또 이사인가. 그렇다면 세 번째 이사다. 사실 세 번째는 결혼 후의 이사 횟수일 뿐이다. 결혼 전까지 나는 8번의 이사를 했다. 때론 학교 때문에(나는 전공을 바꾸는 과정에서 대학을 세 군데를 다녀야 했다) 때론 직장 때문에(직장 역시 계약직으로 몇 군데를 옮겨 다녀야 했다).
매번 이사 때마다 겪는 번거로움, 내 집이 없다는 현실 자각은 그렇다 쳐도 두 아이의 “우리 또 이사 가야 돼?” 하는 풀 죽은 이구동성은 마음을 서늘하게 했다.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휘감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답은 뻔히 내려져 있었다. 그냥 결론은 이사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던 것일까?
역마살 낀 유랑자가 되어 이리저리 옮겨 다녀야 하는 나의 운명, 새로운 집을 알아보기 위해 들여야 하는 시간과 발품, 더 오를지도 모르는 전셋값에 대한 해결 방안, 그러다 왜 일찌감치 돈도 모으고 과감하게 대출도 받아 집을 마련하지 못했는가 하는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이 밀려들었다. 근심 걱정으로 도배된 머릿속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렇게 맞이한 아침, 나는 죽은 것도 아니고 눈물을 흘린 것도 아니었다. 그냥 여전히 이사를 가야한다는 사실을 직시했을 뿐이다. 그런데 왜 밥을 먹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세상에 근심 걱정 없이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그 크기와 깊이만 다를 뿐. 그런데 어떤 이는 무덤덤하게 넘기는가 하면, 어떤 이는 그것에 묶여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근심 걱정이 하등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니 허허실실 살라는 것도 지나친 물러남이요, 그렇다고 나는 매번 왜 이러는 거냐며 거기에만 빠져 전전긍긍 하는 것도 지나친 얽매임이다.
근심 걱정을 단절하고 산다면 긴장이 없어진다. 긴장이 없다면 불시에 닥치는 난관을 어이하리오. 근심 걱정에 빠져 산다면 무언가를 해결하고 났을 때의 희열을 어찌 누릴 수 있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때로 근심 걱정을 통해 풀어진 마음을 붙들고 자신의 위치를 자각한다. 때로는 그것이 풀린 뒤의 기쁨을 통해 새로운 것을 헤쳐 갈 용기를 얻기도 한다.
어차피 근심 걱정 없이 살 수는 없는 것이라면 그것과 공생하는 방법을 배워야겠다. 극복, 외면, 수용 이런 듣기 좋은 말들은 제쳐두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것이다. 내가 자각을 하고 세상을 산다면 근심 걱정 역시 자각의 산물인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굳이 밥맛이 없을 이유가 있겠는가? 무슨 일이 있어도 밥은 잘 먹는 것이다. 굳이 밥상머리에 앉아 한숨만 쉬고 있을 이유가 없다.
아침 밥상 앞에서 6살 아이가 밥을 한 숟갈 떠서 입 안 가득 넣고는 “아빠! 나는 밥을 먹으면 힘이 나드라” 하며 두 손을 불끈 쥐어 보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도 ‘아빠도 밥 먹고 힘 낼란다.’ 하며 웃음으로 되뇌어본다. 나는 오늘도 밥만 잘 먹었다.